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압축의 중요성,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

글 입력 2019.11.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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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큐브 광화문은 아지트다. 대학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특유의 고요함과 조심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 오면 마치 절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게다가 기존 영화관에서는 많이 볼 수 없는 영화와, 영화제를 자주 열어 예술적 시야를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일요일 오후 느즈막이 씨네큐브 광화문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영화인 애장품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가면, 영화 촬영에 썼던 가방과 본인의 수상작 DVD, 영화 포스터 등 다양한 물품이 나왔다. 나는 영화 포스터와, 프랑스에서 왔다는 초콜릿 하나를 구매했다. 화기애애했던 경매가 끝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일행을 기다리며 영화관 주변을 살폈다. 모두가 주변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런 조용한 분위기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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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상영한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의 모든 프로그램을 다 볼 수 있다면 좋았지만, 아쉽게도 한 개의 프로그램 밖에 볼 수 없었다. 가장 마지막 회차인 ‘시네마 올드 앤 뉴’ 티켓을 두 장 받았다.

 

‘시네마 올드 앤 뉴’ 프로그램은 총 5개의 단편 영화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상영한 영화는 페드로 곤잘레스 감독의 <2001 스파크 인 더 다크>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단편 영화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좋아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한 게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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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곤잘레스, <2001 스파크 인 더 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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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롬, <약탈자들>

 

 

다음은 그렉 롬 감독의 영화 <약탈자들>이다. 은행에 강도 둘이 들이닥쳐 사람들을 제압하고, 금고 속 물건을 훔친다는 내용이다. 플롯만 보면 수많은 영화들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은행 강도들이 마임을 한다는 것에 있다. 상상의 총을 가진 강도가 진짜 총을 가진 은행 경찰을 제압하고, 보이지 않는 폭탄으로 강력한 금고 문을 부수기도 한다.

 

은행 강도가 무엇을 훔쳤는지 알 수 없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약탈자들>은 상상의 일이 때론 현실을 압도하는 것을 풍자한 영화다. 이는 우리 일상에서도 알 수 있다. 연예인 지라시나 연인이나 친구 간의 오해를 예로 들 수 있다. 머리로 상상한 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그게 진실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인의 외도를 의심하기도 친구가 내 욕을 했다는 확신에 차기도, 그 연예인이 누구와 어쨌다’카더라’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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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아케만, 미구엘 세아브라 로페스 감독

<10월이 지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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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마그누손 감독, <복스 리포마>

 

 

세 번째 영화는 카렌 아케만, 미구엘 세아브라 로페스 감독의 <10월이 지나가다>다. 시각적으로 강렬했던 영화다. 소개글에 제임스 조이스의 『어느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인용했다. “그의 내면에는 그가 고심해 왔던 엄청난 것들을 실현하고자 하는 야만적인 욕망 외에 신성한 것은 없었다.” 소개글이 영화의 주제인 듯 하다. 영화를 찍고 싶어 하는 주인공이 새벽에 편집실에서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플롯이니 말이다.

 

주인공은 어린아이로 정렬을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고 시종일관 “영화를 하고 싶어!”라고 외친다. 그가 마침내 완성한 영화는 -아마도 자신의 어린 시절인 듯한- 신생아의 영상을 편집해 만들었다. 편집본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 이유는 움직임을 반복 재생하여 영상 속 아이가 렉 걸린 기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태초의 욕망인지, 아니면 영상의 움직임을 분절하겠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그다음은 제인 마그누손 감독의 <복스 리포마>다. 영화를 보고 감독이 잉마르 베리만의 안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사람에 대한 풍자를 이렇게 적나라하게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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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고마운 사람>

 

 

마지막은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이다. 영화의 도입부는 <도그빌>을 연상케 한다. 영화는 운동권 학생을 고문하는 수사관을 통해 비정규직 이야기를 한다. 학생 운동을 하다 붙잡힌 대학생에게 폭력과 고문을 행사하는 수사관. 그런데 알고 보니 수사관은 비정규직이라 매달 받던 보너스와 혜택을 박탈당한다. 상하관계로 보였던 수사관과 대학생은 서사가 진행되면서 동등한 주체로 마주한다. 아이러니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 속 장치들이 재미있었다. 


가장 재미있던 영화를 꼽자면 역시나 장진 감독의 <고마운 사람>, 그리고 그렉 롬 감독의 <약탈자들>이다. 짧을수록 의미를 드러내기 어렵다. 한정된 시간 안에 메시지를 보여줘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단편영화는 감독의 고뇌의 산물이라 하겠다. ㄱ부터 ㅎ까지 말하고 싶은 건 너무나 많지만, 시간은 짧으니 말이다. 내 직업도 마찬가지다.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어떻게든 브랜드의 메시지를 각인시켜야 한다. 이번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의 상영작을 보고 압축의 중요성을 또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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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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