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낯선 과학을 번뜩이는 상상력으로 그려내다 -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도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리뷰
글 입력 2019.12.3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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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SF 소설의 세계는 깊고 넓으며 우아하다”

 

과학과 SF가 함께하는 독특한 구성의 이 소설집,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소설로서의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인간인 우리가 우주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게다가 과학에 대한 흥미까지 한껏 끌어올리기까지 한다. 현실로 밀려오는 SF 소설 속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직접 목격하길 원한다면 꼭 읽어 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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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평생을 뼛속 깊은 문과생으로 살아온 내게 과학과 SF란 낯설기 그지없는 분야다. 하지만 사람은 속하지 않은 분야나 잘하지 못하는 분야에 쓸데없는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라, 각종 SF 영화는 거리낌 없이 잘 보는 편이다. 그럼에도 SF와 소설의 합작은 여전히 낯설었다. 영화처럼 화려한 영상미도, CG도 없는 활자에 SF를 덧입히는 게 정말 흥미로운 작업일까? 기대 반 의문 반으로 이 책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놀라웠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제목부터 강렬하다. 그 유명한 일본의 장편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패러디일까? 그것에 물리학자 슈뢰딩거의 이론을 녹여낸 것이려나? 추측만 이어진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소설은 8개의 단편 소설을 묶은 모음집이었다. 개인적으로 단편보다는 장편을 선호하는지라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것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8개 각각의 이야기 모두 장편으로 만들어져도 충분히 이야기가 이어질 만큼 번뜩이는 상상력이 집약되어 있었던 것이다.

 

*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3편만 간략하게 소개해보려 한다.

 

첫 번째 이야기, ‘메멘토 모리’는 부제처럼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라틴어 낱말이다. 소설 속 세상은 노화를 늦추는 신약이 개발된 후, ‘죽음’이 운명이 아닌 선택이 된 시대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느냐, 혹은 죽음을 극복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절대적인 ‘NO’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인간은 노화에 따른 죽음을 막았을 뿐,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은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더 이상 노화로 죽지는 않지만, 그만큼 각종 질병이나 사고에 따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더 커지고 말았다. 언젠가 죽기에 그만큼 가치 있는 삶이며, 그렇기에 때로는 과감한 도전을 하는 것이 인생일 텐데, 영원에 대한 갈망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고립시켰다.

    


그런데 영생을 얻은 지금은 오히려 모두가 매 순간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죽음에 대한 경계와 저항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되고 말았다. p.30


 

인류에게 있어 죽음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산이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진시황이 그토록 애타게 염원했던 불로장생(不老長生)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인류의 재앙이 되고 말 것이다. 죽음이 있기에, 죽음을 기억할 수 있기에 현재의 삶이 소중한 것일 테니.

 

*

 

세 번째 이야기, 이 소설의 표제작이기도 한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는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고안한 사고 실험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실험 대상이었던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다. 솔직히, 난 타고난 문과생인지라 소설의 앞설 뒷설의 설명을 읽어도 반쯤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이해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결국 모순덩어리라는 것.

 

살아 있지만 동시에 죽어 있고,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이 구절이 정말 실현 가능할까? 이런 상황에 놓일 경우 정말로 세상은 둘로 나뉘어지는 건 아닐까?

 


나 자신을 포함해 아무도 나를 관찰할 수 없던 그 시간 동안 혹시 나는 닐스의 말처럼 정말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 (중략) … 게다가 그들은 다른 실험에서는 비슷한 상황들이 얼마든지 벌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p.73


 

아무도 관찰할 수 없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상황은 결국 영영 알 수 없다는 말로 들리지만, 그럼에도 과학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비밀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이니, 언젠가는 영화 속 히어로처럼 몸을 자유자재로 늘리고 줄이는 현상이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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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번째 이야기, ‘튜링 히어로’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구별이 불분명해진 세상을 다루고 있다. 인간이 심혈을 기울여 창조해냈지만 결국 인류의 재앙으로 판단되어 모두 파괴되기 시작한 안드로이드, 애석하게도 그 감별방식은 100%의 확신을 갖지 못한다. 99.9999%, 즉 100만분의 1의 확률 탓에 운 좋은 안드로이드가 인간으로 판명되어 살아날 수도, 반대로 운 나쁜 인간이 안드로이드로 판명되어 애꿎은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간은 최선을 다해 안드로이드를 파괴하지만 이미 인간 세상에 깊숙이 뿌리 내린 안드로이드들은 자신들만의 피난처를 만들어 그곳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100만분의 1의 확률로 쫓기게 된 인간 또한 그들의 세상에 발을 디뎠다. 알고리즘대로 움직이는 안드로이드와 달리 온갖 모략을 부릴 수 있는 인간의 영입은, 결국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지배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운명은 나를 안드로이드의 리더로 이끌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그 자리를 받아들이고 나를 죽이려는 인간들을 상대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 (중략) … 이제 안드로이드의 활동은 나의 지도하에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p.148


 

인간과 안드로이드, 즉 인공지능의 관계는 이제는 숨길 수도 없고, 감춰서도 안 되는 문제사항이 되었다. 이미 조금씩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인공지능이 과연 어디까지 자랄지 예측하면 무섭기도 하다. 인간이 창조한 만큼 그들이 인간을 먹어버리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

 

인간이 뻗어나갈 수 있는 과학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유한한 듯 확장되는 과학과 무한한 상상력이 결합한 그 시너지는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을지, 감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빛나는 기술발전을 누리고 사는 세대로서 과학은 경이롭지만 동시에 너무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늘 애를 쓰느라 피곤하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과학은 발전되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욕망이 강한 인류가 지구에 존재하는 한 과학이 멈출 일은 없을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각종 SF 영화, 소설 속 세상이 현실화 된다 할지라도 난 그때까지 살아 있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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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영화 <인셉션> 속 세상이 궁금했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지은이 : 원종우

판형 : 128*188mm

쪽수 : 196쪽

발행일 : 2019년 12월 6일

정가 : 13,600원

분야 : SF소설

ISBN 979-11-85585-81-9 (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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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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