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낙서장에서 발견한 사이 톰블리(Cy Twombly) [시각예술]

그래피티 아트의 기초를 마련하다
글 입력 2020.01.24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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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이랑 비슷한데?” 고가에 그림들이 낙찰되는 장면을 목격할 때, 한번쯤은 들어봤거나 해 본 말이다. 뒤이어 나오는 “화가나 해서 돈이나 벌까?”는 너무 예상이 가는 심심한 대화흐름. 제 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명예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신표현주의(Neo __EXPRESSION__ism) 화가 사이 톰블리(Edwin Parker Cy Twombly Jr.)는 이런 평가를 흔하게 받았다.


 

Series of Lepanto Paintings (LepantoIV) (2000).jpg
[Series of Lepanto Paintings (Lepanto IV), 2001, Acrylic, wax crayon, and graphite on canvas, 85 x 122,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감받은 작품.

 

 
톰블리에게 미술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비평가 커크 바르네도(Kirk Varnedoe)는 “우리집 애도 하겠다!”고 비판했고, 동료 화가 도날드 주드(Donald Judd)는 그림에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언급했다.

반면에 세계 최대 미술 경매회사인 소더비에서 2015년에 사상 최고가인 7050만 달러(한화 약 821억 원)에 판매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으며, 2007년에는 그의 작품에 키스를 퍼붓던 팬이 프랑스에서 체포된 사례도 있었다.

 
Untitled (1970).jpg
Untitled, 1970, Oil-based house paint and crayon on canvas. 13 x 21.
2015년 소더비에서 최고가 판매를 기록한 작품.


 
이렇게 완전히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낙서표현을 이용하는 톰블리의 화풍 때문이다. 미국은 앤디 워홀(Andy Warhol) 등의 강렬한 색감의 화려한 팝아트가 대량생산되는 1960년대를 거쳐서 1970년대에는 추상주의가 유행했다. 이후의 신표현주의는 암호화된 추상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예술계에서의 소외계층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 스프레이로 길을 채우는 그래피티(Graffiti)의 파도가 쳤다. 그렇게 낙서운동이 신표현주의의 발생을 도모했고,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한 톰블리 역시 그래피티의 속도감을 따라 정통미술을 벗어났다.

 

*


처절해 보이지는 않는다. 절망적이지는 않다. 당시 미국 사회 흐름의 보편적인 ‘그래피티’ 이미지와 톰블리를 같은 선상에 놓고 봤을 때의 느낌이다. 어렵지 않게 미술을 공부할 수 있었던 톰블리가 뉴욕에서 길거리의 외침을 끌어들여 목소리를 달았다. 순화된 표현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어질러져 있던 톰블리의 작품들이 맥락을 아는 순간 깔끔해 보이기까지 한다.
 
전통추상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얇은 선을 이용하는 톰블리의 작품은 글귀같다. 톰블리는 캔버스에 작화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도구인 연필, 잉크, 크레용 등을 이용했다. 가는 선들은 서로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다. 작품 위에 흰 물감을 덮어 새 작업을 하기도 했다. 역시 모든 것이 사라지지 못한다. 톰블리가 자주 사용하는 아세믹(Asemic Writing) 기법은 의미를 부여 받지 않는 글씨의 나열이다. 마찬가지로 그림이지만 글의 형태가 남아있다.

명시적인 규칙성을 가질 때도 있고, 의미 없는 기호들로 이 세상의 모든 규칙을 파괴해 버릴 때도 있다. 톰블리의 작품들은 작품 유형을 분류하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감을 손가락과 손가락에 묻혀 움직이는 친구의 어깨 위에 앉아서 드로잉을 하기도 했다. 톰블리는 정형성과 비정형성 사이에서,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에서, 이 세상의 모든 이분법적으로 구분될 수도 있는 것들에 연결선 하나를 그려주었다. 서로의 언어로 바꾸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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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llo & the artist, 1975.

 

 
클래식과 즉흥성의 공존이다. 부족미술(Tribal Art) 등 애니미즘 혹은 이탈리아를 포함한 유럽의 신화가 큰 영감이 되었다. 흘깃 작품들을 살펴보면 누군가는 진지함이 결여되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접근의 용이성이 소통의 문이 되어준다. 서정성과 은유성을 녹여낸 그림에는 가만히 바라보고 싶다.
 
Katharina Schm은 톰블리를 “문화적 기반을 총체적으로 광범위하게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신화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를 최소한만 인지하고도 서사 해 낼 수 있는 시적 역사가”라고 말했다. 톰블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연속성 또한 표현했다. 문화, 계층, 신화, 감정, 많고 많은 것들을 채도가 없는 캔버스에 색을 최소화해서 말할 수 있는 예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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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a and the swan, 1962, Oil, pencil and crayon on canvas, 6 x 7. 
백조로 위장해 레다를 유혹하는 제우스의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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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teus, Acrylic paint, 1984, color pencil, pencil on paper,
변신이 자유로운 바다와 예언의 신 프로테우스가 나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영감.

 


누구보다도 미술에 진지했다. 뉴욕아트교육기관(Art Students League)에 장학금을 받고 수학했으나, 기관의 전시 제안에 본인에게는 너무 과분하고 이르다며 거절하기도 했다. 조각가이기도 했던 톰블리가 10여년 동안 조각을 멈춘 이유에 대해서 조각의 화법이 그림과 달라서 접근하기 힘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림의 도화선이 감정, 생각, 분위기이기 때문에 순간적으로도 반응할 수 있는 반면에 조각은 철저한 건설과 같다며 각각의 미술 기법에 대해서도 존중했고,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사이 톰블리는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로 지금까지도 패션, 인테리어 등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키스 해링(Keith Haring)과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등에 영향을 끼쳤다. 특히 해링은 톰블리를 위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톰블리는 시대적 문화로 흘러갈 수 있었던 그래피티를 발전시켰고,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하위문화가 구분을 넘어설 때의 희열을 이후의 그래피티 아트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값비싸게 거래되는 작품들이 하위문화가 뺏겼다고 취급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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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for Cy Twombly, 1988, Keith Haring, Acrylic on canvas.

 


나는 색채가 강한 말년의 작품을 시작으로 톰블리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고흐와 같이 어떤 화가들은 생애의 끝에 다다라서 사용하지 않던 강렬한 색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군가의 끝이 누군가에게는 시작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벗어났던 굵은 선으로 회귀했고 그만큼 감정의 골짜기가 짙어졌다.

비엔날레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뒤로 마음이 편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양극단의 평가를 받으면서 매너리즘에 빠졌을 톰블리에게 생동감이 부여되었을까? 이 시기의 아세믹은, 조금 더 읽기 쉬운 방식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여전히 캔버스 위를 날아다니지만.

다양한 감정과 색채가 나를 끌었고, 전반에서 느껴지는 섬세함이 나를 옭아맸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제멋대로였던 사이 톰블리, 나는 그 감정에 제대로 홀려들었다.

즉흥적이면서도 깊었던 그 서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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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ose III, 2008, Acrylic on ply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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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ving Paphos ringed with waves III, 2009, Acrylic on canvas.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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