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998년 소시민의 삶을 관통하는, 뮤지컬 '지하철 1호선'

1998년 소시민의 삶을 관통하는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9.12.10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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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연변에서 약혼자 ‘제비’를 ‘선녀’가 서울역에 도착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목적지가 정확히 어딘지도 모른 채 그저 ‘청량리 588’를 찾기 위해 선녀는 지나가는 이들에게 길을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냉담한 반응뿐이었다. 어찌어찌 청량리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앵벌이 남매, 잡상인, 노숙자, 소매치기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람들을 만난다.


공연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낯선 타지에서 약혼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녀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으로 다뤄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열어본 공연의 내용은 생각했던 것과는 상반되었다. ‘제비’를 찾는 ‘선녀’의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를 연결해주는 하나의 큰 틀일 뿐 세부적인 이야기는 1998년 당시 서울 소시민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었다.


1998년, 대한민국이 IMF로 어려울 상황을 겪을 그 당시, 냉담하고 차가운 서울 사람들의 모습과 그중에서도 하위계층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려냈다. 머물 곳 없이 지하철역에서 상주하고 있는 노숙자들, 몸을 파는 여인들과 포주가 있는 사창가, 길거리에서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 고국을 떠나온 외국인 노동자 등.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지하철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받아주는 건 이곳뿐”이라고 말하는 노숙자의 이야기가 이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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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각자 하위계층 사람들의 삶을 서로서로 연결해 그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좋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했던 것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인물이 가지는 사건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선녀가 제비를 찾는 과정에서 만난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스토리가 크게 와닿지 않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야기의 절정 부분인 ‘걸레’의 죽음은 그만큼의 임팩트가 오지 않아, 그렇게 큰 슬픔도 아픔도 나에게는 덜 느껴졌다. 더욱이 메인 이야기였던 ‘제비’가 등장했을 때는 ‘드디어 나왔구나’의 느낌이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 중 한 명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선녀’의 ‘제비’찾기 이든, 노숙자·사창가·포장마차 사람들의 심층적인 이야기이든 하나의 이야기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뤘다면 그들의 감정선을 더 잘 따라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끊임없는 세트장의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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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그 아쉬움을 연출에서 상쇄시켜줬다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무대나 음악적인 연출은 놀라웠다. 작은 대학로 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무대 변화 양상은 극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처음 시작은 서울역 어느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지만, 극이 흘러가면서 때로는 지하철 안의 풍경, 때로는 길거리 포장마차의 모습, 때로는 퇴폐적인 유흥가의 모습 등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 작고 한정적인 무대를 다양한 장치를 이용해 변화시켜 특정 장소의 분위기를 잘 표현해냈다는 것에 대단하다고 느꼈다.

 

 

 

다채로운 영상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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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채롭게 변화하는 무대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든 것은 바로, 영상의 활용이었다. 지금까지 봤던 공연들 중에서 제일 영상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대에 직접적으로 영상을 상영해 지하철 창문 밖이 진짜로 움직이는 듯 표현을 했고, 지하철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영해 그곳의 배경이 역이라는 것을 실감 나게 만들었다. 이러한 영상 활용도 잘했다 박수칠 만하지만, 그중에서도 놀라웠던 것은 극 중 ‘걸레’가 세상을 떠난 후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


힘들고 고단했던 삶을 그녀 스스로 포기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 세상 속에서의 그녀는 아주 새하얀 옷을 입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행복한 웃음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슬로 모션처럼 표현한 영상은 그녀 스스로의 선택을 이해하게 만들었고, 그곳에서의 안녕을 빌어주기 충분했으며 그곳에서는 행복해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완성도 있는 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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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런 생각이 들 수 있게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했던 것은 음악도 엄청난 몫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 무대의 일부에 자리 잡고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보일 듯 말 듯 드러나는 라이브 세션들은 극 중 분위기를 너무나 잘 표현해주었다. 150분 동안 극이 진행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라이브로 연주하면서 깔리는 음악과 지하철의 효과음 등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해주어 극을 생동감 있게 만들었고 집중도 있게 만들었다.


라이브 세션들의 연주도 좋았지만, 중간중간 지하철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넘버가 등장할 때가 있었는데 넘버마다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사람들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한 ‘맞은편’과 꽉 찬 출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표현한 ‘기다림’ 넘버가 인상 깊었다.

 

중독성 있는 리듬과 옛날 느낌을 잘 표현하면서도 세련된 음악은 만족스러운 무대를 만들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년 지하철 1호선 음악 연출에 참여를 했다고 하는데, 그의 참여 덕분인지 아주 완성도 있는 뮤지컬 넘버를 만날 수 있음에 아주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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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다 보고 나서 지금의 지하철 모습과 20년 전 지하철의 모습이 결코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로 출근하기 위해 아침마다 작은 공간에 어떻게든 빈 곳을 찾아 몸을 욱여넣지만, 최대한 옆의 사람과 붙지 않고 싶어 하는 우리의 모습들. 머물 곳이 없어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누워있는 노숙자들, 물건을 팔기 위해 적막을 깨는 잡상인들, 사람들의 동정에 호소하는 앵벌이들. 그들은 여전히 지하철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지하철 1호선에서 표현됐었던 것처럼 ‘어차피 남’일 뿐인 타인의 삶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은 20년이 지난 2019년 지하철도 변하지 않았다. 마주 앉은 사람들의 얼굴 대신 작은 화면 속 세상의 이야기에만 집중되어 있는 시선들, 양쪽 귀를 틀어막을 채 주변의 소음들은 차단하고 자신의 세계에만 빠져드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물론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이 <지하철 1호선>은 하위계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타인의 삶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가지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내용이 담겨있지 않을까 싶었다. 공연을 마친 배우들이 인사를 마치고 후다닥 나가 계단에 서서 퇴장하는 관객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는 것 또한 그러한 내용을 담기 위한 연장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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