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이것도 출판이라고

글 입력 2020.02.2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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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의 안과 밖



어쩌다 보니 출판업계 종사자가 되었다. 종사자가 되고 나니 바깥에서 바라볼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조금씩 보인다. 주로 하는 생각은 책 팔기 참 힘들다는 것이다. 비단 책이 아니더라도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열 수 있는 상품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유독 책은 더 그렇다. 일단 만들어지는 책에 비해 독자가 너무 적다. 책을 읽는 게 학창시절부터 과제로 여겨졌기 때문인지 책 말고도 재미있는 걸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책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


좋은 책은 어떻게든 사람들이 알아봐줄 거라는 믿음도 대형서점 광고의 힘을 체감하고 나니 흐려졌다. 일을 시작하면서 습관적으로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베스트셀러가 아닌 출간일 순으로 정렬된 책을 살펴보는데, 그 중 내용 면에서나 디자인 면에서나 잘 나왔다고 생각되는 책들도 소리 소문 없이 묻히는 경우를 왕왕 봤다.


이런 출판계에서 어느 날 한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책을 자신의 방식대로 출판하겠다며 퇴사후 1인 출판사를 차린다. 바로 <미란다처럼>을 비롯해 <예스 플리즈>, <민티 프로젝트> 등 웃기는 여자들의 에세이를 '코믹 릴리프' 시리즈로 퍼내는 책덕 출판사 대표 김민희다. <이것도 출판이라고>는 기존의 시스템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사람의 이야기다.

 

 

 

책 한 권 내서 망하지 않기


 

 

역시 어디를 봐도 흔쾌히 출판을 하라는 말은 없었다. '책이 안 팔린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새삼스럽게 입 밖에 내기도 민망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감정이 저 밑에서 올라왔다. '그래? 그럼 뭘 만들어도 안 팔릴 테니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을 내 마음대로 한번 만들어 보지, 뭐'

 

- 37쪽

 

 

<이것도 출판이라고>에는 저자가 어느날 갑자기 영국드라마 '미란다'의 주연 배우이자 작가인 미란다 하트의 에세이를 번역해 출간하겠다 결심한 순간부터 실제로 판권을 사서 번역, 편집, 디자인을 하고 완성된 책을 유통하기까지의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원래 돈이 많았거나 나서는 성격이었나보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다른 평범한 사람이 그렇듯, 저자도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해야 했다. 해외 도서의 판권은 개인이 아니라 출판사 자격이여야 살 수 있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 것이다. 게다가 책 한 권을 출판하기에 퇴직금 600만원은 빠듯한 금액이었기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미란다처럼>을 만드는 일과 외주 편집 일을 병행했다.


판권을 알아보는 문의 메일을 해외 출판사에 보내 놓고도 진짜 퇴사해서 책을 만들게 될 상황이 두려워 차라리 판권이 이미 팔렸다는 답장이 오기를 바랐다는 얘기는 나를 보는 것도 같았다. 이렇듯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들은 한 단계씩 착실히 계단을 올라간 발자국보다는 이리저리 헤매느라 어지럽게 찍힌 발자국에 가까웠다.

 

 

한 권을 팔더라도 서점 한구석에 의미 없이 꽂혀 먼지만 쌓이기보다는 살아 있는 책으로 대해 주는 서점으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랐다. 상업 출판을 하면서 너무 순진한 생각일지 몰라도 나 하나쯤은 그런 방식을 시도해 봐도 되겠지. 이 모든 일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니까.

 

- 90쪽


 

책을 만드는 것은 그럭저럭 혼자 할 수 있어도 책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앞서 판권을 사고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이 저자 개인의 이야기라면,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과정은 철저한 자본주의로 굴러가는 출판 시스템 속에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남고자 하는 일종의 연대였다.


현재 시스템상으로는 '책덕' 같은 작은 출판사가 책을 알리기에 턱없이 불리한 구조다. 책을 팔기 위해 대형서점에서 일방적으로 정한 공급률로만 책을 공급해야 하고, 작은 노출을 위한 광고비도 과도하게 비싸기 때문이다. 동네 서점도 불리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형서점보다 높은 공급률에 책을 가져와야 하면서도 대형서점이 가진 자본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인 할인이나 판촉 이벤트를 열기가 어렵다.


뜻이 있는 독자나 원래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아닌 이상 굳이 더 비싼 돈을 주고 동네서점을 이용할 필요가 없으니 장사가 안 되고, 문을 닫는 동네서점이 늘어난다. 이렇게 자본이 많은 출판사와 서점만이 살아남는 구조에서 책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점점 더 단번에 시선을 끌 수 있는 책들이 출판 시장을 점령하게 된다면 결국 책이라는 매체 자체의 가치가 떨어지며 독자의 외면을 받을 것이다.

 

저자는 이런 악순환을 출판사와 서점, 독자 모두가 함께 만든 사태라고 지적하며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색다른 방법을 모색한다. 작은 동네서점에게 큰 서점과 비슷한 공급률을 제시하고, 독자 및 서점 주인들과 직접 소통하며 새로운 판매 전략을 세운다. 심지어는 동네 장에서 좌판을 깔고 책을 팔기도 한다.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시도를 하면서 저자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품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한정된 생각에 갇혀 있던 나를 반성하는 시간이었다.

 

 

 

시스템을 부수지 못한다면


 

보통 크게 성공하거나 대차게 실패한 이야기 또는 대차게 실패했다가 결국에는 크게 성공한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동기부여가 되어주고 주인공에게 이입하기가 좋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읽고 나면 내 현실과는 많이 떨어져 있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수많은 보통의 성공와 보통의 실패로 채워질 뿐이다.

 

<이것도 출판이라고>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망하지도 않은 한 사람이 기존의 시스템에 작은 의문과 소심한 반항심을 품고 '자유 일꾼'으로 살아가는 날들의 기록이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저자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하며 '책 한 권 내고 망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지만 실제로 망하지는 않았다. 이 '망하지 않음'이 나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시스템을 부수고 새로운 시스템을 제시한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의 성공담 대신 우리에게는 시스템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망하지 않는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하다.


애플을 창업하는 대신(물론 창업한다면 좋겠지만)개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이 공고한 시스템에 작은 균열을 내는 거다. 그 과정에서 좁더라도 다른 길을 찾고 마찬가지로 그 길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과 만나 힘을 합치는 것이다. <이것도 출판이라고>는 비단 자신만의 책을 만들려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이것도' 다음에 출판이 아닌 어떤 것이 와도 괜찮다. 나를 포함해 작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사람, 이 불합리한 시스템 속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주체적으로 살고자 하는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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