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맨덜리 저택 둘러보기 (1) [공연예술]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본 뮤지컬 <레베카>의 이모저모
글 입력 2020.03.0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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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16일 충무아트센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레베카> (이하 <레베카>)를 최근 관람했다.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기에 뮤지컬 팬으로서 한 번쯤 볼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또한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레베카>가 미하엘 쿤체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의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옥주현, 신영숙, 류정한, 카이 등 출중한 실력을 가진 배우들의 연기도 기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작품을 관람한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레베카>가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분석할 필요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해당 작업이 뮤지컬 <레베카>의 원작 소설이 출간되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이루어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뮤지컬 <레베카>가 한국에서 초연된 후 흥행가도를 달려 온 지 7년이 지난 지금, <레베카>의 작품성을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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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버스 부인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작품 중 <레베카>만큼 한국 뮤지컬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은 드물다. <레베카>는 한국 뮤지컬계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로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뮤지컬 무대 위에 여성 인물들의 에너지를 충실히 재현해 낸 특별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작품의 배경인 맨덜리 저택의 집사 댄버스 부인은 남성 캐릭터에 의해 정의되지 않는, 독보적인 입지의 여성 캐릭터이다.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이름만으로도 '나'를 옥죄는 레베카가 '나'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압력의 크기를 상징한다면, 댄버스 부인은 그러한 인물 구도를 무대 위에 구현하며 음산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실질적인 인물이다. 이를테면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와 '나' 사이의 대결의 한가운데에 놓인 캐릭터인 것이다. 실제로 <레베카>에서 인물보다 훨씬 크게 제작된 창문 등의 무대 세트나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를 내는 무대 미술, 초라한 행색의 '나'를 조롱하는 맨덜리의 하인들 모두 댄버스 부인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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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댄버스 부인은 맨덜리 저택의 전 주인 레베카와 함께 작품에 숨겨져 있는 동성애 코드를 형성하는 캐릭터 중 한 명이다. 물론 두 인물이 서로 연인 관계임을 단정하는 대사가 작품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댄버스 부인의 대사와 행동이 관객으로 하여금 그러한 코드를 유추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사실이다.


가령 극중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존재에 집착하며 자신이 레베카와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였다고 말한다. 또한 댄버스 부인은 자신과 레베카가 매일밤 침대에서 레베카를 원했던 남자들을 비웃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레베카를 꿈꿨던 남자들 중 그녀를 가질 수 있었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댄버스 부인은 레베카의 잠옷이나 레베카의 이니셜이 새겨진 손수건 등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생전 레베카가 사용했던 물건에 묻어있는 그녀의 흔적에 집착한다.


물론 이러한 동성애 코드가 관객에게 얼마나 가시적으로 드러나는지는 상당 부분 댄버스 부인을 연기하는 배우의 재량에 달려있는 듯하다. 레베카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광기를 주로 표현하는 배우가 있는가 하면, 애인을 잃은 댄버스 부인의 슬픔을 비추려 하는 배우도 있다.


이로써 <레베카>의 동성애 코드는 댄버스 부인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무대 위에서 짙어지기도, 옅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동성애 코드를 두고 미묘하게 교차하는 광기와 슬픔이라는 두 줄기는 여전히 작품의 두 여성 인물, 댄버스 부인과 레베카에 대한 입체적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놓으며, 사랑과 집착으로 연결된 두 여성 캐릭터의 강렬한 에너지를 보는 즐거움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2부에서 계속.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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