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나는 왜 이렇게 체육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글 입력 2020.02.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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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은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과목이다. 일주일 동안 얼마 안 되는 체육 시간만 기다리는 친구가 있었는가 하면, 그 얼마 안 되는 시간마저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격렬하게 체육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체력장을 하는 날이면 정말 죽고 싶을 정도였다(엄밀히 따지면 이건 체육 시간이 아니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일종의 공포감이 있었다.

하워드 가드너는 그의 저서 <다중지능>에서 획일적 잣대로 평가되는 지적인 능력 이외에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하는 능력들을 지능이라고 말한다. 여기에는 언어지능, 논리수학지능, 음악지능, 공간지능 등이 있고, 그중에는 신체운동지능(Bodily-Kinesthetic Intelligence)이 있다. 이름 그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날아오는 공을 배트로 치거나, 음악에 맞는 춤을 만들거나 하는 일들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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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다중지능> 이야기를 꺼낸 것은 나의 ‘체육 공포증’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것이 바로 나의 다중지능 검사 결과이기 때문이다. 선후관계는 불분명하지만, 내가 신체운동지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사실이 매주 체육 시간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가장 큰 요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쉽게 해내는 일에 쩔쩔매야 한다는 사실은 사춘기 중학생에게 꽤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이를테면 나는 상자에 발바닥을 대고 상자 위의 플라스틱 자를 밀어내는 유연성 검사를 하면 어김없이 한 자릿수가 나왔다. 반 친구들 앞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굽혀지지 않는 허리를 굽히고 그 측정치를 들키는 일은 심리적 건강에 분명 해로운 일이었다. - 나는 아직도 선천적인 근육의 양이나 분배가 결정하는 유연성이 왜 건강의 척도가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


키가 크거나 다리가 긴 친구들이야 마이너스 숫자가 나와도 그러려니 했지만, 둘 중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나는 늘 부끄러웠다. 중학교 때는 외모로 괴롭힘을 당했기에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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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팀 스포츠를 많이 한다는 이유도 있다. 대학교에 팀 프로젝트가 있다면 중, 고등학교에는 팀 스포츠가 있다. 팀 스포츠가 대학교의 팀 프로젝트와 뚜렷하게 차이가 나는 점은 팀원에게 예의를 차리지 않고 서슴없이 비난을 퍼붓는다는 점이다. 그 비난이 두려워 늘 득점보다는 팀에 민폐나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축구, 소프트볼(야구), 발야구, 배구, 농구, 피구에 참여했다.

이외에도 체육복을 챙기고 갈아입어야 한다는 불편함, 땀에 젖은 채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찝찝함도 싫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체육을 싫어하다 보니 몸을 움직여야 하는 모든 활동을 싫어하게 되었다. 운동은 공부할 체력과 시간을 앗아가는 것이라 믿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점심시간도 아껴가면서 공부해야 했는데 어떻게 운동할 시간이 있다는 말인가.


중학교 때부터 이미 체육 이론 수업은 변별력이 없는 시험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다. 같은 교과목임에도 시험 기간에 자습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체육이나 미술 선생님께 먼저 찾아갔고, 체육 시험을 위한 이론 수업도 되도록 짧게 진행되었다.


특수 목적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체육이 불필요하다는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다른 과목 수업 시수에 밀려 체육은 늘 일주일에 두 시간, 3학년이 되어서는 한 시간만 수업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게 약한 운동만 하겠다’는 체육 선생님의 사정이 이루어진 후에 생겨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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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개인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찾아간 헬스장에서 운동 신경이 좋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저 나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이 가져다준 충격은 상당했다. 내가 운동을 못 하기 때문에 체육을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니라, 체육을 싫어한 것이 먼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교과목처럼 늘 재미있고 잘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체육을 할 때만큼은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인기가 많은 동시에 애물단지 같은 교과목이었고, 체육을 잘하는 것은 내가 다른 수업시간에 사용했던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경험한 ‘체육 공포증’은 과목이나 지능이 독립적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편견이다. 하지만 하워드 가드너는 저서에서 일찌감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



각 일화는 특정 지능을 예증하지만 그렇다고 성인기에 지능들이 분리되어 작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지능은 언제나 협력하여 작동하고, 성인의 복잡한 역할은 여러 지능이 결합되어야 완수될 수 있다.


- <다중지능>, p.27



학창시절 심리검사라는 과목을 수강하며, 검사 결과가 피검자의 가능성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거듭 들었다. 모든 검사는 완벽할 수 없고, 하나의 검사가 측정하는 것이 사람의 전부를 이야기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신체운동지능이 떨어진다고 하여 체육을 영원히 못 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동작을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할 수 있는, GRIT(그릿)이라고도 불리는 끈기, 동작은 좀 떨어지더라도 팀원과 소통할 수 있는 인간친화지능 등이 어쩌면 더욱 중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체능과 주요과목, 제2외국어와 영어, 지금은 폐지된 이과와 문과까지 우리는 학교에서 많은 것을 구분 짓고 분리해왔다. 그러나 결국 학교를 이루는 것은 독립적인 능력이나 교과목이 아닌, 다층적인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과 학문이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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