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흐는 정말 비운의 화가였을까 :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리뷰
글 입력 2020.01.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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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흐를 비극적이고 강렬한 삶을 살다 간 천재 화가로 기억한다. 그는 만성적인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며 평생을 살다가 스스로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짧은 생애 동안 당대 평론가들과 대중에게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다 이 세상을 스스로 떠난 이후에야 전세계의 이목을 이끌며 천재 화가로 인정받게 된 그를 불운의 화가라고 칭하는 것은 어쩌면 정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관람하게 된 것 역시 그의 비극적이고 강렬한 인생 이야기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뮤지컬을 통해 본 고흐의 인생은 생각보다 순수했고, 열정적이었고, 낭만적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불운과 비극, 강렬함이라는 몇몇 단편적인 키워드로만 기억하던 고흐라는 화가의 진짜 인생이 궁금해졌다.

그림에 온 삶을 바친 그의 인생이 정말 비극적이기만 했을까. 마지막 그림에 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후 스스로의 가슴에 권총을 겨눈 순간,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고흐의 시선으로 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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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을 꼽으라면, 단연 첨단 기술로 살아 움직이는 고흐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공연장에 들어서면 하얀 벽면이 무대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커다란 벽면이 영상화된 고흐의 작품을 비추는 캔버스 역할을 한다.

이 거대한 캔버스 위에 펼쳐진 고흐의 작품 속 배경과 인물들은 3D 맵핑이라는 첨단 기술과 만나 생동감 있게 살아 움직이고, 극이 진행되는 내내 빈센트와 테오가 등장하는 무대의 배경으로 사용된다.
 
또한 이 무대는 고흐가 그림을 완성하는 캔버스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고흐가 ‘아를의 침실’과 ‘까마귀 나는 밀밭’을 완성하는 장면 등이 그렇다. 고흐의 이 역작들은 붓놀림을 연상시키는 배우의 손짓에 따라 백지 같은 무대를 채운다. 그림을 그릴 당시에는 가난하고 초라한 화가였던 고흐의 감정선을 따라가다가, 훗날 전 세계적인 역작이 된 그의 작품이 큰 스크린 속에서 형태를 갖추어 가는 것을 보는 순간 돋는 전율은 이 작품의 큰 매력 중 하나다.
 
이 특별한 무대와 기술 덕분에, 관객들은 고흐의 그림을 통해 고흐가 살았던 시대 속 사람들과 풍경을 접하게 된다. 내면의 세계와 감정을 고스란히 그림에 담아냈던 그의 작품을 배경으로 이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고흐와 세상을 향한 시선을 공유한다는 말과 같다. 고흐에게 그림이란 세상을 보는 눈이자 세상 그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테오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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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수많은 역작들 사이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고흐를 생각하면 유독 반짝이는 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래, 따지고 보면 다 뼈다귀 같은 일이지. 그런데 그 뼈다귀 같은 일 때문에 또 살아가는거 아니겠어. 사랑, 사랑으로 살기엔 이미 늦었어.

 

- 신경숙, 깊은 슬픔

 

 
온 삶을 그림에 바쳤던 빈센트의 인생을 보며 문득 떠오른 구절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차갑게 뱉는 대사다. 아름답고 강렬한 예술을 하면서도 평생을 생활고에 시달린 빈센트의 자조 섞인 말 같기도 하다.
 
빈센트는 삶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뼈다귀’ 같은 일들과 예술과 그림, 진정한 아름다움을 좇는 ‘별’ 같은 일들 사이에서 평생을 괴로워한다. 이 뼈다귀 같은 일들을 하지 않으면 별을 좇는 삶을 지속할 수 없으나, 이에 코를 박고 열중하다 보면 좇던 별과 점점 멀어지게 되는 아이러니 같은 삶.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모순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던 빈센트의 삶에 균형을 찾아 준 인물이 바로, 그의 동생 테오 반 고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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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는 현실 속의 뼈다귀 같은 일들을 자처하며 형이 별을 좇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빈센트가 평생을 캔버스 위에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든든한 물질적, 정신적 후원자였던 테오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빈센트는 평생을 자신의 현실을 대신 살아 준 테오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아간다. ‘꿈이 빚을 졌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테오는 빈센트의 그림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동경한다.

테오는 빈센트에게 그림을 시작해볼 것을 제안했고, 모두에게 외면받은 그림의 가치를 홀로 굳게 믿었으며, 잊혀가는 기억을 붙잡으며 여생을 고흐의 유작전 개최에 바치기도 했다. 이 열정과 사랑을 볼 때 테오는 꿈의 희생자라기보다는, 빈센트와 함께 별을 좇던 예술가다. 별을 닮은 형과 형의 그림을 사랑했던, 달 같은 사람이다.
 
 
 
별을 닮은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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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별을 좇는다는 것은,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피어나는 자기 의심과 불안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 빈센트는 그 과정에서 극도의 불안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를 ‘개 같은 놈’이라고 칭하며 세상과 단절되기도 하고, 한쪽 귀를 자르는 끔찍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 가슴에 총을 겨누었던 그의 최후도 끝없는 자기 불안의 말로에 불과했던 걸까. 마지막 그림에 삶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은 후 스스로의 가슴에 권총을 겨눈 순간, 빈센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좋아, 완벽해.”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말하는 빈센트의 최후는 결코 슬프거나 어둡지 않다. 생의 온 힘을 다해 ‘까마귀 나는 밀밭’을 완성하고 ‘좋아, 완벽해’라고 말하는 빈센트의 얼굴에는 불안이나 의심보다는 자기 확신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다. 무대 밖으로 걸어 나가는 그의 표정은 아무리 봐도 생을 포기한 사람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생에서 이뤄야 할 것들을 모두 이룬 사람의 홀가분한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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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믿고 싶다. 빈센트가 생명을 걸어 완성한 마지막 그림을 통해 결국은 별에 도착했다고. 그래서 이 극에서만큼은, 빈센트를 비운의 화가라고 칭하고 싶지 않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별을 좇던, 별을 닮은 화가의 이야기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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