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감정이 섬세한 당신에게 추천하는 취미, 펜팔 [사람]

글 입력 2020.03.05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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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 <작은 아씨들>을 봤다. 네 자매가 모여 살았던 유년기를 따뜻한 색감을 사용해 표현하는 걸 보면서 괜스레 유년기의 추억에 잠겼다. 떠올릴 때마다 마음의 고향이 되는 유년기의 추억. 나에게는 그를 빼놓고 유년기를 설명할 수 없는 소중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올해 10년째 편지를 이어나가고 있는 나의 펜팔 친구다 H다.

 
 

펜팔을 시작하게 되다

 

H와 나는 2011년의 봄, 어떤 책의 온라인 팬카페에서 만났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인터넷 카페에서는 펜팔이 유행이었고, 우리도 흔한 펜팔 친구였다. 나는 이 친구 이외에도 4명의 펜팔 친구가 더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편지는 끊겼고 현재는 H가 유일한 나의 펜팔이다.

처음에는 공통의 관심사였던 좋아하던 책에 대한 편지로 시작했지만 점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사소한 취향부터 고민과 걱정을 털어놓고 편지로 상담도 해주곤 했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해가 지날수록 서로에게 존재감은 뚜렷해졌다.

사람은 가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신을 지지해 줄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하다. 나에게 항상 그 역할을 해주었던 건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편지였다. 나의 도전을 응원하고, 나의 아픔을 위로하고,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존재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편지들, 세상이 등 돌려도 편지에 쓰인 글들만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마음이 든든하다. 편지들을 모아놓고 보면 미묘하게 다른 글씨체와 몇 십 원씩 가격이 올라가는 우표들이 편지를 받은 시기를 짐작하게 한다. 겉봉투에 쓰인 삐뚤빼뚤한 글씨를 볼 때마다 마음이 뿌듯하고 행복하다.
 


실제로 만나다

 

2011년부터 펜팔을 했지만, 우리는 경기 북부와 경상남도라는 물리적 거리 때문에, 또 각자의 바쁜 생활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다. 막연히 언젠가 만나겠지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H가 서울로 대학을 오게 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글이 아닌 말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점심때쯤에 기숙사에 짐을 풀고 나온 H를 만나 카페에서 저녁을 먹기 전까지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하면서도 신기했다. H는 편지에서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글은 글쓴이의 얼굴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실제로 만났는데 혹시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라 실망할까 봐 걱정했던 게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생일이나 종강이 되면 종종 만나서 선물을 주고 편지를 교환하며 현재까지도 좋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펜팔이라는 취미

 

점점 삭막해지는 이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지낼수록 내 마음 어디선가 아주 낡은 종이들이 바스라 지는 소리가 난다. 기상천외하고 흉흉한 사건들이 매일의 일상을 침범하는 요즘이다. 사람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고 살아가는 일을 너무나 값없게 만드는 이 세계에서 펜팔을 시작했던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유년기의 따뜻한 기억은 편지라는 실물로 남아있기에, 언제이고 다시금 그 시절과 설렘을 생생하게 불러올 수 있다. 편지에 쓰인 글들은 언제나 내 편이고 내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갈 힘을 주곤 한다.

어릴 적 접했을 법한 《키다리 아저씨》부터 《A가 X에게》,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채링크로스 84번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간체 소설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글로써 나를 들여다보고, 상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 편지의 힘이다.

모든 것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느림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는 펜팔 편지는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자필로 편지를 쓰고, 그 편지가 상대를 거쳐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설렘을 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그래서 나는 펜팔이라는 취미를 추천하고 싶다.

감정이 섬세하고 예민한 당신에게, 글로써 상대를 위로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당신에게, 우리 함께 편지 써보지 않을래요?
 
 
[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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