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폭우 속에서도 젖지 않는 방법 [시각예술]

랜덤 인터내셔널의 <레인 룸>
글 입력 2019.11.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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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우리에게 숭고와 위엄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자연은 인류의 삶의 터전이지만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으며, 그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인간이 발전시킨 뛰어난 기술문명은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우리 인류는 자연의 위협들의 원인을 분석하고 미리 예측했으며, 그로 인한 피해를 최대한 피하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술문명의 발전은 현재진행형이기에 먼 미래에 인류가 자연에 대응하는 자세는 또 다시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들도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의 소통에 주목한다. 런던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랜덤 인터내셔널'은 기술과 인간의 소통을 주제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그룹이다. 그들은 디자이너와 공학자, 엔지니어 등의 협업을 통해 예술적 아이디어를 첨단 과학 기술로 실현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그들이 시도하는 수많은 기술들은 그저 제작 과정의 일부라고만 볼 수는 없다. 관람객들은 그들의 작품을 경험하며 오늘날의 과학기술을 몸으로 겪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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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의 <랜덤 인터내셔널: 아웃 오브 컨트롤>展에서 만날 수 있는 <레인 룸>은 랜덤 인터내셔널 활동의 집약체이자 대표작이다. 레인 룸이란 제목 그대로 ‘비가 내리는 방’이다. 100㎡의 면적 위로 폭우가 쏟아지고 바닥에 모인 빗방울들은 정화 과정을 거쳐 다시 비로 내린다. 여기까지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바로 감상자가 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레인 룸>의 공간에 설치된 센서와 컴퓨터 시스템은 감상자의 움직임을 감지한 뒤 그 자리의 펌프가 작동을 멈추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비가 내리는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렇게 감상자가 작품을 체험하며 스스로가 그 환경과 분리되었다는 사실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이 점에서는 여느 증강현실, 가상현실 게임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으나 <레인 룸> 속 비가 쏟아지는 상황은 생생한 빗소리와 튀기는 물방울이 그대로 느껴지는 현실이다.
 
즉 이 작품은 인간의 기술과 능력을 이용해 자연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방한다. 랜덤 인터내셔널은 비가 내리는 환경을 인간의 힘으로 재현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비를 피하는 새로운 방식을 창조해 냈다. 물론 비를 피하는 새로운 방식은 <레인 룸>이라는 공간 안으로 한정되지만, 그럼에도 이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경험은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그저 우산을 펼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과거와 상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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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룸(Rain Room)>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tional), 2012
 
 
왜냐하면 <레인 룸>은 우리에게 기술 시대의 앞날을 예견하고 옅게나마 짐작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지금의 기술이 인공적으로 자연적 환경을 조성하고 그 공간을 인간의 입맛대로 조작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먼 훗날 언젠가 인간의 기술이 자연의 영역에 침범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또 하나, 이 작품은 기술과 자연, 그리고 우리 인간을 특별한 방식으로 조우하게 해 준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첨단 기술에 대한 자각만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다. <레인 룸>은 감상자의 참여가 없다면 완성될 수 없으며, 이러한 특성은 랜덤 인터내셔널의 전체적인 작품세계를 관통한다.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체험하며 기술을 통해 마련된 자연적 상황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으며 작품은 감상자들 사이에 일어나는 상황들을 통해 비로소 의미를 생성한다.
 
그리고 작품이 지닌 수많은 의미들 가운데서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순수한 즐거움이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은 손을 뻗고 신기해하며 빗속을 거닐었고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빠르게 움직이면 센서가 그 속도를 제때 감지하지 못해 비에 맞기도 했지만 이러한 상황마저도 우리에게는 즐거운 순간으로 다가왔다. 비를 맞고 싶지 않다면 손을 먼저 내밀고 천천히 걸어가야 한다는 주의사항을 명심하자.
 
현재 부산현대미술관 <랜덤 인터내셔널: 아웃 오브 컨트롤>展에서는 <레인 룸>이외에도 <말고리드믹 스왐 스터디>가 함께 전시된다. 이 작품은 50만 개 이상의 오브제가 마치 살아있는 무리처럼 떼 지어 몰려들고 흩어지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 아트로, 그래픽으로 구현된 집단적 움직임을 보고 감상자는 어떠한 감각 작용을 겪는지를 실험한 작품이다. 그리고 랜덤 인터내셔널의 작업은 부산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인천의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의 <랜덤 인터내셔널: 피지컬 알고리즘>展에서도 만날 수 있다.
 

 

[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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