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시국에 공부하는 오타쿠론 Part 1 [문화 전반]

오타쿠의 대한 오해와 오타쿠계 문화의 현실
글 입력 2020.02.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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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내용은 아즈마 히로키의 책 <동물화하는 포스트 모던>을 기반으로 함을 밝힙니다.


 


이 시국에 오타쿠라니



요즘 같은 때에 일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 많이 공부해야하고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경제적, 문화적 이해를 바탕으로 나아갈 때 건설적인 문제해결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수많은 문화적, 경제적 교류가 이뤄져 왔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아닌가. 이 책의 제일 앞부분 <한국의 독자 여러분에게> 에서도 ‘오타쿠’의 표현은 한국 젊은 세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으며, 또 원래 일본과 한국은 전통적인 가치관에서부터 소비사회의 성질에 이르기까지 많은 조건을 공유하고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 문화, 특히 “만화나 게임 같은 역사가 짧은 ‘탈사회적’인 서브컬처의 변천으로부터 현대사회의 정신구조를 탐색하려는 이 책의 의도는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유효한 것”이라고 나도 생각한다. 아즈마 히로키는 서브컬처의 표현양식이나 소비구조는 동시대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적절한 틀만 주어진다면 서브컬처를 읽어내는 것은 사회분석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즉, ‘일본의 오타쿠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깊이 이해하는 작업은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것과 맞닿아 있고, 동시에 한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오덕후, 덕후, 덕질 등으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이 개념과 배경이 되는 문화전반을 이해하고 편견과 오해를 해소하는 일은 아무리 ‘이 시국’이라고 해도 의미가 퇴색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오히려 이런 때야말로 더 알아야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일본에 대한 반감은 잠시 접어두고 아즈마 히로키의 관점을 함께 나눠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오타쿠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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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 등장하는 정의에 따르면 오타쿠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PC, 특수촬영, 피규어, 그 밖에 서로 깊이 연관된 일군의 서브컬처에 탐닉하는 사람들의 총칭을 뜻하며 이 일군의 서브컬처를 ‘오타쿠계 문화‘라고 지칭한다.


오타쿠라는 말은 처음에 대중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알려졌다.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 범죄자의 집에는 5천개가 넘는 비디오와 호러 영화, 로리 상업지 등이 있었고, 이 때문에 오타쿠라고 하면 비사회적이고 도착적인 성격유형을 연상시키게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에는 덕질 등의 용어로 일부분 희석되기는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인식이 오타쿠라는 용어를 지배하는 사회적 통념이 되었다.


일본에게도 역시 ‘전쟁‘은 수많은 상흔은 남긴 듯하다. 일본 사회에 대한 언급은 ’전후‘라는 개념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 없다.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계 문화의 역사를 미국 문화를 어떻게 ’국산화‘하느냐 하는 과정의 역사로 본다. 애니메이션이나 특수촬영, SF와 잡지 문화 등 오타쿠 문화를 구성하는 것은 사실 2차 대전이후에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오타쿠계 문화의 근저에는 패전으로 인해 ‘좋았던 시절’의 일본이 망한 후에 미국산 재료로 다시 일본을 재건하려는 욕망이 숨어있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일본은 ‘일본적인 것’에 집중하게 된다. 다시 말해, 80년대 이후에 애니메이션을 ‘일본적인 것’ 혹은 ‘오타쿠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일본의 전통을 바탕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패전 이후에 전통적인 주체성을 상실한 일본이 미국에서 수입된 기법을 변형하고 재수용하는 과정해서 태어난 산물이라는 것이다.


아즈마 히로키의 관점에 따르면, 오타쿠계 문화는 한편으로 패전의 경험과 연결되어 있어 일본의 주체성의 무너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의 최첨단에 서서, 세계 문화를 이끌어 나간다는 환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타쿠계 문화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뉘는데, 그 근저에는 일본의 문화가 패전 후 미국화와 소비사회화의 물결로 인해 뿌리째 변해버렸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 결국 일본의 문화는 전통적인 것이 이어져왔다기보다는 패전 이후에 미국산 재료를 통해 기형적인 형태로 새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오타쿠를 혐오하게 되고, 과도하게 동일시하게 되면 오타쿠가 되어버리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고 이 책에서는 지적한다.


오타쿠계 문화를 검토하는 일의 중요성은 여기서 더욱 강조된다. 오타쿠계 문화의 근저에는 일본의 전후처리, 미국의 문화적 침략, 근대화와 포스트모던화가 가져온 왜곡 문제가 전부 들어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아즈마 히로키가 책의 서두에서 오타쿠계 문화의 검토가 사회분석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보다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들은 왜 오타쿠가 되는가



오타쿠계 문화의 첫 번의 특징으로 주목받는 것은 2차 창작이다. 2차 창작은 일본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동인지나 동인 게임, 동인 피규어 등을 2차 창작이라고 부른다. 2차 창작은 주로 성적으로 재해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인작품이라고 하면 19금 작품을 흔히 떠올리게 된다.


한국에서는 특히 아이돌 문화를 중심으로 2차 창작이 활발하게 이뤄지는데, BL(남자와 남자의 사랑)이나 GL(여자와 여자의 사랑) 등의 형태로도 자주 창작된다. 그러나 동인 작품이 대부분 성적으로 창작되더라도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 작품의 경우에는 출판사에서 출간제의를 받아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 문학성을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2차 창작물도 종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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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2차 창작물이 수면위로 많이 드러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2차 창작물의 제작과 판매 규모가 상당하다. 코미케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일본의 코믹마켓에는 매년 50만명에 달하는 인구가 모이고 있다. 심지어는 소비자-팬이 아닌 작가 본인이 직접 2차 창작물을 제작하는 경우도 낯설지 않다. <세일러문>의 원작자가 코믹 마켓에 출품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고, <에반게리온>의 제작회사도 본편의 패러디적인 소프트를 여러개 발매했다.


오타쿠의 특징으로 주목받는 두 번째 특징은 ‘허구 중시의 태도’이다. 오타쿠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한자로 집을 뜻하는 ‘택‘자와 높임의 의미는 ’오‘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아카지마 아즈사에 따르면 오타쿠라는 말은 그 관계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집 단위의 관계이고, 오타쿠는 자신의 영역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거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가 해체되는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정신적 안정을 얻기 위해서는 귀속집단의 환상을 어디에나 들고 다녀야한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 혹은 소속감을 확인해주는 역할을 서브컬쳐-오타쿠계 문화가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오타쿠들이 사회적 현실보다 허구(게임 속 세계 등)를 중시하는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오타쿠들이 취미 공동체에 갇히는 것은 사회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가치규범이 잘 기능하지 않아 다른 가치규범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즉,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취미 공동체에 속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더 유리하다는 선택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신문을 읽고 토론하는 것보다 게임에 몰두하고, 애니메이션에 빠지는 행동이 친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타쿠는 덕질을 멈추지 않는다.


이런 지적은 흥미롭다. 오타쿠들은 단순히 사회부적응자나 바보가 아니다. 전쟁으로 인한 전통적인 주체성 상실과 포스트 모던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만들어진 시대적 산물일 뿐이다. 이런 이해는 사소해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동안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태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 소개한 내용을 통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오타쿠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다뤘다. 다음 글에서는 아즈마 히로키가 포스트 모던 오타쿠계 작품의 특징으로 주목하는 ‘커다란 이야기의 조락’과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를 예시와 함께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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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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