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전을 읽게하라 "작은 아씨들"

삶의 조언자, 고전의 힘, 작은 아씨들
글 입력 2020.03.01 21:2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고전이 현대에 읽히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 유명세를 떠나, 고전 그 자체가 현대에도 계속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는 문학의 경우 보편적인 주제를 다룬다고들 한다. 인간의 죽음과 삶, 거짓과 진실, 모순된 사회, 사랑 등. 유행을 타지 않으니 언제 보아도 교훈을 얻을 수 있다. 1868년 첫 발표 이래 약 150여 년간 전 세계 독자에게 사랑받은 “작은 아씨들” 역시 그런 고전이다. 초등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 소설 같은 제목 아래에 나열되었던 고전 문학은 현대 소설보다 더 가까웠고, 자주 읽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1, 2부를 합쳐 968쪽의 완역본으로 나온 “작은 아씨들” 역시 어릴 때 읽은 책의 두께보다 훨씬 두툼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낯설지 않다. 초등학교 때 헤어진 동창을 다시 만난 듯 반가운 기분이다.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아무래도 어쩔 수 없이 두께일 것이다. 읽는 게 과제일 것만 같이 두툼한 책은 막상 펼쳐보면 친구와 수다를 떨 듯, 친한 가족의 옛날이야기를 듣듯, 선생님에게 조언을 얻는 듯 편안해서 언제 이만큼 읽었지 싶게 지나간다. 그다음으로 보이는 점은 표지였다. 금박으로 적힌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 주변을 둘러싼 메그, 조, 베스, 에이미의 얼굴은 꼭 처음 만난 사람을 볼 때의 표정 같다. 어색하고 궁금해하는 표정. 책을 펴기 전 나의 얼굴이 이럴까.

 

최대한 현대적인 언어로 번역하여 가독성을 높였다는 말에 어울리게, 글을 읽는 내내 문장을 되돌아 읽으며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전을 자주 읽었던 초등학생 시절, 번역한 문장이 이해되지 않아 두세 번 읽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이런 변화가 더욱 즐겁게 다가왔다. 그때 비해 문장 해석력이 늘어난 덕도 있겠지만 말이다.

 

 

1311.jpg

 

 

“작은 아씨들”은 추천의 글에 적혀있는 것처럼, 각 여성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인정하고 끌어안아 준다. 평범하지만 온화하고 동생들이 많은 맏언니는 사회의 규범대로 다정한 현모양처로 살아간다. 사고뭉치지만 누구보다 활발한 조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바라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어낸다. 소심한 베스는 필요할 때에 용기를 내는 법을 알고, 마음을 다친 사람을 다독여주는 법도 잘 아는 착한 아이다. 다소 이기적이긴 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에이미는 자기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고 묵묵히 걸어간다. 같은 집에서 태어났음에도 이렇게 굉장히 다른 네 자매는 여성이기 이전에 그들 자신의 삶을 찾아 걸어간다. 그 삶이 남들과 똑같거나, 조금 다르더라도 자신의 삶임은 분명하다.

 

에이미는 연극을 보러 가면서 자신을 데려가지 않는 조에게 매우 화가 나 그의 소중한 원고를 불태워버린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써온 동화였고, 언젠가 출판되길 바라던 소설이었다. 조는 크게 분노해 에이미를 본체만체하며 로리와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 에이미는 기회를 봐 사과하기 위해 조를 따라가다 실수로 물에 빠지고 만다. 조가 매우 놀라는 동안 로리가 나서 에이미를 구해준다. 후에 조는 자신의 분노에 자책한다. 그리곤 어머니에게 가서 어떻게 하면 이런 분노를 참을 수 있는지 물어본다. 마치 부인은 단 한 번도 큰소리로 화를 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맞아.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경솔한 말을 삼가는 방법을 익혔어. 그런 말이 내 의지에 반해 나오려고 하면, 밖으로 나가서 나약해지고 사악해진 나 자신을 다잡곤 해.” 마치 부인은 조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묶어주며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런 조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화를 조절하는 법을 배웠을 뿐, 자주 화가 난다고. 어머니의 조언은 현대인에게도 유효하다. 사소한 싸움으로 감정이 상해서 괜히 다른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좋지 않거나, 왜 자꾸 필요 이상으로 화가 나는지 속상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조절하려고 해도 조절되지 않고 순간의 분노에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조의 후회와 마치 부인의 조언을 읽으면 나 역시 화난 나 자신을 다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감정과 감정을 다스리는 법은 모두에게 어렵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 역시 걸핏하면 화를 내는 성질을 다스리려 평생 노력했다고 한다. 되려 이런 조언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런 말 하고 싶진 않은데, 양산도 마음에 안 들어. 어머니한테 하얀 손잡이가 달린 검은 양산을 사달라고 부탁드렸거든. 그런데 깜빡하고 흉측한 누런 손잡이가 달린 초록색 양산을 사오셨더라고. 튼튼하고 깔끔하니까 불편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윗부분을 금으로 장식한 애니의 비단 양산에 비하면 너무 초라해서 창피해.” 메그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작은 양산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양산가게에 가서 바꾸면 되잖아.” 조가 조언했다.


“그렇게 바보처럼 굴고 싶지도 않고, 힘들게 사다 주신 어머니를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아. 그냥 내 터무니없는 생각일 뿐이야. 그런 생각에 굴복하지 말아야지.”

 

 

첫째 메그는 온화하지만 허영심이 많다고 표현된다. 가난한 가정에서 사기 힘든 물품이나 사치를 부러워하고 때로는 자신의 처지를 한심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허영심에 가득 찬 인물이라는 설명을 볼 때마다 번번이 의문스러웠다. 허영심을 채우기 위해 사치를 부리지도 않고, 위와 같이 어머니의 조언에 집중하며 몇 번이고 자신을 다잡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검소한 생활에 만족하고 타인의 것을 부러워하거나 눈여겨 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겠지만, 단지 타인을 부러워하는 것만으로 허영심이 강하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지 않나 싶다.

 

모팻 네에 초청받은 메그는 친구들의 손에 화려하게 꾸며지지만, 이후 그들의 인형처럼 꾸미고 나온 자신의 허황한 모습을 부끄러워하고, 어머니에게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만큼 검소와 현재에 만족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자꾸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그 비교 끝에 의미 없는 소비를 하게 되는 현대 사회에 메그의 태도는 의아함과 존경 두 감정으로 다가온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다가도, 그런 청빈하고 검소한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평안을 가져다준다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교훈을 느낀다.

 

메그는 파티에서 마치 부인한테 부잣집 아들과 메그를 결혼시키려는, 베넷 부인이 할 것 같은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창피해 한다. 마치 부인은 이를 부인하고, 자신의 아이들이 속물적으로 살길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이 모자란 집은 진정한 집이라고 할 수 없으며 돈에 얽매여 살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


 

“벨 얘기로는 가난한 집 여자애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기회를 잡지 못할 거래요.” 메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혼자 살면 되지.” 조가 용감하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조.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아내가 되거나 남편감을 찾으려고 경박스럽게 구는 여자로 살기보다는 행복한 독신으로 사는 게 낫지.” 마치 부인도 단호하게 말했다.

 

 

앞서 마치 부인은 좋은 남자를 만나 짝이 되어 사랑받는 건 여자가 누릴 수 있는 큰 행복이라는, 당시 시대상과 밀접한 말을 한다. 이런 시대에 조의 말이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클까. 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진심이 조금 더 담겨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하나, 둘 모여 결혼이 여성의 큰 행복 중 하나라는 다소 낡은 사상을 깨뜨린 것일 테다.

 

고전에 있는, 사람을 이끄는 힘은 무엇일까? 조가 드디어 소설을 출판하자, 여러 비평이 달린다. 조는 비평을 읽으며 말한다. 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어떤 이론도 갖고 있지 않았고 유심론 같은 건 믿지도 않아요. 등장인물은 실생활에서 차용한 거고요.

 

외국 고전 소설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한국에서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파티나 티타임, 의복을 세세하게 적은 글을 보며 꼭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현실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사랑 이야기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보며 지금 독자가 처한 현실에 대입하기도 할 것이다. 때론 과거가 주는 교훈에 매료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조가 한 말과 연관되어 있다.

 

 

2020-02-04 21;21;10.jpg


 

꼭 옆에 등장인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섬세하고 세심한 묘사가 사람을 매혹한다. 바로 옆에서 네 명의 아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이 소설은 조가 그랬듯이 실생활에서 등장인물을 꿨다. 조는 작가를 닮았고, 친언니는 메그를 닮았으며, 작가가 소설로 번 돈으로 유학을 간 동생까지 모두 비슷하다. 완전히 똑같은 내용은 아니겠지만, 현실과 가상이 섞여 더욱 그럴듯한 자매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작가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화도 내고, 후회도 하고, 실패하거나 성공도 하는 성장형 캐릭터는 다소 두툼한 소설을 읽는 내내 질리지 않고 계속 다음 내용,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이 등장인물은 나의 자매가 되었다가 친구가 되고, 조언자가 되어 고난과 실수를 극복해 ‘천상 도시’인 평화에 다다르도록 도울 것이다. 

 

 


 


작은 아씨들

- Little Women -


지은이
루이자 메이 올컷
 
옮긴이 : 공보경

출판사 : 윌북

분야
영미소설 / 고전

규격
124*178mm

쪽 수 : 968면

발행일
2019년 07월 30일

정가 : 15,800원

ISBN
979-11-5581-217-4 (02840)

 

 

 

전문 김혜원.jpg

 


[김혜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