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조커, 찝찝하셨나요 [영화]

우연이 주는 살인의 정당성
글 입력 2019.10.19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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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처음 장면, 얼굴을 하얗게 칠하고 화장으로 원래의 눈코입보다 과장해서 이목구비를 표현한 남자가 거울 앞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양 손가락으로 입을 옆으로 찢어 웃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이 남자의 사연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상담사로 보이는 사람이 남자를 '아서'라고 부르며 써 온 일기를 보여달라고 한다. 아서는 연신 담배를 태우고 계속해서 비쩍 마른 다리를 떤다. 그리고 발작적으로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배가 터질 정도로 웃고 있는 듯 보이나 몹시 괴로워 보인다. 상담사에게 내민 일기장의 한 페이지에는 '내 죽음이 내 삶보다 가취(가치) 있기를'이라고 적혀 있다.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서는 코미디언이 꿈이며 엄마를 모시고 낡고 좁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아서의 엄마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말라며 아서를 '해피'라고 부른다. 아서는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지는 질환을 가지고 있고 우스꽝스러운 마임으로 사람을 웃게 하는 광대 일을 하지만 정작 진심으로 웃는 것은 좋아하는 코미디언의 코미디쇼를 볼 때뿐이다. 아서는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발악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코미디언이라는 꿈이 가장 좋아하는 코미디언에게 조롱 당하고, 어머니에게서 배신감을 느끼면서 아서의 '해피'는 산산조각 나고 오직 조커만이 남는다.

 


 

 

잔인하고 많이 어둡다는 우려를 듣고 갔던 지라 마음을 단단히 하고 갔지만 예상 밖의 잔인함이 엄습했다. 전반적으로 갑갑하고 숨 막히는 영화였다. 아서가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보다 더, 비디오테이프 가게 앞에서 아서가 들고 있는 광고판을 뺏어 달리는 청소년 무리와 죽을힘을 다해 쫓아가는 아서의 모습이 잔인했다.

 

골목까지 유인에 성공한 청소년들이 보란 듯이 광고판을 부숴버리고 아서를 눕혀 무자비하게 발로 걷어차는 모습이 그랬다. 아서는 마르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어떤 맥락도 없이 괴롭힘당하는 모습들은 본능적으로 약한 자를 알아보고 괴롭히고 즐거워하는 청소년기에 또래 애들에게서 봐왔던 모습이 겹쳐 소름이 끼치고 속이 메스꺼웠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은 여자를 희롱하며 감자튀김을 던지는 젊은 남자들의 모습이 그랬다.

 

영화는 끊임없이 아서가 미치게 된, 사람을 죽이게 된 것에 대해 정당성을 주려고 한다. 청소년들에게 맥락 없는 괴롭힘을 당함으로써 아서의 동료가 주는 총을 건네받는 정당성이 생긴다. 총을 얻은 아서는 그때부터 자신감을 얻고, 총을 사용해서 자신에게 크고 작은 해를 입힌 사람들을 그때마다 죽인다.

 

아서의 과거가 안타깝고 정신적으로 미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가능하지만, 어딘가 모를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다. 똑같이 가면을 쓰고 사람들을 죽인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브이에게는 전율이 끊이지 않았는데, 왜 조커의 아서에게는 그럴 수 없을까 보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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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찝찝함은 브이포벤데타의 브이는 "가면 뒤엔 살덩이만 있는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념이 있다"라고 말하며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이 시사하는 바를 전달할 방법을 찾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지만 조커는 개인적인 상처와 피해에 집중해 충동적으로 살인한다는 점에 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커가 죽인 사람들이 하위계층의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사회적 상황과 우연히 맞아 떨어져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다는 점에 있었다. 특히나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것에 취해 우아한 몸짓으로 팔 다리를 움직이며 춤을 추는 자아도취의 모습들은 섹시하다기보다 기괴하고 거북했다.

 

브이 포 벤데타에서도 시민들이 브이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와 시위한다. 그것이 브이가 힘겹게 그려낸 대단하고 섬세한 빅 픽처였다면 조커에서 시민들이 조커 가면을 쓰고 거리에 나와 불을 지르는 장면은, 조커의 아서가 개인의 복수를 위해서 그렇게 했으나 사회적 상황과 우연히 맞아떨어져 영웅이 되는 웃을 수 없는 코미디로 보인다. 사회를 바꿀 의도가 없었으나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그에 답하는 듯 춤을 추며 살인의 정당성을 얻는 조커의 모습이 그래서 더 찝찝하다.

 

세간의 말처럼 영화를 위해 25kg을 감량하고 영화 내내 발작적으로 웃음이 튀어나오는 정신질환 환자라는 특수한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낸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빈틈없고 무섭고 경이롭다. 그러나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가 아주 훌륭했다는 점에서 영화가 줄 수 있는 메시지의 힘이 약했다는 것이 더 아쉽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서 나오는 섹시함이 아서라는 캐릭터가 가지는 섹시함으로 치부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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