[Opinion] 다른 방식으로 보기 [도서]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글 입력 2020.03.1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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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또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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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는 총 일곱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독특한 것은 일곱 편 중 네 편은 글과 이미지가 동시에 나오지만 세 편에서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이미지들만 나열되어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왜 아무런 설명 없이 이미지만 나열되어 있지? 하고 생각했지만 읽다보니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그림과 함께 부가적으로 제공되는 정보들이 그림 자체에 제기된 다양한 질문과 논점 들을 벗어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스스로 미술적 지식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전시회를 보러가게 되면 거의 오디오 가이드를 빌려 전시를 관람하는 편이다. 보통은 가이드의 음성에 발 맞추어 전시를 한 번 관람하고 가이드 없이 다시 한 번 그림 만을 보는 방식으로 관람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후 그 행동이 자칫하면 위험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내 방식이 순수하게 그림 자체를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타자가 작품을 보는 방식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생각이었다.
 


미술이란 그것이 지닌 유일무이한 변함없는 권위를 통해 다른 형태의 권위를 정당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미술은 불평등을 고상한 것으로 보이게 하고, 위계질서를 짜릿한 긴장감을 주는 것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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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gin of the Rocks - Leonardo da Vinci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동굴 속의 성모>가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의 카탈로그에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 빽빽하게 채워진 14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이미지에 대한 내용은 없고 단지 그 그림을 누가 그리도록 주문했고, 그림을 둘러싼 법적인 분쟁이 무엇이며, 누가 그림을 소유했는지, 그 시기는 대략 어떻게 되는지, 그림을 소유했던 가문들은 누구였는지에 관한 이야기만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은 내셔널 갤러리가 소유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 진품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 일 뿐이다.

원작의 의미는 그것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것에서 부터 나온다. 원작의 가치는 그것의 희소성에 따라 정의된다. 이러한 가치는 시장에서 매겨지는 가격에 의해 확인되고 평가된다. 예술작품은 마치 성물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제시된다. 살아남은 성물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것이 본래 생겨났던 과거가 연구된다. 그러한 유래와 계보가 증명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술로 선언된다.

작품 자체의 설명이 아니라 해당 작품이 진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급급한 설명들로만 카탈로그의 내용이 채워졌다는 것에 대해 적잖이 놀랐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비판하면서도 원작이 전혀 쓸모없는 것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원작에는 그 그림에 대한 어떠한 정보를 통해서도 느낄 수 없는 침묵과 고요함이 있으며, 그러한 것들은 물감에 스며 있어 보는 이는 그 물질성을 통해 화가의 몸짓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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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atfield with Crows - Vincent Van Gogh

 


첫 번째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빈센트 반 고흐의 <밀밭의 까마귀> 내용이다. 그림에는 새가 날아오르고 있는 밀밭의 풍경이 담겨있다. 책에서는 아무 설명도 적히지 않은 작품을 잠시 들여다보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라고 나와있다. 다음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This is the last picture that Van Gogh painted before he killed himself. 이 글과 동시에 읽으니 처음에 그림을 보고 느꼈던 느낌과는 아주 다른 충격을 받았다. 말이 이미지를 변화시킨다는 예를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장치가 제대로 작동한 것이다.

위에서도 다루었지만 이러한 이유로 책에는 작가, 작품의 제목도 기재하지 않고 여러 이미지만을 나열하는 챕터가 존재한다. 해당 작품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해 보았는데, 고흐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더 알아봐야겠다.

사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계기는 여성의 누드와 관련한 젠더 권력의 문제를 분명하게 제기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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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dgement of Paris - Lucas Cranach

 


오늘날에도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든다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면 된다.

이 책에서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직접 그려 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들의 전시회를 가 보면 여성의 누드가 대부분 있었고, 심지어는 그 숫자가 많기도 했다. 어렸을 때, 여성의 누드화를 보며 항상 왜 이렇게 벌거벗고 있는 여성들이 그려진 그림이 많을까? 생각했었다. 그 당시에는 ‘여성의 몸에 나타난 선과 굴곡이 아름답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주입 당해서 ‘아 여성의 몸은 아름답기 때문에 많이 그려진 것이구나’라는 아주 폭력적이고 편협한 사고가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에도 불편한 감정은 가지고 있었지만 ‘예술이니까’라는 생각으로 더 이상의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었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내가 느꼈던 불편한 감정의 원천을 정확하게 알게되었다.

존 버거는 이렇게 말한다. 유럽의 누드 예술형식에서 화가와 관객(소유자)은 보통 남자이며 대상으로 취급받는 인물은 보통 여자다. 이런 불평등한 관계는 우리 문화에 아주 깊이 각인되어 있어 지금까지도 많은 여자들의 의식을 형성한다.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을 여자들 스스로도 자신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남자들이 여자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여성성을 살펴본다. 이 구절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담론의 내용과 같아서 아주 놀랐다. 존 버거는 이러한 사실을 50년 전부터 맹렬히 비판하고 있던 터인데 왜 우리 사회는 아직도 더디게 나아가고 있을까.
 


대부분의 남자들과 여자들 사이의 관계는 이런 식으로 결정된다. 여자 자신 속의 감시자는 남성이다. 그리고 감시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리하여 여자는 그녀 자신을 대상으로 바꿔 놓는다. 특히 시선의 대상으로.



이 밖에도 책은 전통적 유화와 광고에 대한 내용도 다룬다. 유화를 다룬 부분은 사실 한 번 읽고는 이해가 가지 않아 몇 번 더 읽어봐야 할 것 같지만 광고에 관한 내용은 자주 접해서 그런지 편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에는 광고와 유화의 관련성을 다루고 있다.
 

광고는 소비사회의 문화다. 광고는 이미지를 통해 바로 이 소비사회가 스스로에 대해 갖는 신념을 선전한다. 이 이미지들이 유화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유화란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에 대한 찬양이었다. 그것은 당신이 소유한 것들이 곧 당신이라는 원리에서 나온 미술형식이다. 광고가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시각예술을 대신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 시각예술이 마지막으로 소멸해 가는 형태가 광고인 것이다.


광고란 어떤 대상이나 사물에 대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것이다. 광고가 약속하는 것은 쾌락이 아니라 행복이다. 즉 다른 사람들에 의해 외부적으로 판단되는 행복이다. 선망 받는 행복이 곧 매력인 것이다. 50년 전 글이지만 현재 SNS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과 일맥상통해서 놀랐다. 현대에는 SNS를 통해 문제가 더 심화되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지 못하며 계속 남들과 비교하며 좌절감, 무력감 등을 쉽게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삶은 광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광고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의 두께가 얇아 빠른 시간 내에 읽었지만, 읽고 난 후 내 생각을 바로 단순하게 정리 할 수는 없었다. 존 버거의 생각과는 다른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가 제안한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그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큰 의의를 남긴다고 생각한다. 나도 이제까지 예술작품을 향유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편견 없이 작품 그 자체를 즐기는 눈을 기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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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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