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현실의 가상? 가상의 현실? [문화 전반]

글 입력 2020.02.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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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의 등장으로 시작 된 정보통신기술은 이전까지의 다른 기술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며 인간 사회 깊숙히 자리잡았다. 현대 사회는 인터넷이 없다면 정부, 공공기관, 일반 기업 할 것 없이 업무 처리가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고 나를 비롯한 보통의 사람들도 제대로 된 일상 생활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가 됐다.


각 국의 정부가 교류하는 방식이나 기업이 업무를 처리하거나 정보를 주고받는 등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의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모두가 손에 쥐고 살아가는 스마트폰과, 그 스마트폰 속에서 일상을 지배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등 소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ocila Network Service)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녀석들은 이제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게 됐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가는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는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하여 거리나 교통수단 등 물리적인 제약을 벗어나 보다 편리하게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들끼리 서로의 소식을 주고받거나,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갖는 것을 편리하게 해주기 위해서 등장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키고 카카오톡 한 번만 보내면 몇 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과도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본래의 목적이 퇴색되고 점점 사람들이 현실을 위해 온라인의 세계를 이용하는지 온라인의 세계를 위해 현실을 이용하는지 모르게 됐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수준을 넘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나무를 멀리서 보고 있자니 바오밥나무가 된건 아닌가 싶은 수준에 이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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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Gian Cescon on Unsplash

 


처음 핸드폰이라는 수단이 등장했을 때는 전화나 문자를 통해 보다 편리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게임 기능, 카메라 기능 등과 더불어 현재의 스마트폰까지 발전하면서 이제는 단순히 연락을 위한 수단이 아닌 일상생활을 누리는데 필수적인 요소가 됐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는 날이면 지하철이나 버스 어플로 시간을 확인하고 처음 가는 곳은 지도 어플로 길을 찾아간다. 밥 먹을 식당을 고를 때도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주변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또 서비스나 음식 맛은 어떤지 후기를 검색하며 깐깐하게 따진 후에야 발걸음을 옮긴다. 보다 심한 이들은 오직 핸드폰 하나만 챙겨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결제는 삼성 페이나 애플 페이 등으로 해결하고, 교통카드는 모바일 어플로 처리하고, 계좌이체도 뱅킹 어플로 간단히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이용해 소위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장소를 찾아갔을 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저마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단톡 방 또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포스팅 해 자랑하기 바빠 정작 지금 자신이 있는 이 장소를 두 눈으로 직접 음미하고 머리에 각인시키려는 노력은 잊어버리고 디지털의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모습이다.


좋아요나 팔로우 등의 기능이 생긴 이후로 이런 디지털 좀비 현상은 더 심해졌다. 그나마 친구,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곳은 없을까 고민하다 좋은 장소를 발견해 추억으로 남기고자 SNS에 사진을 올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포스팅을 작성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거나, 어디를 갈지 찾기 시작한다.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장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스타 감성’ 따위의 용어를 들먹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좋아요를 받고 자신의 팔로워 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장소를 찾아간다. 육체라는 물리적인 수단으로 물리적인 세계에 존재하며 숨 쉬고 팔다리를 움직이며 살아가는 존재로 태어나 이런 현실을 위해 온라인 세상을 활용해야 할 우리 인간이 온라인의 세상을 위해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Idetity Theft or Identity Crisis



신원 도용은 본래 금융 거래나 결제를 목적으로 타인의 정보를 훔치는 범죄 행위를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정확히는 z세대라 불리는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굳이 이런 범죄가 아니더라도 신원 도용의 다른 면이 보이기도 한다.


일부 혹은 다수라 내가 섣불리 단정 할 수는 없지만 몇몇 이들은 현실의 나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온라인의 특징을 이용하여 자신이 동경하거나 좋지 못한 감정을 품은 대상으로 가장하여 마치 그 사람인 듯 행동하며 사람들을 속이고 날조된 정보를 퍼트리기도 한다.


프로필 사진을 도용하거나 계정을 해킹하거나, 혹은 어떤 수단을 이용해 새로운 계정을 생성하고 그 계정에 자신의 감정이 향하는 대상을 대입하며 살아간다. 금전적인 피해는 입지 않겠지만 이런 행동으로 인해 누군가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의해 연고도 없는 아무개에게 타인에 의한 첫인상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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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Randy Jacob on Unsplash

 


타인의 자아를 훔치기도 하지만 스스로 어떤 것이 진짜 자신의 모습인지 혼동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악플러 또는 키보드 워리어라 불리는 이들은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특정 연예인 또는 인물의 SNS 계정을 찾아 험담을 달며 기뻐한다. 게임 플레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상대방에게 분노를 느끼며 욕설을 퍼붓는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얌전한 사람이 된다. 넷카마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이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는 남자라 하더라도 아무도 사실을 알 수 없는 온라인 상에서는 여성으로 생활하며 다른 이들을 속인 체 살아간다. 아무개는 자신이 동경하는 혹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위치에 오른 것이라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온라인 상에서 연출된 이미지만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체를 결코 알 수 없기에 거리낌 없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을 통해서 일상 속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하며 다시 힘을 내며 살아갈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면 가상의 역할놀이를 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자아, 진실된 자신의 모습이 아닌 만들어진 허상의 자아가 점차 늘어나면서 그 자아를 위해 살아가는 주객전도의 삶이 된다거나 이제는 어떤 것이 진짜 자신인지 혼동하게 된다면 이는 큰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온라인 상에서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고 우리 사회가 점차 온라인 세계에 기대며 살아가게 된다고 하여도 결국 이 모든 행동을 하고 있는 나라는 주체는 현실의 세계에 머물러있고 현실의 세계를 살아가야만 한다. 그런 우리가 부수적인 온라인의 세계로 인해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슈뢰딩거의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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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Felicia Buitenwerf on Unsplash

 


거창하게는 인류가 소박하게는 나 또는 당신이라는 한 명의 사람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고, 이전의 누군가가 남겨둔 지식을 보다 발전시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한 일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끊임없이 기술을 발전시켜왔기에 현재의 우리가 지금처럼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예시로 내가 지금 집에서 쓰는 이 글을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당신도 방에서 편히 읽을 수 있음도 기술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세계가 등장하고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물리적 제약을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보다 빠르고 보다 편하게 만남을 이어간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드러내고자 할 수도 있고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온라인이라는 상자를 지켜보는 슈뢰딩거가 될지언정 그 속에 갇힌 고양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온라인 상에 떠도는 그 많고 많은 자아에 둘러싸여 그들이 나를 봐줄 때에만 존재하고 눈을 돌리면 사라지는 그런 존재로 남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현실에 태어나 현실에서 숨 쉬고 현실을 살아가며 현실에서 죽는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으로 되어 현실에서 당당히 살아가야 한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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