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도서]

글 입력 2020.01.03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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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클리셰’란 무엇일까? 클리셰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대중매체를 통해 이 단어를 접했을 때, 한동안 그 뜻을 궁금해 했었다. 어떤 이야기, 특히 영화 속에서 진부한 공식이나 상징처럼 등장하는 소품이나 장면, 대사 등을 말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 후, 이건 이런 장르 영화의 클리셰야, 하며 다음 장면을 척척 맞추며 또 의문이 들었다. 이 뻔한 기제를 감독과 제작진이 왜 반복해서 보여주는가였다. 정말 ‘진부한 공식’이라면 보통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게으른 창작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우선 피하고 볼 텐데. 그 장면이 아니면 컷과 컷 사이를 대체해 메울 것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클리셰들은 어떤 이유로 계속 화면에 나타나는가.
 
저자인 듀나는 이에 대해 자신이 20년간 보아온 클리셰들을 정리해 사전으로 펼쳐내었다. 얼마나 수많은 클리셰들이 있으며 그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궁금했던 이라면 어느 정도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소개

 
지금껏 즐겨왔던 ‘그 영화, 그 드라마들’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가려진 재미를 찾아주는 책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볼 때면, 저절로 다음 상황을 예상케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공포 영화에서 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그는 얼마 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악당에게 드디어 주인공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면? 악당은 한심하게도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술술 털어놓는다. 또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억상실증은 영상 매체 속에서는 왜 이리 흔할까?
 
홍세화가 한국에 ‘똘레랑스’를 소개했다면, 이제는 보편적 단어가 된 ‘클리셰’의 전파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은 듀나가 아닐까? 1930년대 ‘프랭크 카프라’영화와 90년대 미드 <프렌즈>를 인용하며, 동시에 넷플릭스 시대의 수퍼히어로 영화를 논할 수 있는 작가가 바로 듀나이다. 이처럼 해박한 지식과 장르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냉철한 생각을 편안한 문체로 쓰는 것이 그의 특기이다.
 
여러 사례와 인용을 통해 재미있게 봤던 명작의 내용을 되새기게 하여 독자를 미소 짓게 만들고, 옛글에는 20년이 흐른 현재의 후일담이 함께해 시대에 따라 변천한 대중문화의 흐름까지 돌이켜보게 만드는 깊이까지 갖추고 있다. 클리셰를 소개하고 사정없이 해체하는, 소설가라기보다 과학자에 가까운 그의 논리적인 가혹함이 오히려 이 책을 너무나 즐겁게 만드는 이유이다.
 
 
 
반복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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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듀나는 클리셰가 반복이나 진부함 그 자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클리셰의 특징은 ‘자기 생각 없이’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클리셰들이 장르 안에서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진부한 작품 속에서는 진짜 정서와 아이디어 대신 공식과 규칙이 돌아다닙니다.”


 
이 문장 이후로 책을 읽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분명한 제작 의도나 메시지가 없이 계속해서 여러 영화에 등장하는 것이 클리셰라면,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 사례들도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작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른 영화의 장면을 그대로 차용해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클리셰가 진부하고 지겹다고 여긴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관객들이 클리셰라고 느끼지 못하고 지나칠 만큼 영화의 메시지에 진정성이 있거나 감동이 커서 그것을 오히려 새롭게 느낄 수 있다니.

게다가 이전에 수없이 봐왔던 장면이기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된다, 물론 독창성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예측 가능한, 익숙한 재미

 
클리셰는 어쨌든, 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이것을 모아 사전을 펴낼 수 있을 만큼 전형적이다. 저자는 클리셰를 ‘트릭’이라는 표현을 써서 전형적이지만 관객들이 이를 수용하는 이유에 대해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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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제한된 시간의 영상 창작물인 만큼, 반복되는 대화를 피하고 시간의 흐름을 실제보다 과장되게 빠르게 표현하는 것. 호러물의 서스펜스를 위해 주인공은 반드시 금지된 구역에 가고 외부의 경고를 무시한다는 것. 인물들의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등장시키는 게이 혹은 레즈비언 친구. 동정심을 유발하는 고아인 주인공 등.
 
이야기 전개에 필요할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기 위해 삽입되는 이러한 클리셰들은 ‘수용 가능’하다. 그러나 특정 장면 뒤에 너무 뻔하게 예상되는 전개로 경험할 익숙한 재미는 과하게 반복되면 위험하다. 이미 여러 번 보아온 클리셰라면 만드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금방 질리게 되기 때문이다. 영화 내에서 클리셰를 비꼬는 대사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그동안 지나쳤던 수많은 영화의 클리셰들의 진짜 의미가 궁금했던 이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뻔하고 진부하다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영화의 양식이 존재함과 동시에 소멸할 수 있는 이유는, 시간인 것 같다. 아직 충분히 써먹지 않았기 때문에 반복되고, 시대가 바뀌거나 유행이 지나 낡은 것은 없어진다.

종종 영화를 더 재밌게도 하지만, 자칫하면 실망시킬 수 있는 클리셰를 적절히 써먹은 영리한 작품들은 분명 사랑받는다. 그런 작품이라면 클리셰인 것을 알면서도 충분히 속아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거기에 독창적인 연출과 기막힌 대사, 그리고 분명한 메시지가 추가된다면 금상첨화겠다.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
재미있는 영화 클리셰 사전
 
 
지은이
듀나

출판사
(주)제우미디어

출판일
2019년 12월 5일

가격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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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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