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의 한국 예능이 여성을 소외하는 방법 [TV/드라마]

글 입력 2019.11.1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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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예능에 벡델 테스트를 적용한다면


 

미국의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영화 성 평등 테스트, 벡델 테스트에 통과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이름을 가진 여자가 두 명 이상 나올 것 2.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3.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서도 성차별적인 요소를 내포하는 영화가 무수히 많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이 테스트는 창작물에 평등이 반영되는 정도에 대한 최저한계선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를 지금의 한국 예능계에 적용해본다면, 아마 첫 번째 조건에서부터 많은 예능이 탈락할 것이다. 지금의 한국 예능은 그야말로 ‘남탕’ 그 자체다. 2019년 11월 기준, 한국에 방영 중인 예능 중에서 고정 출연진이 세 명 이상인 경우 출연진 전원이 여성인 프로그램은 7개에 불과한 반면, 같은 경우 전원이 남성인 프로그램은 무려 21개로 전자의 세 배에 해당하는 숫자다. 21개의 프로그램을 제하고도 2명 이상의 남성 출연진과 ‘홍일점’ 역할을 하는 한 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이 다수를 차지하고 여성 출연진이 남성 출연진보다 많은 프로그램은 거의 전무한 것을 보았을 때, 지금의 예능은 시작부터 자격 미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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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들지 말자’며 제기되는 불만을 일소하고 불평등을 고착시켰던 기존의 예능계를 대상으로 꾸준히 시도된 여성 예능인들의 균열이 무색할 만큼 지금의 예능계는 성실하게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 김숙이 ‘가모장숙’, ‘퓨리오숙’이라는 별명으로 남성 중심 방송가에 충격을 주고 송은이가 ‘컨텐츠랩 비보’를 설립하여 예능계와 1인 방송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이영자가 작년 연예 대상 2관왕을 차지하고 그와 쟁쟁하게 겨룬 상대가 박나래라는 또 다른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력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능계는 변하지 않았다.

 

 

 

예능에서 여성이 사라지는 과정


 

기존의 한국 예능에서 여성이 사라지는 방법은 말 그대로 카르텔을 통해서였다. ‘유라인’, ‘강라인’, ‘규라인’으로 정리되는 ‘남성 카르텔’의 형성, 그리고 여성의 배제.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양상으로 이어진다. ‘유라인’의 무한도전과 ‘강라인’의 1박 2일은 사라졌지만 또다시 그들을 주축으로 한 예능이 우후죽순 생기며 카르텔은 견고하게 재구축되고 있다. 남성 MC를 중심으로 그를 보조하는 남성 예능인들, 그리고 그 곁에서 ‘라이징’을 꿈꾸는 남성 신인들로 구성된 판이 여전히 예능계의 주류로 자리하고 있다. 

   

양적인 불평등으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낮아지는 기회의 문턱이 또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높아진다. 예능 경험이 없는 신인이나 비예능인이어도 남성이라면 ‘남탕 예능’의 고정 출연진으로 선택되어 방송에 노출될 기회를 상대적으로 쉽게 얻는 반면, 여성인 경우에는 경력이 화려한 중견 예능인인 경우에도 고정 출연은커녕 TV에 잘 비치지도 않는다.


이는 예능계 전반의 ‘고인 물 현상’을 지적할 때 특정 여성 예능인의 독주를 일례로 드는 것¹이 온당치 않은 이유이다. 특정 남성 예능인이 과도하게 많은 예능에 나오는 이유는 넓은 양적 범위에서도 시야를 넓히지 않고 안정성을 추구하는 제작자의 불성실함과 방송환경의 열악함 때문이지만, 특정 여성 예능인이 과도하게 많은 예능에 나오는 이유는 전자로 인해 오히려 좁아진 범위에서 그가 일당백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을 통틀어 ‘고인 물 현상’을 지적하기 위해서는 양적인 불평등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양적인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는 한 여성의 활약은 고인 물이 아닌 새로운 물결로 이해되어야 하며, 필요한 것은 다른 여성의 물결까지 동등하게 흘러들어올 수 있는 환경의 선결적 조성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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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아예 부재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제한적으로 등장한다.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아내의 맛>, <모던 패밀리> 등 부부나 가족 단위로 등장하는 예능에 아내로, 며느리로, 혹은 엄마로 출연한다. 다양한 위치에서의 여성을 다루는 것이 문제 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부로서, 혹은 ‘정상 가족’의 일원으로서 존재해야 여성과 남성이 그나마 동등한 비율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비혼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그만큼 희박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양적인 불평등은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의 간극에서도 이뤄진다. 여성은 그렇게 특정한 형태로 '가둬진다.'


그러나 어쩌면 여성이 출연하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 여성이 출연하지 않는 프로그램에서도 여성은 특정 방식으로 규정되고 가둬진다.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남성의 양육을 슈퍼맨의 능력 같은 특이한 소재로 삼는 동안 양육의 기본적인 주체는 여성이라는 전제는 더욱 단단해진다. 슈퍼맨이 된 아빠의 양육 시간이 끝나고 엄마가 집에 돌아오면 혼잡했던 하루가 안정적인 일상으로 되돌아온다는 식의 연출로 종종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전제를 뒷받침한다.


<미운 우리 새끼>는 엄마로서의 여성은 등장하지만, 비혼 남성들의 삶과 그를 걱정하는 엄마의 모습을 번갈아 내보내며 아내로서의 여성의 부재를 끊임없이 강조하고 남성의 결핍된 삶을 채워줄 수단으로서의 여성의 필요를 외친다. 프로그램에 등장하지도 않는 가상의 존재, 그리고 그것의 부재가 불러오는 결핍이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는 기이한 구성이다. 이처럼 이름을 가진 두 명 이상의 여성이 나오며 그들이 서로 대화를 한다고 해도, 결국 그 중심에는 남성이 자리하는 형국이다. 만약 벡델 테스트에 등급체계가 있다면 지금의 한국 예능에는 F등급이 매겨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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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막한 예능계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활약은 빛났다. 박나래는 MBC의 간판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진행자 역할을 하게 되면서 작년보다 더욱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견인하고 있고, 넷플릭스에서 런칭한 스탠드업 코미디 <박나래의 농염주의보>에선 홀로 무대를 채우며 새로운 방식의 코미디를 거침없이 시도했다. 지난해부터 방영한 <밥블레스유>는 비혼 여성들의 대화와 식사로 방송을 가득 채우며 유의미한 유종의 미를 거뒀다. <삼시세끼 산촌편>은 세 명의 여성 배우들의 개성과 편안한 조화로 고정 시청자층을 형성하며 큰 화제를 낳았고 <퀸덤>에서는 다양한 무대를 통해 여성 아이돌이 그들에게 주어지는 제한선을 타파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예능인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이 출현했다는 점에서 2019년의 예능계를 단지 여성의 부재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여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방송가는 이들의 빠른 걸음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공중파에선 이 확연한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덕분인지 TV를 보면서 웃은 지가 꽤 오래됐다. 취향에 따라 영상을 골라볼 수 있는 플랫폼이 하나둘 늘어가며 미디어와 개인이 일대일 관계를 맺고 있는 시대에, 누군가를 소외한 채 만들어지는 웃음은 즐겁지 않을뿐더러 시대착오적이다. 웃음이라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씁쓸하다. 다만, 공중파 예능의 관심도가 전반적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방송국 차원의 위기가 극심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리는 걸 보면, 이는 여성만이 웃지 못하는 상황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다.

 

 


 

 

¹⁾ 이아영 기자, 「예능 MC 고인 물 현상, 시청자는 '피곤' 제작자는 '한숨'」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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