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흔들리며 피는 꽃 말고, 흔들리는 물결처럼

나의 청춘의 이야기
글 입력 2020.03.0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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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의 여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니스로 여행을 갔다. 여름휴가의 막바지,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수영과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수영은커녕 물에도 뜨지 못하는 나는 그 넓은 해변에서 유일하게 허리에 튜브를 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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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여행 중이었던 친구는 물을 무서워해서 나는 홀로 떠다니며 놀 수밖에 없었다.


바다와 하늘 그 사이 경계까지 헤엄쳐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헤엄쳐 가다가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즈음이면 다시 해안가로 밀려갈 때까지 그저 튜브에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있자면 파도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온몸으로 전해졌고, 눈을 뜨면 흔들리는 물결에 햇살이 반짝거려 눈이 부셨다.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광경이어서 벅찰 지경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그것을 부르는 순우리말 단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슬: [명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윤슬. 입이 동그랗게 모아졌다가 혓바닥이 입천장을 살포시 누른 후 부드러운 유음으로 끝나는 이 단어가 나는 마음에 들어 계속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윤슬. 윤슬. 윤슬. 이 동그란 단어는 어느 하나 세게 발음할 구석도 없고 자칫하면 흩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발음할수록 머릿속에 희미하게 있던 이미지가 선명해졌다.

 

*


4년 전, 두 번의 수능을 치른 다음의 나는 이 지루한 날들은 끝이 나고 청춘이 시작될 줄로만 알았다. 다들 20대 초반이 가장 빛나는 청춘의 시기라고들 하니까, 나한테도 당연히 찾아오겠지 생각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시작한 대학생활은 정말 즐겁기도 했지만 그만큼 불안한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들어가고 싶었던 동아리와 단체를 가입하고, 매일 같이 학교 주변 술집들을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거라고 억지로 자기 위안을 하며 눈앞의 즐거움에 목을 맸다.


생각해보면 그때에는 해가 떠있을 때 집에 들어가는 날을 손에 꼽아 볼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그럴수록 마음속 어둠은 커지고 있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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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눈앞을 가렸던 즐거움이 사라지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아니, 그때에는 이미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 깊은 바닷속의 가장 아래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따위의 말들은 믿고 싶지 않았는데, 내 청춘은 빛날 거라고 믿고 싶었는데. 불안함의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나는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도망치기조차 무서운 나날들이 꽤나 오랫동안 이어졌다. 다른 사람들의 말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집중력의 지속 시간이 짧아져서 긴 글은 읽을 수조차 없었다. 이따금씩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고 그러다 보면 숨이 막히고 심장에 통증이 찾아왔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고, 술을 마시면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누군가가 나의 구원이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없듯, 다른 누구도 나의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날에는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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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주 깜깜한 바다를 본 적이 있었다. 눈썹달조차 뜨지 않은 깜깜한 밤바다는 어쩐지 두렵게 느껴졌다. 바다와 하늘이 경계조차도 쉬이 구분할 수없이 어두우니, 들려오는 파도 소리와, 육지에 부딪혀서 잠시 피어오르는 하얀 메밀꽃만이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어둠이 바다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 검은 물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20대 초반의 나는 어쩌면 이런 바다 위에서 떠서 부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무 어두워 밤하늘과 검은 바닷물이 구분이 되지 않아 내가 가라앉은 건지, 떠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판단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계속 흔들리느라 삶에 멀미를 했구나.

 

*


나를 포기해버리기엔 내가 아직 너무 애틋했다. 그래서 스스로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나를 위한 일들을 하는 것은 처음인지라 조금 어색했지만 그렇게 한 발자국 씩 걸어보았다.


나를 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알아야 했다. 내가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 지도 모르고 20년을 넘게 살았다니 조금 바보처럼 느껴졌지만, 이제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들 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였다.


언젠가 이런 문장들을 쓴 적이 있었다.



내 안을 부유하는 생각과 감정을 언어화하는 과정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그저 감정을 흘려보내거나, 그 감정에 얽매여있지 않고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보살펴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탄생한 문장들은 내가 쓴 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문장 그 자체만의 힘이 생겼다.

 

[Opinion] 2019 인생 재건 프로젝트 中



이상한 일이었다. 그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활자로 옮긴 것일 뿐이었는데, 단어 하나하나가 힘이 생겨 빛으로 떠올랐다. 그 빛은 어떤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아니었다. 그 빛은 내가 여기 이렇게 숨 쉬고 살아있다는 생의 감각과 삶의 의지 같은 것들이었다. 빛이 떠오르자 흔들리던 수면 위는 빛을 받아 수만 개의 보석으로 화했다. 비로소 청춘이 시작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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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여전히 나는 흔들린다. 잔물결이라도 항상 바다는 흔들리고 있으니까, 파도가 치지 않는 고요한 바다 같은 건 없으니까. 그리고 흔들려야만 빛이 날 수 있다는 사실도 이제는 안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무언가를 피어내지 않아도 그 자체로 빛나는 윤슬로서의 지금 이 상태가 썩 마음에 든다. 멈추지 않고, 내 마음에 빛을 띄워주며, 흔들리더라도 계속 나아간다면 언제까지나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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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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