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 힐빌리의 노래 [도서]

빈곤과 무너져가는 가족, 그 어둠 속에서 일어난 한 청년의 진솔한 성장기
글 입력 2019.12.16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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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빌리’

  
미국의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 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다른 표현으로 백인 쓰레기라는 뜻의 ‘화이트 트래시’,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 데서 유래된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백인을 가리키는 모욕적인 표현인 ‘레드넥’등이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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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비참한 미래를 앞둔 아이들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중퇴를 가까스로 면했고, 주변 사람들을 향한 끓어오르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망가지기 직전의 지경에까지 갔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람들은 아이비리그 출신이라는 간판과 직업만 보고서 내가 무슨 천재라도 되는 줄 안다. 특출하게 뛰어난 사람만이 지금의 내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건 전부 헛소리다. 타고난 재능 따위를 운운할 수도 없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몇몇 사람이 구해주기 전까지 나는 시궁창 같은 삶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실제로 경험한 인생이며 이 책을 쓴 까닭이다.나는 자포자기 직전까지 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어쩌다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되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9p 프롤로그


 

프롤로그만 봐도 이 책의 중심내용과 전개 방향을 유추할 수 있었다. 소설인 줄 알고 집어 들었는데 회고록이었다. 가난했던 소년의 성공스토리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책의 전반적인 초점은 어두웠던 지난 시절에 길게 맞춰져 있다. 또한 글로 써내려가기 부끄러웠을 법한 기억들까지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남들이 보기에 꽤 성공적인 삶’을 사는 지금은 그다지  할 말이 없는 사람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삶은 여전히 과거에 얽메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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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미국 오하이오의 작은 마을에 밴스라는 아이가 태어났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마약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할모,할보 (힐빌리에서만 쓰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뜻하는 독특한 애칭)의 손에 맡겨져 키워진다.


아버지 후보가 될 여러 명의 남자와 함께 지내며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던 유년 시절, 아들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는 가게 직원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던 할모와 할보, 장난감을 사러 가자고 꼬드겨 외출해서는 같이 죽자 말하며 가속 패달을 밟는 어머니를 피해 길고 긴 들판을 정신없이 도망쳤던 일, 그런 어머니의 석방을 위해 재판장에 섰던 일 등 저자의 유년 시절 가정환경은 어둠이었다.

 

이웃의 다른 집이라곤 별만 다르지 않았다. 교양과 상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을에서 자연스레 대학진학을 꿈꾸는 일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들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교육의 필요성을 할모와 할보와 어머니, 그리고 동네 사람들조차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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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손자에 대한 사랑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할모는 나름의 양육방식으로 (고등교육을 받고 문제가 없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손자를 사랑으로 키웠다. 책 곳곳에 할모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대목을 보면 알 수 있다.

 

저자의 악몽같던 유년시절의 기억과 어머니의 마약, 자살시도 등 자기 파괴적인 행동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소외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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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빈민촌의 그들도 변화를 갈망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게 가정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경험으로도,익히 들어서도 알고 있지만 새삼 또 확실히 느끼게 됐다.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양육자의 역할은 결정적이고 삶의 전반을 좌지우지하며 후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에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한국의 어느 대학의 교수가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서 받은 폭력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커 자식을 낳으면 똑같이 할까 봐 낳지 않기로 했다는 말이 생각이 났고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책, 일명 '개천에서 난 용 스토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서사의 기승전결이 뻔하고 각색이 많이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힐빌리의 노래>는 예상을 빗나갔다. 현재의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내세우지도 않고 눈에 힘을 주며 설교를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솔직하게 자신의 현재 상황을 덧붙인다.

 

저자에게 <힐빌리의 노래>란 지금도 어디선가 가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위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또 다른 '힐빌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세상에게 요구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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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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