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으로 살았던 사람, 빈센트 반 고흐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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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5주년 기념 공연으로 돌아왔다. 정말 사랑하는 작품이기에 매 시즌마다 꾸준히 봐왔지만, 내게 이번 시즌은 조금 더 특별하다. 고흐의 고향인 네덜란드에서 6개월 동안 살다 온 후에 보는 공연이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뮤지엄’을 관람하고 나올 때마다 생각했다. 아, 얼른 한국 가서 뮤지컬을 꼭 다시 봐야겠다.
공연이 시작하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라는 자막이 뜨자마자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고흐가 태어나고 머물렀던 네덜란드에 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의 삶과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고흐의 그림이 ‘영상’을 통해 살아나다
공연이나 영화, 책은 모두 ‘어떻게 시작하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장면으로, 어떤 방식으로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영상’을 활용한다. 극장이 암전되면 고흐를 따라 그의 방으로 들어가는 듯한 실감나는 영상이 재생되고 관객들은 공연 속으로, 고흐의 삶 속으로 자연스레 빠져든다.
영상은 고흐의 그림을 무대에서 살아 숨 쉬게 만든다. 그림 속 인물이 손을 흔들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고흐의 손짓과 붓질에 따라 무대 위에 그림이 그려진다. 커튼콜 때 고흐의 그림들이 하나씩 날아와 비어있던 벽을 채우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진작 2층 가서 볼걸! 공연을 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이다. “빈센트 반 고흐”를 여러 번 봤지만 항상 1층, 그것도 앞쪽에서만 관람했다. 무대를 전체적으로 보기는 힘들어도, 배우들의 표정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영상과 전체적인 무대가 중요해서 한번쯤은 2층에서 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앞열 덕후’인 나는 고집을 부렸다.
앞열만 고집했던 지난날이 후회될 정도로, 2층에서 보는 무대는 정말 신기하고 환상적이었다. 늘 일부만 보거나 아예 보지 못했던 무대 바닥 영상을 이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개의 눈물”에서 무너지는 방바닥과 “자화상” 때 바닥에 고흐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5주년 공연에서야 발견하다니. 2층에서 보는 아몬드 나무 꽃잎이 흩날리는 장면은 더욱 아름다웠다. 나 같은 ‘앞열 덕후’들에게 꼭 이야기하고 싶다. 속는 셈 치고 2층에서 한번은 봐보자고.
2인극이 가지는 제약 역시 영상을 통해 극복했다. 극 중에는 고흐와 테오 말고도 아버지, 안톤, 고갱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2인극이기에 테오 역의 배우가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한다. 가장 인상깊은 연출은 역시 아버지의 등장이다.
고흐가 시엔에 대해 털어놓자 테오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다. 그때 테오의 뒤에서 거대한 아버지의 그림자가 일어나고 테오 역의 배우가 목소리로만 아버지를 연기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여러 인물을 표현하기 힘든 2인극의 어려움을 영상을 통해 슬기롭고 재미있게 해결했다.
고흐의 이야기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넘버’
영상이 고흐의 그림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면, ‘넘버’는 고흐의 이야기가 뮤지컬 속에서 숨 쉬게 만든다. 소위 ‘뮤지컬스러운’ 넘버는 아니기에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선우정아만의 감성적인 멜로디는 고흐의 삶과 죽음, 행복과 고난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야
색깔들이 내 어깨를 두드리고
풍경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이네
자연은 그야말로 명작,
세상은 그야말로 전시회
강력하게 살아 움직이는 그 힘,
이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행복, 행복.
-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가장 좋아하는 넘버는 매일 바뀌는데, 오늘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고르고 싶다. 이 넘버를 들으면 고흐가 사랑한 자연을 그림 속에 담아낼 때 느끼는 행복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까지 미소 짓게 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서 웃으면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지만 형의 빛나는 눈과 생기 있는 입술, 천연덕스러운 웃음을 발견하고 덩달아 기뻐하는 테오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
그림을 사랑했던, 그림으로 살았던 사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는 고흐가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는 가사 및 대사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그 표현에는 ‘그림’이 빠질 리 없다. ‘역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 ‘그림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한 사람’, ‘그림을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그림으로 살았던 사람’. 이 모든 말이 ‘빈센트 반 고흐’를 설명한다.
그림을 사랑했던 고흐와 그런 형을 사랑했던 테오의 이야기. 힘들어하는 형을 보며 속상해하는 테오와 동생에게 더이상 빚을 지기 싫다며 괴로워하는 고흐. 테오는 그의 아들 ’빈센트‘에게 빈센트 반 고흐를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긴다. 이는 관객들에게 남기는 말이기도 하다.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 그림, 그리고 그의 삶을 기억해달라고.
커튼콜 때 1층부터 2층까지 모든 객석을 바라보며 고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사랑했던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너무 슬퍼하지는 마세요. 그림을 그린다는 건 제게 소중한, 온전한 기쁨이었으니"
- "부치지 못한 편지"
울고 있는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그림은 온전한 기쁨이자 생명이었음을 꼭, 기억하려 한다.
[채호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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