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9월"을 11월에 만나며 [공연]

글 입력 2019.11.2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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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관객이 어울려 둥글게 앉아 진행되는 극이라는 사실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형태이니 조금 어색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공연장에 들어서니 웬걸, + 모양으로 네 개씩, 의자들이 저마다 등을 맞대고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 앉아도 불안하고 불편한 자리였다. 같이 묶여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볼 수 없고, 마주 앉게 되는 옆 묶음 사람들의 얼굴은 지나치게 가깝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마주하는 각도인 것도 아니어서 애매하게 눈을 굴리다가 시선을 떨군다.

 

노랫소리가 나오며 공연이 시작된다. 의자를 움직여 둥글게 원을 만들란다. 배우들과 관객들이 섞인 채로. 여러 사람들로 이루어진 큼직한 원이 완성되고, 언제 이렇게 둥글게 앉아 본 적이 있나 떠올려본다. 학창 시절 수련회나 수학여행 자리에서? 과 MT나 동아리 뒷풀이 자리에서도 이렇게 둘러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원을 그리고 둘러앉는 건 대게가 품고 있던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자리다. 문득 원을 그리고 앉는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경우인지 생각해 본다.

 

독특하게도 그렇게 둥글게 앉고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보다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이 더 잘 보인다. 나에게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 이런 자리에서라면 내가 평소 알지 못했던 먼 타인의 마음도, 그 사람 자체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11월에 만나는 연극 <9월>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본처와 후처, 친자와 양자, 살인사건과 이혼. 수 많은 사건 속에서 그들은 서로 갈라졌다가 다시 마주한다. 형사였던 아버지는 가족을 두고 진짜와 가짜를 말한다. 가족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해야만 되는 것이 가족이다. 그리고 결국은 진짜만 남는 것이다….

 

연극 9월은 그렇게 이어진다. 파편처럼 조각난 가족과 그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개인들의 말들이 번갈아 가며 이어진다.

 

*

 

한동안 어두운 이야기를 멀리했었다. 부당하고 비극적인 이야기들에 덩달아 화가 나고 눈물이 나고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인데, 그런 감정적이고 정신적인 소모에 지쳤던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생각한다. 지나치게 극적으로 사연이 많아 보인다거나, 지나치게 불행한 삶 같아 보일지라도 분명 어딘가에는 그것이 연극이 아니라 현실인 사람들이 있겠지, 혹은 그 일부라도 경험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내 기분을 이유로 그들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은 조금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연극 <9월>의 이야기들은 우울하고, 선명치 못하고 이야기의 방향이 널을 뛰다가도 마치 현실에 있는 이야기처럼,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처럼 그렇게 담담하게 이어지기도한다. 극 중에서 사진을 찍는 일을 하는 영주와 해리는 사람의 이야기를 ‘사진에 찍힌 얼굴’에 비유한다. 카메라에 포착된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야기가 담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중에서도 자신의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그런 사진을 선택해 가져간다는 것이다. 자신이 드러내고 싶은 얼굴만, 그 누구도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지는 않으니까. 보여도 괜찮은 것들만 고르고 골라서. 그렇다면 선택받지 못한 이야기들은 어디에 남는가. 그것들은 사진관 안에 오롯이 모인다. 어쩌면 이 둘러앉은 공간이 하나의 사진관 일지도 모르겠다.

 

 


 

 

잘 듣는다는 것. 그것은 들리지 않는 것까지 듣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가장 먼 사람이 도리어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이 자리에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말까지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한 가족, 한 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도 벅찬 와중에 극 중의 리포터는 말한다. 통일이 이루어진 순간이라고. 그 역사적인 순간에서 이들 개인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것 같지 않은가. 시간을 흐른다. 거대한 흐름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데 마치 흐르지 못하고 그 곁가지에서 고여있는 것만 같은 일들이 있다. 연극 9월을 11월에 만나서, 우리는 그 곳에 잠시 멈춰 서서 고여있는다. 그러면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 말하지 않는 것도 들으려고 노력한다.

 

가족과 식구는 종종 같은 말처럼 쓰이기도 한다. 식구가 식사를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 것을 생각하면, 그 공연장에서 함께 귤을 먹었던 관객들 모두 그 순간 찰나에는 식구가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극 중에서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귤을 나눠주고 함께 먹는다.)

 

만남으로 충분할까? 노력으로 충분할까? 그 이야기들에서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어떠한 끝을 찾지 않아도 괜찮을까? 질문들을 잠시 접어두고 만남으로 충만한 순간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극 9월을 11월에 만나며 그런 순간의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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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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