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질서와 혼돈의 세계,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 전시 "가능한 최선의 세계"

글 입력 2020.02.26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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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데이터는 어디서나 존재하고, 우리의 삶은 이미 일정 부분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 굳이 사이버 펑크 세상을 상상하기 위해 이식된 칩으로 컴퓨터 세계에 접속하는 상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유튜브를 틀어도, 노트북을 열어도, 길가를 걸어도 우리의 행동은 어떤 방식으로든 코딩되고, 알고리즘에 의해 삶이 지속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쌓인 데이터는 기술이나 시스템으로 구체화되어 우리를 둘러싼다. 사회가 끊임없이 시민들에게 주입시키는 슬로건- '자신만의 꿈을 찾아라'- 은 이제 삶이 온전한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데이터를 벗어난 삶을 사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전시회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소설가 정지돈과 국내 젊은 작가 10인(팀)의 단체전으로, 시각예술과 문학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전시회의 제목이기도 한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소설가 정지돈이 만들어낸 미래의 세계로, 알고리듬에 의해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블루 프린트와 그 반대쪽의 규칙도 일관성도 없는 세계인 레드 프린트의 세계로 나뉘어 전시장 안에 펼쳐진다. 전시와 글로 구성되는 이번 전시는 관람객 스스로가 읽고, 발견하고, 수집하며 완성한다.

 

 


1.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고, 모든 것이 완벽한 '최선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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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가능한 최선의 세계>의 세계는 알고리즘이 고도로 발달된 세계다. 전시회의 뼈대가 되는 '가능한 최선의 세계'는 빅이 터의 활용으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최선의 선택을 제안하는 AI알고리즘이 발달한 세계를 말한다. 전시회의 제목은 라이프니츠의 '낙관' 개념을 따온 것으로, 이는 '가능한 한 최상'을 뜻하는 라틴어 '옵티 뭄 optimum'에서 유래한다.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라이프니츠는 신이 최상의 세계를 만들었고 이 최상의 세계는 더 이상 개선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볼테르는 신과 비합리를 순진하게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인간인 팡글로스를 내세워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로 풍자하였다. 최상의 상태에 있다는 세상에서 인간들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비명 지르고 있다. 이에 볼테르는 합리적 낙관주의를 주장하며, 고통에 맞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달로 세상은 이미 '최상의 상태'에 도달했다. 볼테르는 패배했고, 최상의 상태를 주창한 팡글로스는 승리했다. 전지전능한 AI는 감히 신의 자리에 오른 셈이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미래예측 기술을 블루 프린트라고 부른다. 알고리즘을 부정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이 또한 블루 프린트에 출력되었으므로 더 이상 긍정과 부정은 무의미해졌다.


하지만 낮은 지능과 불행, 빈곤과 억압을 타고난 이들, 자신의 정체성을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의 혼란은 계속해서 발생했고, AI는 또 다른 세계, 레드 프린트를 설계했다. 레드 프린트에서는 일관성이 부재하고 원인과 결과가 혼재되어 있는 혼란의 세계다. 스무 살이 된 시민들은 블루프린트와 레드 프린트 중 하나의 세계를 선택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세계를 선택하고 나면 다른 세계로 횡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절된 세상, 하지만 정말로 블루 프린트와 레드 프린트의 사람들은 각자 '최상의 삶'과 '혼란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 관람객은 그 세계의 틈새에 흘러들어 가 볼 수 있다.

 

 

 

2. 질서 속 혼돈, 블루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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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프린트 전경

 


전시 관람객들은 예측 가능한 블루 프린트와 규칙도 일관성도 없는 레드 프린트로 명명된 세계 중 하나의 세계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색안경을 끼고 관람을 시작한다. 각 세계에 맞는 동선이 있고, 색약 테스트처럼 되어있는 화살표를 따라 전시를 관람한다. 하지만 이때의 선택으로 다른 세계의 작품들을 감상하지 못한다거나, 색안경을 껴야지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서사에 직접 참여하고, 변화를 만드는 주체로서의 역할을 기대했다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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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희민-빵과 칼



필자는 블루프린트를 선택해 관람하였다. 블루프린트 세계를 입장해서 내가 느낀 감상은, AI가 제시하는 삶의 청사진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처음 블루프린트에 들어서면 정희민 작가가 일상 사물에서 디지털로 불러온 이미지들을 마주한다. 사과나 잼, 토스트는 분명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지만, 디지털 이미지로 불러온 순간 그것들은 순식간에 불러올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형태의 것이 된다. 작품에 흘린 듯이 매달려있는 이질적인 고무 물질만이 이 작품에서 실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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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아람-납작한 세계



전시장 한가운데에 비치된 권아람 작가의 작품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읽혔다. 는 본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하지만 사실 이 작품은 거울이 아니라, 스크린이다. 딸칵 소리에 따라 작품은 끊임없이 빛을 반사해내고, 생생한 이미지를 비춘다. 납작한 스크린은 세상의 입체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대신, 한정적이고 왜곡된 이미지를 비춘다. 모든 것이 확실한 블루 프린트 속에서 개인은 개인의 영역마저 침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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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진- 캄브리아기 대폭발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으로, 유영진 작가의 작품이 있다. 특히 전시회장의 가장 위층에 있는 작가의 연구실을 재현한듯한 작품은, 도시의 건물이 잘 보이는 곳에 작은 집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들어간 순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건축 자재들이 생물체처럼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콘크리트를 비집고 성장한 민들레처럼, 긴 나뭇잎을 기어 다니는 애벌레처럼, 평소에 관심도 없었던 인공물들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품의 제목인 <캄브리아기 대폭발>의 캄브리아기는 생물의 폭발적 진화와 분화가 일어난 시기로, 이 시기에 수많은 생물이 출현한 것으로 알려진다. 모든 존재는 하나의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는 법이다. 블루 프린트의 세계에서도 '폭발적 진화'는 유효한가 보다. 개인적으로는 평범하고 지루한 사물에서 생명을 발견하는 작가의 상상력에 크게 놀라고, 또 감동받았다.

 

 

 

3. 혼란 속 질서, 레드 프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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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프린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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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새-계속해서 미끄러지는 아이스크림

 


블루프린트를 지나 도착한 레드 프린트는 블루프린트와 다르게 '혼란'을 주제로 하고 있다. 레드 프린트의 입구를 들어서면 이은새 작가의 녹아내리는 듯한 그림들을 볼 수 있다. 레드 프린트의 거주자들은 제멋대로다. 이은새 작가는 본래 밤거리를 쏘다니는 여자들을 '피해자'가 아닌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괴물'의 위치에 둔다. '밤의 여자'는 더 이상 섹슈얼한 이미지나 피해자의 이미지가 아닌, 언제든 달려들고 물어뜯을 수 있는 괴물로 표현된다.


이은새 작가의 작품은 혼란과 무질서로 명명되고 추방된 못난 이들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레드 프린트의 세계에서 밤의 여자들은 밤에 쏘다니는 괴물들이 되고, 아이스크림이 고기처럼 흘러내린다. 아이스크림 앞에서 사람들은 스푼이 아닌 포크로 아이스크림을 쿡쿡 찌른다. 혼란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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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시민의 숲



개인적으로 눈길을 끌었던 또 다른 작품으로는 최윤 작가의 <시민의 숲> 영상물이다. 이 작품은 우리가 별생각 없이 소비해오던 단어, 이미지에 의문을 표함으로써 시작된다. 양재 시민의 숲은 공원이지만 '숲'이라 명명된다. 아마 숲이 가지는 신비롭고 청량한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작가는 이 시민의 숲을 배경으로 재생산되는 이미지에 주목한다.


양재 시민의 숲에는 '요정'이 산다. 작가가 요정이라 비유하는 인물들은 인터넷 코스프레 동호회원들이다. 이들 역시도 만화 속 한 장면을 재생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또한 시민의 숲은 4월이지만 공원 스피커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나오고, 공원 한편에 기념비들이 몰려있다. 시민의 숲에는 환상과 사상이 혼재되어 있다. 최윤의 작품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이미지와 단어에 대한 물음을 제기한다.


레드 프린트의 세계를 빠져나오면서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의 요구르트를 먹으면서 우리는 김연아를 상상하고, 새로 산 김치 냉장고를 닫으며 이승기를 생각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당하던 아이는 커서 칼을 잘 쓰는 요리사가 되고, 사랑받고 싶은 아이는 열렬한 이성의 신봉자가 된다. 처음에 시민들이 요정이 된다는 발언은 당황스럽게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시민의 마당 같은 공원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는가 싶다.

 



4. 전시회는 블루도 레드도 아닌 제3의 색



블루에도 예외의 삶이 존재하고, 레드에도 완전한 혼돈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인간의 삶에서 레드냐 블루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기계가 아무리 발전한들, 우리의 삶과 행동을 지배하는 정서의 변화무쌍함을 조절할 수는 없으니까. 게임 <레드 스트링스 클럽>처럼 기계장치를 넣어 일부 감정을 완전히 소실시키지 않는 이상, 우리의 삶은 보라색일지도 모르겠다.


전시회 자체에 비치된 작품들의 질은 하나같이 대단하고, 대부분 8~90년대의 젊은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설가 정지돈도 떠오르는 젊은 작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는 전시회였다. 이 전시회에서 느낀 가장 큰 아쉬운 점은, 관객의 편의성 부분이다. 관객들은 처음의 선택이 중요할 것 같은 전시회의 설명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입장한다. 하지만 다 살펴보고 나면, 관객들은 선택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전시회에서 관객의 선택은 입구에서 나눠준 색안경 정도의 위치를 차지한다. 색안경은 화살표를 따라가는 역할을 수행한다.


소설가의 시나리오를 뼈대로 각 세계를 횡단한다는 콘셉트는 참신하고 재밌었지만, 정말 각 세계가 정말 잘 분리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이 전시회는 근본적으로 국내 젊은 작가의 작품들을 모아둔 것으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작품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것은 자칫하면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시나리오의 콘셉트와, 현대 예술의 난해함이 혼합되어 더 큰 혼란을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가 블루 프린트보다 레드 프린트에서 더 심했다.


물론 난해한 표현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도전적이기에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도슨트-필자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없었다-나 특별한 가이드 없이 시나리오에만 기대 떠도는 관객들은 전시회장 전체를 레드 프린트로 받아들이게 된다. 솔직히 전시회장을 나오면서도 무언가 정말 좋은걸 본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는 감상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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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광수, 김희천, 권아람 외 다수


장소

플랫폼엘 


기간

2019-12-10 ~ 2020-04-05


시간

11:00 ~ 20:0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 8,000원

청소년 6,400원


주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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