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허공에 대고 연기하는 영화 - 도그빌의 낯설게하기 [영화]

그야말로 개 같은 마을, 도그빌
글 입력 2019.12.30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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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도그빌'과 '500일의 썸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개 같은 마을, 도그빌



‘낯설게 하기’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해서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표현하는 에술적 기법이다. 지연과 제동의 원리를 통해 지각의 자동화를 피하고, 낯선 감각의 간극만큼 관객이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러시아의 문학이론가인 빅토르 시클롭스키에 의해 개념화 되었고 독일의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의해 연극장르로 확대되며 더욱 구체화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도그빌>과 <500일의 썸머>를 중점으로 낯설게 하기 기법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자.

 

영화 <도그빌>에서는 세트를 독특한 방식으로 활용하며 낯설게 하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보통 촬영할때는 작품의 분위기와 컨셉에 맞는 장소를 물색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비용을 들여 세트라도 제작한다. 그래야 작품의 분위기가 깨지지 않고 관객들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그빌은 이런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한다. 마치 연극의 뒷면, 세트의 뒷면까지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연극을 하듯이 바닥에 분필로 영역을 표시해놓고 집을 표현하는 것이다.


 

도그빌 바닥.jpg

 

 

무대(세트)뒤는 비참해도 무대는 화려해야한다는 생각을 깨는 시도이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상황에 몰입할 듯 하다가도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공중에 손을 뻗으면 문을 여는 듯 끼익 소리가 나고, 집은 벽이 없어 서로가 서로를 볼수있는데 못 본척한다. 감독이 일부러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려 한다는 느낌은 특히 몰입도가 가장 높아야하는 작품의 후반부에서도 계속 드러난다.  주인공인 그레이스는 아주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심각하게 고민하는데,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던 그녀는 덤불을 만진다. 정확히는 바닥에 덤불이라고 분필로 그려져있는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

 

이런 형식은 크게 두가지 정도의 의미를 내포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볼 수 있는데 못 본척한다는 것이다. 이 현실적인 상황은 작품의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그레이스가 성폭행을 당하고 점차 성노리개로 전락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이를 못본척한다.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이다. 남자들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못본척하고, 여자들은 그녀에 대한 질투로 이를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이 작품은 내용적인 측면뿐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안 보인다’ 혹은 ‘보여도 못 본척하겠다’라고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이다. 작품속의 더러운 침묵의 카르텔을 형식을 통해서도 표현하는 작품이다.

 

두 번째로는 도덕과 윤리를 포기하고 개보다 못한 삶을 선택한 작품 속 인물들에게 이입하지 않기를 바랬던 것이 아닐까. 결말부의 그레이스의 선택은 결국 모두를 살해하는 것이다. 합리적이지만, 옳다고만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감독은 그녀에게도 깊이 몰입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던것같다. 작품 속에서 필연처럼 보이거나 합리화 할 수 있을 장면에도 계속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를 바란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간다고?



영화<500일의 썸머>는 시간의 순서를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낯설게 하기’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남자인 톰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연애를 그려낸다. 재배치된 장면은 톰이 연애를 자기가 보고싶은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톰의 입장에서 그들의 연애를 따라가며 관객이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닫기가 어렵도록 즉, 인과관계 형성을 지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있다.

 

로맨스 서사는 언제나 유효한 장르이지만 이미 해당 장르를 섭렵하고 있는 대상층에게는 뻔하고 예상가능한 클리셰로 첨절된 장르이기도 하다. <500일의 썸머는>이런 상투성을 깨기 위해 시간을 재배치하는 형식적 전략을 사용한다. 첫 장면으로 등장하는 488일이 그렇다. 둘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듯 보이고, 반지낀 손이 겹쳐져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둘이 관계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말에는 잘될거라는 오해를 가지고 작품을 바라보게된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일반적으로 작품이 30%정도만 진행되어도 대부분의 서사를 예상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방식은 관객들에게 혼란을 줘서 최대한 스토리 이해를 지연시키고 상투성을 깨려는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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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중간에 재배치되어 있는 장면들은 대칭구조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썸머와 관계를 가진 후 즐거워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는 톰을 보여주다가 내릴때는 이미 이별하고 힘들어하는 톰의 모습을 보여주며 코미디적 요소를 더하기도 한다. 또한 썸머와 사랑에 빠졌을 때 썸머를 떠올리며 그녀의 사랑스러움을 나열하던 장면이 썸머가 맘에 안든다고 말하는 장면과 대칭관계에 놓인다. 이런 장면은 썸머에 대한 톰의 심경변화나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설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싱크.jpg

 

싱크2.jpg

 

 

그 중에서도 주목할 부분은 282일과 34일 같은 장면이다. 282일이 34일보다 먼저 등장하는데 이케아에서 톰이 싱크대를 만지며 신혼부부 상황극을 시작하지만 톰은 냉랭하게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 연이어 등장하는 34일에서는 처음 이케아에 간 둘이 즐겁게 역할극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282일에서 톰은 썸머와의 관계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자 34일에 좋았던 과거를 그대로 반복하는 식의 연애를 하고 있는것이다. 썸머는 그런 그에게 냉랭하다.

 

이러한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톰이 가지고 있는 연애에 대한 태도이다. 톰은 단순히 좋았던 때의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사랑에 대한 관점에 대해서 고민하고 둘 사이에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아주 짧게 지나가고 작품을 여러번 봤거나 예민하게 작품을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상함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관객들은 과거의 연애를 돌아보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 실제 톰이 그랬던 것처럼 282일보다 34일에만 집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그땐 분명 좋았었는데 그녀가 갑자기 돌변해버렸어'라는 톰의 입장에 이입하고 갑자기 썸머가 변한것같은  위화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재배치되어있는 장면들을 면밀하게 살피고 객관적으로 둘의 연애를 바라볼 수 있게 되면 톰의 잘못과 둘의 연애가 계속 이루어질수 없었던 이유를 비소로 깨닫게 된다. 이 영화가 톰의 관점으로 치중되어 있고 재배치된 장면들과 레이첼의 조언을 통해서 그들의 연애와 문제점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볼수록 보이고 알수록 보이는 영화이다.

 

 

 

도그빌과 500일의 썸머의 낯설게 하기



정리하자면 이렇다. <500일의 썸머>는 작품의 순서가 뒤엉켜 있고, 남자주인공 톰의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이 톰의 입장에만 이입해 둘의 연애를 바라보면 문제를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낯설게 하기'의 활용은 단순히 순서를 뒤섞었다는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관객이 특정 관점으로 편향되도록 만듦으로써 서사의 이해를 지연시키거나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렇게 두 작품은 낯설게 하기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도그빌>이 촬영과 장면 구성 자체에 있어서 관객들의 몰입을 깨고 거리를 두고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면, <500일의 썸머>는 오히려 관객들이 톰의 입장에 지나치게 몰입하도록 구조를 배치해놓은 작품이다. 시간이 꼬여있다는 점에서도 낯설게 하기를 느낄수있지만 그 때문에 발생하는 근시안적인 태도가 결국 작품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게 만들고 위화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도그빌>은 몰입을 애초에 부수는 방식으로, <500일의 썸머>는 지나치게 몰입하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이상함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으로 ‘낯설게 하기’전략을 활용하고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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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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