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이 속한 ‘커뮤니티’는 어떤 것인가요? [문화 전반]

우리We를 둘러싼 우리Cage에 대하여
글 입력 2019.10.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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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공동체인가?



‘커뮤니티’ 최근에 나와 가장 빈번하게 마주쳤던 단어다. 정확히 언제부터 이 단어에 대한 담론이 많아지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토록 ‘커뮤니티’와 많이 마주치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사회가 전반적으로 ‘커뮤니티’ 즉 ‘공동체’의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공동체는 사회학, 인류학, 교육학, 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계속해서 연구되어왔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전통적 공동체를 해체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주창한 칼 마르크스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공산주의적 공동체의 개념을 제시하였다. 이렇듯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공동체의 개념은 새롭게 제시되고 정의된다.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공동체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유기체적 조직을 이루고 목표나 삶을 공유하면서 공존할 때 그 조직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어디까지 공동체로 불릴 수 있는가? 유기체적 조직을 이룬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떤 사람들이 모여야 공동체로 인정될 수 있을까? 일반적인 공동체는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개념을 토대로 한다. 공동체 정의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떠오르고 있는 것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금의 사회는 공동체의 사전적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우리는 지금의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맥락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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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책에서 읽은 구절을 기억 속에서 되짚어본다. 대충 이런 내용의 글이었다. “모든 이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현대 사회 속에서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이다.” 타인과 교류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동체는 사람에게 건강한 감정을 준다. 특히나 ‘연대’의 힘은 다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 연대의 사전적 정의처럼, ‘사물과 사물 또는 현상과 현상이 서로 이어지거나 관계를 맺음’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보호하고, 공감할 수 있다. 미디어 매체가 발전함에 따라 우리는 이제 온라인에서도 쉽게 커뮤니티를 결성할 수 있다. 감정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은 살아가는 데 꽤 힘이 되어준다.

  

하지만 문제는 개인마다 공동체를 정의하는 방식과 범위가 다르다는 점에 있다. 이 벌어진 틈새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곳에는 서로의 입장과 주장이 뒤섞여,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억압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자주 사용하는 비유가 있다. ‘우리(We)를 둘러싼 우리(cage)는 언제나 두 가지 기능을 가진다.’ 보호와 억압이 그것이다. 울타리가 우리에게 보호를 제공해준다면, 그곳엔 반드시 억압이 뒤따라온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끔찍한 감옥의 쇠창살 같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해주는 튼튼한 울타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 ‘우리’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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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수 작가의 또 다른 작품 <보통 검사>.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에 대해 탐구한 작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일 처음 겪는 공동체의 기억으로 가족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 가족의 정의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모호한 것이 되었다. 가출 청소년들과 북한 이탈 청소년들이 모여 형성된 커뮤니티에서 이들은 서로를 가족으로 지칭한다. 이들은 아무런 교류가 없는 친족 관계 대신 유대감이 형성된 자신의 공동체를 가족이라고 설명한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정의는 어떻게 정의되어야 할까? 이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단순히 친족 관계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이름 하에 매년 작가들을 선정하여 전시를 개최한다. 올해 전시장에서 전시되고 있는 박혜수 작가의 작업은 공동체의 정의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공동체, 우리, 가족의 정의에 대해 새롭게 정의하기를 제안한다.

  


박혜수의 신작은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이 질문은 개인들이 생각하는 ‘우리’에 대한 정의와 범주 즉, 이들이 갖는 집단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게 한다. 작가는 실질적인 작업에 앞서 ‘우리’에 대한 인식을 주제로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에 대한 전문가의 분석과 작가적 해석이 반영된 작품을 만들어 냈다.


  

‘Survey : 당신의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이름의 설문지에는 ‘우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체크하는 문항이 있다. 국민, 토종한국인, 다문화가정자녀, 조선족, 난민, 북한주민, 해외거주자, 주변인, 친구, 같은 지역 출신, 가족, 3촌, 4촌… 설문지의 뒷면에는 본인이 속한 공동체의 특성들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다. 빼곡하게 걸려있는 수십개의 설문지 중 같은 답변에 체크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타인과 나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다시 한 번 느끼는 순간이다. 설문지에 체크된 문항들을 하나씩 읽어보며 내가 생각하는 ‘우리’는 누구인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시간을 가진다.

  

 


#3. 청년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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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허브'가 주관하는 'N개의 공론장'.
'주체자로서 커뮤니티 만들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정말로, 이제는 사회에서 가족은 더 이상 안정적인 기반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전통적인 공동체가 단일 목표를 추구하며 관계를 유지했다면, 지금의 공동체는 탈-전통 공동체의 방식으로 개인화된 주체로서 추구하는 목표의 차이를 인정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원인에는 개인화가 진행되며 개인의 능력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나 세대 갈등 등 여러 이유가 있겠다. 최근 커뮤니티가 많아지고 건강한 커뮤니티에 대한 논의가 나오는 것도 공동체 정의가 변화함에 따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청년허브의 연구가 흥미롭다. 청년허브에 따르면 청년들이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 긍정적이다. 청년들은 커뮤니티를 ‘경쟁에 자유롭게 함께 성장하기 꿈꾸는 곳’, ‘혼자라면 못할 일을 하게 해 주는 곳’, ‘내가 추구하고 싶은 것을 안전하게 추구할 수 있는 곳’, ‘우리 이야기를 안전하게 잘 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커뮤니티 또한 결국 ‘나’를 위한 활동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인 것 같다. 내가 선택한 삶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는 협력이며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한 탐색적 시간의 확보로 커뮤니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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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커뮤니티를 이동하는 과정을

맵핑하여 보여주고 있다.

 


청년들은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벗어남에 따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새로운 가족의 정의를 만들어 나간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가족을 스스로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에서 스스로가 가진 경제력으로 삶을 꾸려나갔다. 이 과정은 자율성을 증진시키고 해방감과 자신감을 채워주지만, 동시에 사회구조적 위험에 대한 개인적 부담 또한 증가시킨다. 특히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서울이라는 곳에서 노력하지 않음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도. 경쟁이 아닌 성장을 할 수 있고, 내가 하는 선택의 지속성을 높여 줄 수 있는 곳을 언제나 갈망했고, 그래서 더욱더 그런 커뮤니티에 속해있기를 원했다.

  

예를 들어, 나는 채식을 나의 삶의 방식으로 선택한다. 커뮤니티가 아닌 개인으로 그 실천을 유지해나가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기숙사의 거의 모든 식단에는 육류가 빠지지 않고, 끼니를 대충 때울 때마다 선택하던 샌드위치에는 치즈와 우유가 거의 무조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내 선택을 지속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곳이 커뮤니티다. 꼭 오프라인으로 마주 보지 않아도 온라인에서 위기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법이나 격려와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으로도 내가 삶을 선택하는 방식을 유지해나갈 힘이 생긴다.

 

  


#4. 건강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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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나는 동아리 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권력자로
팀원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학교라는 공동체도 나에게 안정감을 주지는 못했다. 실제로 학생들을 인터뷰해보면, 모두들 학교에서 겪었던 폐쇄적인 공동체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 학교의 틀에 박힌 시스템에 신물이 났다. 교수님의 좋은 평가를 위해, 좋은 성적과 학점을 위해 개인적인 만족보다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 과제를 수행하고 공부 방향을 설정했다.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자극이나 좋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내가 설정한 방향으로 자발적인 공부를 해나가고 싶었다. 학교에서 느끼는 권력 구조가 싫었다. 교수님과 학생이라는 위계질서와 그로 인해 생겨나는 여러 가지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학교보다는 대외활동이나 동아리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 일들을 더 즐겨 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배우고 경험한 공동체 경험이 모두 권력구조가 확실한 학교였다는 것이다. 어느새 나는 동아리 장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권력자로 팀원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커뮤니티를 이끌어 나가기 위해 어떤 방향의 노력이 필요한 걸까. 새로운 고민이 필요했다. 커뮤니티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자리들이 늘어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공통된 고민이라면, 이 고민을 나눔으로써 해결 방안, 그러니까 내가 좀 더 즐겁게 커뮤니티에서 활동할 수 있는 방안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 예술계에서는 이런 공동체의 헤게모니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권력 구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많이 제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공동체의 규칙들을 함께 정한다. 상호 높임말을 쓰고 이름 대신 별칭으로 서로를 부른다. 한 명의 권력자가 모든 일을 주도하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것들을 발언할 수 있다. 수동적인 도구로 활용되는 모든 것들을 거부한다. 그들은 개인이 존중되기에 계속해서 커뮤니티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공동체 목표라는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 이루기 어려운 각자의 꿈을 커뮤니티 내에서 서로 돕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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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해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잘 몰랐는데 지금 보니
무려 44곳에서 활동 중이다.

 

  

커뮤니티 활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커뮤니티 활동과 관련된 주제를 놓고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커뮤니티를 이끌어 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저마다 다르다. 혹자는 커뮤니티에 강력한 리더가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명의 리더가 자발적으로 희생하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잘 굴러간다’, ‘다른 커뮤니티 역시 발전하려면 리더가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조직은 잘난 사람만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한 명이 못하더라도 뒤에서 잘 받쳐주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내의 갈등 상황을 풀어가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마음이 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커뮤니티를 굳이 유지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에, ‘모두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 그도 그만의 삶이 있을 것이다. 커뮤니티가 어떻게 매일 좋은 일만 있을 수 있겠냐.’라는 목소리도 있다. 혹자는 커뮤니티를 정의 내리고 규정하는 일 자체가 딱딱한 규범을 만드는 것 같다며 거부하기도 한다. 같은 지문 형태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지문’을 생물학적 관점이 아닌 사회학적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회와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선에 똑같은 것은 없다.

  

나라는 개인이 가진 경험으로 설명될 수 있는 청년의 공동체에 대해 생각은 이런 것들이다. 공동체에 대한 생각은 개인이 걸어온 경험의 결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쯤 당신이 생각하는 ‘우리’는 무엇인지, 어떤 ‘우리’를 만들어 가고 싶은지 찬찬히 더듬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추천한다. 당신의 생각을 돌아보고, 더 나아가 타인의 생각 또한 들을 수 있는 재밌고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수업 당시, 교수님께서 해주셨던 말로 마무리 지어 본다.

 


모든 공동체는 서로 다르다.
 
우리는 과연 사회 속에서
모두 똑같이 환영받고 있는가?
 
각자에게 중요한 것들이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한가?
 
우리의 행복과 소속감이
다른 사람들만큼,
특히 권력과 자리를 쥐고 있는
이들의 감정만큼 중요한가?
 
당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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