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당B", 홍영인, 올해의 작가상 2019,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사회의 우울을 세련되게 시각화하기
글 입력 2019.11.23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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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작가상》은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창의적 역량을 보여주는 작가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후원하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과 SBS 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술사상 제도이자 전시다. 2012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올해의 작가상》은 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과 담론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한국 현대미술의 비전을 제시해 왔다. 전시기획자, 비평가, 연구자 등 미술계 전문가로 구성된 추천위원단의 추천과 국내외 심사위원단의 1차 심사를 통해 선정된 올해의 전시 작가는 김아영, 박혜수, 이주요, 홍영인이다.
 
현대미술은 독특한 분야다. 현대라는 워딩만 보면 뭔가 익숙하다. 그러나 막상 향유하게 되면 기상천외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현대미술은 마주할 때마다, 나를 여러 번 곱씹고 사유하게 만들었다. 어떤 작가든 작품에 사견을 담는다. 관람객은 때로는 작품을 피상적으로 해석하고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기도 한다. 어찌 됐든 작가는 작품을 내놓고 관객은 경험과 시각을 곁들어 새로운 감상을 내놓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묘미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인구는 늘고, 생각도 많아지고 다양해지고, 소통도 활발해지고, 여러 사고가 우르르 쏟아지는 세상이다. 현대미술은 시대에 발맞춰 작가와 관객 모두를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분야다. 와중에 한국의 현대미술은 어떤 느낌일지,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이라고 일컫는 4명 작가가 얼마나 기발한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됐다.
 
 
 
홍영인 작가

 

 

 

홍영인 작가는 세 개의 신작으로 구성된 <사당B> 전시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맨 먼저 날 맞이했던 작품은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철장, 새장을 경계로 너머에 나무, 구조물과 벽에 드리워진 새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배경음악으로 지저귀는 새소리를 틀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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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홍영인, 올해의작가상2019, 국립현대미술관

 
 
소리를 들으며 새장을 따라 들어가자, 한 작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우리가 흔히 봐왔던 형식이다. 바로 사당을 그린 감모여재도다. <사당B> 작품 컨셉에 걸맞게, 감모여재도를 배치했다. 감모여재도는 남성 중심의 유교적 제례 공간을 상징한다. 홍영인 작가는 감모여재도를 여성적인 노동을 통해 재해석했다.
 
기원이 유교에서 비롯한 건축물인 사당. 사당을 그려낸 감모여재도(사당도)는 우리가 생각해왔던 유교를 가장 잘 상징하는 구조물이다. 유교는 남성 중심의 사고가 저변에 깔려있다. 유교적 상징이 전통적인 여성 노동을 상징했던 '자수'로 재해석됐다.
 
홍영인 작가는 '자수'를 전통적인 여성의 노동으로 여기면서도 예술로써 여기기도 했다. 자수로 생산해내는 게 공예품이라는 데서 노동과 동시에 예술행위라고 여겼다. 유교 문화 위에 전통적인 여성 노동을 상징한 자수를 수놓는다. 홍영인 작가는 전혀 어울리지 못할 것 같은 두 오브젝트로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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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새장 안과 밖이라는 공간을 설정해서 관객과 미술작품이 새장 안에 위치되고 새장 밖이 새를 위해서 완벽한 공간, 즉 새 전문가가 완성해내는, 협업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자세히 관람하다가 문득 놀랐다. 내가 위치하고 있던 공간이 새장 안이었으며, 새가 지저귀고 있는 공간이 새장 밖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자세히 보니, 누가 봐도 관객이 위치한 공간이 새장 '안'이다. 작가는 새장을 경계로 우리와 미술 작품이 새장 안이라고 정확히 명시한다. 난 무의식적으로 관람자의 위치에 서서, 우리가 지나는 통로를 새장 밖이라고 가정했다. 작가의 설명을 보고 나서야 다시 생각했다.

 

 
러시아 철학자, 옥사나 티모피바라는 동물과 인간의 경계와 지점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잘 인정하려 하지 않고, 구별되기를 원하지만 사실 인간도 동물이다. 동물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질서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지 우리보다 하등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적인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부분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번 작업을 하는데 근저에 깔려있는 내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인 것 같다.
 
- 홍영인 작가 인터뷰 中
 

 

작가 인터뷰를 보면서, 놀랐던 경험이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작가가 작품으로써 우리의 무의식에 잠재된 편견을 꺼낸다. 나는 동물들에 대한 연민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결코 나와는 다르다고 여겼다.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미물 취급하며, 관람당하는 위치로 가정해버렸다. 홍영인은 기존 교육체제에서 등장하던 동물관 더 너머의 무의식을 투시했다. 음습한 동물 배제에 대해 세련된 방식으로 대응하고 시각화했다. 내가 봤던 시선을 꼬집는 것 같아 지레 쓰렸다.

 
 

 

 

홍영인 작가의 고찰은 <하얀가면>에도 이어진다.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다음으로 만난 <하얀가면>은 퍼포먼스를 녹화한 영상이었다. 클럽 '이네갈'과 협업하여 즉흥 연주를 통해 '동물 되기'를 모색한다. 네 명의 음악가 각자가 동물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연주를 한다. 처음 관람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 음악에 대한 교양이 없는 나로서는 한참을 사유하고 찾아보기 전까지 뭐가 뭔지도 몰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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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앙상블은 사실, 네 명의 음악가 각자가 동물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동물이 되는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물론 인간이 동물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다. 우린 이걸 사는 내내,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며 교육받는다. 사회화든 뭐든 우리는 동물과 구별되기를 원한다. 동물-되기를 진행하면서 음악가들은 예술로써 이미 자신이 동물이 되고 있지만 위의 이유로 온전히 동물이 되기 어렵기 때문에 경계에서 그 지점을 찾는다.

 

홍영인 작가의 작품은 공통점이 있다. 작가가 끊임없이 추구하고 들여다보는 지점이 역사와 맞닿아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내용부터 기독교적인 전통에 비롯한 동물관, 감모여재도, 여성사 등 홍영인 작가는 죽 역사 아카이브를 수집하고 그곳에서 출발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당장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작품 속에서만 동서양의 모티브와 상징 이미지들(유교적 제례 공간, 서양의 문장, 일제강점기 건축, 영국 국회의사당 이미지, 공예 자수 기법과 아르누보 디자인)이 혼성적으로 차용했다. 더불어 감모여재도에서도 전통적 보자기를 연상시키는 기하학적인 테두리와 감모여재도 상징성 자체, <하얀 가면>에서의 동서양 전통 악기 등 작품에서 상징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역사 아카이브 속에서, 특히 홍영인 작가는 여성성을 강조해왔다. 퍼포먼스의 경우, 여성의 노동, 몸, 사회적 위치 같은 개념들을 재해석해봤으며, 작품의 소재로 출발하는 지점에서부터 끊임없이 연장선 상에서 작업하고 있다. 이번에는 내용에 있어서도 여성성을 강조해봤다고 한다.

 

상기한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에서 자수로 예술과 노동, 전통을 승화시킨 것이 일례다. <하얀가면> 다음으로 이어지는 그룹 퍼포먼스 <비분열증>이 특히 그렇다. 필자가 본 건, 퍼포먼스를 녹화해둔 영상이었다. 오픈 후 지속적으로 일정에 따라, 불특정 퍼포먼스를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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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분열증>, 홍영인

 

 

여성의 저임금 노동과 젊은 여성이 비정치적 주체로 여겨졌던 관습을 반영하는 비디오다. 언뜻 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예술이지만 중간중간 퍼포머들이 외치는 "내 이름을 찾고 싶다, 눈이 침침하다, 바늘을 볼 수 없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와 천을 들거나 접거나 하는 행위, 양 팔을 펼쳐 새를 형상화하는 모습 등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는 친족 어휘가 발달했고 대상을 개인보단 역할로 구성한다. 그 역할이 사람을 숨 막히게 하며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중 하나로 보게 한다. 가장 잘 드러나는 친족 어휘는 '엄마'다. '엄마'가 되는 순간 이름을 잃는다. 여성이 사회에서 참여하기 어려웠던 사회에서는 결혼은 물론 출산도 필수였다. 아이를 낳는 순간 여자는 엄마가 된다. 그리고 이름을 잃는다.
 
눈이 침침하다거나 바늘을 볼 수 없다고 말 또한 맥락을 같이 한다. 여성의 노동을 상징했던 자수다. 그런 자수로 인한 후유증임과 동시에, 그런 후유증이 생겼음에도 자수를 그만두지 못하는 악순환 같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엄마가 됨으로써 여자는 개인보다 개체에 더 닿아있다. 이름보다 엄마라고 불리며,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식과 지아비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강요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왔다. 물론 지금도 그런 기색이 여전하다. 여자는 개인의 영락보단 자식과 지아비의 성공을 바라야 한다. 가족을 위해 뒷바라지하는 게 당연하다. 해도 티 나지 않고 안 하면 티 나는, 귀찮은 가사를 모두 맡긴다. 우리가 보는 기계의 모습과 닮아있다. 퍼포먼스는 그런 기계의 모습을 부정하는 데서 의의가 있다.
 
퍼포먼스에서 새의 행위를 묘사한 건 억압받고 강요받았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자유와 밀접하게 닿아있던 게 아닐까 싶다. 퍼포먼서들이 남성과 여성 모두로 구성된 것도 이러한 불합리를 헤쳐나가기 위해선 결국 여성 남성 다 같이 주체가 돼야 함을 의미한다고 감히 짐작해본다.
 
홍영인 작가는 역사 아카이브에서 여성들이 지녔던 억압들을 퍼포먼스로 세련되게 표현해냈다. 이번 전시에서 공통적으로 여성을 표현했다. 여성성 외에 신작을 관통하는 주제가 하나 더 있는데, 아까 잠깐 언급했던 동물이다.
 
<사당 B>에서 가장 피상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는 '새'다.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에서, <하얀가면>, <비분열증>까지 저마다 새와 관련된 작품이다.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에서는 새장을 구조물로 만들어 새장 안에서 밖, 새를 바라보는 인간과 짐승, 새에 관한 위계질서를 나타냈다. <하얀가면>에서는 동물이 되는 음악가들과 그럼에도 동물이 될 수 없는 대립, <비분열증>에서는 직접 새가 되는 행위를 펼친다. 홍영인 작가는 말한다.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국가주의와 사회적 불평등의 일반화 현상을 바라보면서 인간과는 다른 소통 방식을 가진 동물들에 관심을 두고 특히 '새'에 관심을 두고 세 개의 작품으로 구성되는 신작 <사당B>에 반영했습니다.
 

 

신작을 창작하기 이전 기간, 15-16년도에는 매주 토요일 집회가 열렸다. 도널프 트럼프가 당선되어 전 세계가 놀랐고 브렉시트가 생겼다. 사회적 사건들이 창의적인 차원에서 작가에게 좌절감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홍영인 작가는, 작가야말로 사회를 직관적으로 감지한다고 말했다. 그것을 암암리로 표현하며 그림으로써 시각적인 소통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홍영인 작가 자신 스스로, 세계의 불합리에서 비롯해 사회와 통로가 단절됐다고 느꼈다. 한동안 굉장히 고민하고 고군분투하면서 우연히 바라보게 된 게 동물이라고 했다.
 
필자는 별도로 자유의 상징이기도 한 새가 이념과 갈등이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크고 작은 단절 사이에서 부드럽게 해주는 상징적 동물이어서 차용했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새 깃털은 홍영인 작가가 주로 작업하는 섬유에 가장 잘 와닿는 질감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존재하는 하늘과 땅을 넘나드는 새는 그 자체로 세계의 소통 창구를 의미하진 않았을까?
 
 
제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작가들은 숨 쉰다고 생각해요. 제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냈고 자랐던 사회는 굉장히 억압의 사회였던 것 같아요. 군부 독재 정치였고 저희가 읽었던 초등학교 교과서라든지 혹은 교육이라든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억압적인 부분이 많이 있었고 특정한 시각에서 편집되어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제가 아마도 성인이 돼서 외국 사회에서 살면서 거리를 두고 지금을 볼 때 그건 저의 역사, 제가 살았던 사회의 역사 같은 것들, 더 관심 갖고 보게 되는 게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사회라는 게 저한테는 거리두기이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숨 쉬고 내뱉는 것인 것 같기도 해요.
 
- 홍영인 작가 인터뷰 中
 
 
<사당B>. 고대 문물인 '사당' 옆에 A가 아닌 B를 병렬함으로써, 우리가 체감할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사회를 드러내면서도 과정과 현재, 진행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아카이빙 했고 작업하고자 하는 작품들을 제목에 함축해서 잘 표현한듯싶다. 홍영인은 <사당B>로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유교, 현대 저임금, 노동 불합리, 억압, 모든 걸 통틀어서 '새'를 주제로 해서 새로운 시각적인 소통 창구를 모색했다.
 
궁극적으로 홍영인 작가는 작가가 작품을 만들고 관객이 그걸 본 순간이 의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적어도 필자는, 처음 새장 안에서 마주한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관람은 기존 관념을 깨뜨린 '의식'이 됐다. 작가가 작품으로써 우리의 무의식에 잠재된 편견을 꺼내고 부순다. 작가의 이전 작품에 대해 궁금해졌고, 다음의 작가가 궁금해졌다.
 

 


 
 
참고
 
작가인터뷰, 홍영인, 올해의작가상2019, 국립현대미술관
사회적, 미학적 접근을 위한 다른 방식 <올해의 작가상 2019>
'올해의 작가상 2019' 홍영인의 '거대한 새 장'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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