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첫사랑은 영원하다? "파인드 미 FIND ME" [도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후속작, 엘리오와 올리버는.
글 입력 2020.01.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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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해당되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어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나서 바로 다음 권, 다음 시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안심되는 일인지. 책 하나를 펼쳐서 다 봤을 때 다음 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아주 들뜨는 경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책이 나온 작가의 사후에 책을 한번에 읽어내려갈 수 있다는 것도 꽤 색다른 경험이다.

2권이 있다는 것을 알고 1권을 읽는 것과, 1권이 허무하게 끝나고 2권을 마냥 기다리는 것은 정말 다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후속작 <파인드 미>를 거의 동시에 받아서, 1권이 완결된 결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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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후속작 <파인드 미>는 당연히 올리버와 엘리오의 사랑이 세월이 흘러다시 이어질 거라는 내 예상을 깨고, 엘리오의 아버지 새뮤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사실 이게 누구 이야기인가, 엘리오 이야기인가, 싶어서 책 소개까지 따로 찾아봐야 할 정도였다.
 
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시리즈에만 해당하는 전개인지는 모르겠는데, 작가는 ‘나’에 대한 힌트를 주기보다는 독자가 당연히 ‘나’가 누군지 알고 있다는 듯이 전개한다.

그게 아니라면, 책이 수십장 넘어갈 때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인터넷에 정보를 검색하고 나서 다시 책을 집어들었을 때쯤에야 그토록 알고 싶었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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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장면
 

새뮤얼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다양한 전문 지식을 자랑하길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왔다. 매 여름마다 교재를 편집하는 것을 도와줄 사람에게 방 한 칸을 내어주며, 매번 식사에 초대하고, 머물 곳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기꺼이 방을 내어주며, 만찬에도 초대한다. 그러면서도 올리버를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린 아버지로 나오기도 한다.
 
사실 주인공의 아버지로 소설에 등장한다는 것의 의미는, 캐릭터의 성격이든, 그 사람을 둘러싼 주변 환경 등이 이미 완벽하게 설정되어 진행되는 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 아버지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의 성격을 새롭게 보여주는 것은 놀라운 시도로 보였다. 그래서 나는 첫사랑의 대단함을 다루었다고 칭송받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보다 주인공이 아니었던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자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파인드 미>를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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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장면

 

 

<파인드 미>는 총 네 가지 정도의 이야기로 나눠진다. 1부에서는 새뮤얼이 자기 나이의 절반에 가까운 미란다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 2부에서는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된 엘리오가 미셸 레옹을 만나는 과정, 3부는 올리버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과정, 4부는 그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야기 진행이 바뀌면서 느끼는 것은 작가는 어떻게 화자가 바뀔 때마다 생각하는 문체를 다르게 했을까, 이 과정에는 번역가가 각각의 캐릭터의 성격을 잘 파악해서 독자들에게 보여준 게 가장 큰 역할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과연 작가의 문체를 그대로 살린 원본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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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원헌드레드

 

 

미국에서 몇 년 살았던 남자친구와 같이 넷플릭스를 볼 때마다 내가 한국어 번역본을 읽을 때 남자친구는 영어를 직접 듣는 모습을 보면서 (예를 들면, 넷플릭스 드라마 원헌드레드에서 grounder를 내가 ‘지상인’이라고 말할 때, 그는 '그라운더'라고 하는 언어 인식 자체에서 차이가 난다) 외국어를 잘 한다면 한국어로 갇힌 나의 삶보다 훨씬 다양한 세상을 느낄 수 있겠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 소설이 아닌 다른 나라 소설을 읽을 때마다 그런 아쉬움을 느낀다. 우리가 읽고 있을 외국 책은 외국 작가의 문장, 문체라기보다는 번역가의 문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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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과 당신의 일, 우리의 삶을 사랑하는 척, 과거의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거짓으로 연기하겠죠. 내 위치에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그래야만 하는 나. 내가 갖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들이 가져야만 한다고 하는 것. 꿈이라고 생각하는 삶이 아닌 우연히 찾은 삶에 맞춰지거든요.”

 

<파인드미>, 미란다 대사, p. 129


 

사실 <파인드 미>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을 고르라고 하면, 새뮤얼이 기차에서 만나 하룻밤만에 연인이 되어버린 미란다를 고를 것이다. 유쾌하고 매력적이며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언제라도 무엇이라도 줄 것처럼 행동하지만, 마음이 돌아서면 마지막에 통보하고 바로 돌아서는 사람. 성욕에 솔직하고, 또 아픈 아버지를 매주 찾아가서 돌볼 줄 아는 사람. 미란다를 보며, <노르웨이의 숲>의 미도리가 떠올랐다. 낯가림없이 다가가며, 성욕에 아주 솔직하고, 같이 있으면 덩달아 유쾌해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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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꽤 운명적인 만남과 그의 결말을 좋아하는 듯했다. 모든 사랑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이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상대방에게 완벽하게 전달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인데도 그의 책에서는 운명적인 사랑이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며 사랑과 결혼에 대해서 달라진 생각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더라도 함께 살다보면 서로를 향한 시선보다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일상이 많아질텐데. 어쩌면 그 일상에 익숙해지다보면 사랑이나 열정, 설렘이란 아무것도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

 

사실 그 두 사람 사이의 감정보다는 결혼을 하고 나서 달라지게 될 사회적인 인식, 직장에서의 직위, 현실적인 육아, 출산 후에 달라질 몸, 그리워하게 될 자유로운 젊은 시절, 어쩌면 생길지도 모를 우울증 따위 온갖 부정적인 것들, 그리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상대방의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을 미래같은 것들이 두렵다.


한편으로는 지금 살아온 것보다 두 배보다도 훨씬 더 많이 남아있을 앞으로 살아갈 날들 동안 혼자가 되어야 하는 것 역시 두렵다. 혼자로 남는 것의 두려움과 앞에 언급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에게 줄 두려움 사이의 무게를 잰다면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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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아이를 갖게 되는 미래가 있다면, 벌써부터 두려워지는 이유는 나중에 내 삶에서 너무나 소중한 존재가 되어있을 아이를 잃어버리거나 떠나보내는 일이 생긴다면 내 삶은 얼마나 공허해질 것인가. 어릴 적엔 멋모르고 이끌려서 해버렸던 사랑에는 그만한 대가와 고통 역시 따른다는 것에 새삼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다.

 

며칠 전 동생에게 결혼과 출산에 대해 물어봤을 때, 명쾌하게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한번 사는 삶이니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가족이 있어서 좋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족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순수하게 꿈을 꿀 수 있을까. 자기가 말하는 상대방이 만약에 아주 현실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근거없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순수한 꿈을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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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내가 엘리오였다면,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버린 올리버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결과론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그를 미워하고 또 미워해서, 그 미움이 과거의 추억까지 미움으로 만들어버릴 때까지 미워하다가,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질거다. 그러다가 20년쯤 지날 무렵, 그를 사랑했던 기억도, 그를 미워했던 기억도 다 사라져버려 그냥 이름도 기억나지 않을 한 사람이 되겠지.

 

과연 현실에도 20년이 지나 이어지는 그토록 열정적인 사랑이 존재하기는 하는지 잘 모르겠다. 1권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읽고 나서와 마찬가지로, 그토록 영혼까지 전달되는 사랑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 자신의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하고 나서,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의 상실감과 허무감은 그 어디에서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당연한 현실이지만, 로맨스 소설에서는 새드엔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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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책들을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꿈꾸는 사랑, 꿈꾸는 미래 속의 일상 같은 것들이 굉장히 평범하다는 것에 놀랐고, 그런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사랑을 꿈꾸지는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였다. 만약 영화로 봤다면 그저 그들의 사랑을 마냥 응원했을 것만 같았기에, 제삼자가 될 수 없도록 만드는 현실이 조금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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