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제대로 분석해 보자! (2)

글 입력 2019.11.06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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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작품의 직접적인 내용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선악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내려져 있지 않으니, 지킬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에도 몰입이 잘 되지 않는다. 지킬 역을 맡은 배우는 그저 작품이 그에게 요구하는 ‘선악 대비를 시각화하여 관객을 소름돋게 하는 연기’를 잘 수행하면 된다. 지킬 역을 맡은 배우는 그것을 명징하게, 다양하게, 또 역동적으로 연기하면 연기할수록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와 관객의 박수를 가져간다.

 

'선악의 갈등과 대비'라는 주 테마가 구체화되지 않은 무대 위에서 선악의 대비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그저 지킬의 청렴한 표정과 하이드의 못된 표정을 번갈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지킬을 연기한 배우의 연기가 소위 ‘소름돋는다’고 이야기했는데, 작품의 테마가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위의 의견에 크게 공감할 수 없었다. 이렇게 겉만 화려하고 내실은 없는, 그리고 이후에 언급하겠지만 젠더 감수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작품이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라는 사실에 일종의 무력감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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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위와 같은 지킬이라는 남성 캐릭터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는 데에 여성 캐릭터의 ‘여성성’이 착취적으로 이용된다는 점이다. <지킬앤하이드>는 원작에 없는 엠마와 루시라는 두 인물을 작품에 끼워넣어, 작품이 내세우는 ‘선악의 대립’ 이미지를 증폭시키려 했다. ‘젠더 감수성’이라는 키워드가 꽤나 대중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이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성녀와 창녀 프레임’에 관한 논의를 다시 꺼내들어야 한다는 점, 상당히 피로하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에서 지킬은 엠마와 루시라는 두 여성 사이에 위치한 인물로 등장한다. 지킬의 약혼자인 엠마는 언제나 지킬을 따르고, 그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준다. 또한 엠마는 지킬에 대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가졌으며, 무대 위에서 주로 흰색 옷을 입는다. 반면에 루시는 소위 ‘사창가 여성’으로, 엠마의 흰색과 대비되는 붉은 색 옷을 주로 입는다. 여성 캐릭터 각각에게 순결함과 더러움이라는, 상반되는 두 이미지를 씌우고 서로를 대비시켜 작품의 선악 대립 구조를 강화하려는 이 시도는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이 엠마와 루시를, 선악을 상징하는 비중 있는 인물들로 설정한 것도 아니다. 엠마와 루시는 외려 선악의 요정 쯤으로 소환되는,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이상화된 인물들이다. 또한 <지킬앤하이드>는 작품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엠마와 루시의 대조적 특성을 이용한다. 즉, 엠마와 루시, 지킬 사이에 삼각 관계를 만들어 관객의 흥미를 끄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품은 엠마와 루시의 ‘여성성’을 착취한다. 실제로 지킬이 무대의 가운데에, ‘순결함’을 입은 흰 옷의 엠마가 왼쪽에, ‘더러움’을 입은 붉은 옷의 루시가 오른쪽에 선 뒤, 두 여성 캐릭터가 함께 ‘그(지킬)의 눈빛이 그를 믿으라 하네’라고 노래하는 장면이 작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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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와 루시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하자. 작품이 공연되는 내내 지킬에 대한 무조건적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는 엠마의 역할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극중 엠마는 연약한 표정으로 지킬의 관심을 바라거나, 그와 함께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거나, 모성애를 연상시키는 태도로 죽어가는 지킬을 품에 안고 그를 끝까지 돌보는 역할만을 수행한다. 작품에서 엠마는 괴로워하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부드러운 애정과 포용, 모성애가 필요할 때 소환되며, 따라서 지킬의 발자취만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인물로 설정된다.


루시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대로 창작진이 루시를 ‘악’의 영역에 밀어넣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루시를 소위 ‘사창가 여성’으로 설정한 것이다. <지킬앤하이드>는 <맨 오브 라만차>를 포함한 많은 작품들이 범한 이 심각한 실수를 반복했다. 작품은 루시에게 소위 ‘사창가 여성’에게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관능미를 요구한다.

 

동시에 작품은 루시를 창녀의 신분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연약한 여성으로 설정한다. 극중 루시는 자신을 폭력적으로 대하는 다른 남자와 달리 자상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지킬에게 반한다. 작품은 '사창가 여성'인 루시에게도 연약함, 즉 남성중심적 시각에서 이상화된 여성성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루시에게 이중적 면모를 요구한다. 엠마와 루시는 작품에서 철저하게 대상화되어 소비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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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와 하이드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자. 루시가 자신(지킬)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는 하이드는 그를 찾아와 루시의 온몸을 더듬는다. 이때 루시는 하이드를 두려워하면서도,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는 존재이며 자신에게 처음으로 사랑을 준 존재라는 이유로 ‘그(하이드)의 손길에 따라 내 몸과 마음이 달아올라’라고 말한다. 또 루시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주는 지킬에게 반했을 때 부르는 넘버의 가사 중 ‘선량함, 상냥함, 따뜻한 손길, 내 몸을 감싸네’라는 구절이 있는데, 루시는 하이드가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강간할 때에도 이 구절을 노래한다.

 

남성 캐릭터의 폭력에 대한 여성 캐릭터의 대응 방식은 남성중심적 판타지대로 조작되었다. 이로써 루시는 지킬에게 전적으로 종속되고, 길들여진 인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작품을 홍보하기 위해 이렇게 문제적인 가사를 자사의 SNS 계정에 그대로 업로드한 제작사의 안일한 행태도 언급해 두고 싶다. 아울러 위와 같은 장면들의 폭력성과 선정성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의 관람등급이 만 7세 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책정되었다는 점도 여기에서 함께 짚어두고 싶다.


 

3편에서 계속.

 

 

[이승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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