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늘 그리운 고향, 그리고 타향살이 [사람]

글 입력 2020.01.0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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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곳 혹은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립고 정든 곳’.
타향은 그 정반대로, 고향이 아닌 곳을 말한다.

 
 
넌 고향이 어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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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태어나서 그대로 살아온 사람을 우리는 ‘토박이’라고 부른다. 도시일수록 토박이는 더 드물고, 시골일수록 토박이는 많다. 그래서 그런가, 타향에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엄청난 확률을 뚫고 이어진 인연인 것처럼 그렇다. 며칠 전 서울에 취직한 친구가 직장에서 같은 고향 사람을 만났다며 정말 신기하지 않냐고 연락이 왔었다. 나조차도 반가운데, 친구는 오죽했을까.

어릴 적의 난 고향의 의미를 잘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쭉 자라온 곳이 없었으니까. 출생지는 대전이지만 3살 때 엄마의 건강 때문에 제주도로 건너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쯤 살았고, 다시 가까운 육지로 건너가 갈대가 아름다운 순천에서 살았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순천에서 그렇게 자리를 잡나 싶더니, 중학교 2학년 땐 오빠의 대학 진학 결과에 따라 전주로 이사를 왔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고향이 어디니?’라는 질문이었다. 태어난 곳이라고 말하기엔 대전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고, 제주도라고 말하기엔 고작 5년밖에 살지 않았으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순천도 너무 소중한 기억이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전주도 소중하기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차라리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이 더 편했다.

그렇게 남들 다 있는 고향이 나만 없다는 생각하던 때, 난 대전으로 대학 진학을 했다. 다시 돌고 돌아 대전으로 왔다는 생각에 오묘했다. 동기들과 선배들은 역시나 나의 고향을 물었고, 나는 나의 이사 경력을 말해야 했다. 신기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고, 나는 익숙한 듯 웃어넘겼다. 그러고는 속으로는 당당하게 자기 고향을 말하는 동기들을 부러워했다. 한 지역의 토박이들이 난 그렇게 부러웠다. 겹치는 초중고 동창들, 그 지역민들만의 알 수 없는 유대감 같은 것들이 그랬다.

 

타향인 듯 타향 아닌 타향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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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작한 타향살이는 의외로 나를 향수병에 걸리게 했다. 여러 번 이사를 다니면서 생긴 장점인 빠른 적응력이 무색해질 정도로 나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그리워했다. 시험 기간에 동기들이 “아, 집에 가고 싶다-”라고 투덜대는 소리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 후 부모님과 친구들, 집이 있는 곳이 고향이겠거니, 하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 고향을 스스로 정했다.

고향이라고 생각하자마자 그 지역에 대한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특히 관광지로 유명한 덕에 아는 사람이 여행 코스를 물어보면, 이곳저곳 추천해주며 맛집까지 소개해주었다. 이제 나는 타향에서 집에 가고 싶단 말보단 OO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이상하게 힘이 솟는다. 고향에 가는 버스를 탈 땐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고향의 힘이 이렇게 큰지 타향살이를 하면서 그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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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난 이미 토박이는 글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원하는 직장은 고향에 없다. 자의든 타의든 도시로 자꾸만 내몰린다. 아마 나 말고도 그럴 것이다. 디자인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 무대 설치 미술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 뮤지컬 연출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 등 특히 문화·예술 쪽을 희망하는 친구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울이 싫지만, 서울이 좋고, 고향은 그렇게 타향살이를 하는 동안 점점 더 그리운 곳이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타향에 살다가 고향을 방문한 사람은 안정감을 느낀다. 고향에 잠깐 내려오기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분명 타향에도 집은 있고, 친구들도 있는데 고향이 주는 그 안정감은 따라갈 수 없단다. 부모님이 해주시는 집밥이나 자신이 오랫동안 살아온 집, 학창 시절 친구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고향은 그냥 공기조차 다르다. 존재 자체로 일하는 목적이 되기도 하고,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고향과 직장이 같은 토박이들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교통비, 월세가 잘 나가지 않는다는 것도 부럽지만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엄청난 티켓팅과 교통 체증을 뚫고 내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정말 최고로 부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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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는 참 신기한 곳이다. 천 만 명에 달하는 인구 중엔 서울 토박이도 많고 타향살이하는 사람들도 많다. 꿈을 위해 자의로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도 있지만, 선택의 폭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내밀려 올라온 사람들도 있다.

나의 고향은 불편하지만 편안하고. 서울은 편한데 불편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개개인의 감정도 너무나 많고, 골라야 할 밥집이나 카페도 너무나 많고, 각자의 고향도 너무 많다. 내가 사랑하는 문화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지만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이나 카페는 없는 것 같다. 분위기는 돈을 주고 쉽게 살 수 있지만 오래된 추억을 쉽게 살 수는 없어서이다.


 
여전히 토박이가 부럽지만요


여전히 나는 토박이가 부럽다. 한 지역이 나이 들어가는 시간만큼 함께 나이 먹었다는 사실은 매력적이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지 않아도 그 지역의 맛집과 분위기 좋은 명소들을 알고 있다는 점도 대단하고, 동네 지리를 잘 알아 지름길로 가는 것도 신기하다.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2019년에는 휴학을 했다. 나를 잘 알겠다는 목적과 함께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휴학의 목적이었다. 그러면서 고향에 좀 더 정을 붙이는 시간을 가졌다. 다른 지역 친구들을 불러 다양한 코스로 구경을 시켜줬다.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 뿌듯해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고향에 대한 애정이 더 느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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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시 복학을 해야 한다. 자취방도 이미 구해놓았고, 가족들도 슬슬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자취할 때 이것도, 저것도. 필요한 거 다 가져가라는 엄마의 말이 든든하면서도 아쉽다. 뭘 가져가도 내 자취방은 채워지지 않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취업을 하면 아마 또 다른 타향살이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언제쯤 타향살이에 익숙해지게 될까.

타향살이는 외롭다. 아마 그곳에서 산 시간이 많이 흘러도 외롭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고향은 그럴 때 나의 친구도 되었다가, 가족도 되었다가, 추억도 된다. 반겨줄 곳이 있다는 것은 지친 삶에 힘이 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모두 마음속에 그리워하는 어딘가를 품고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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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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