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외로울 때 소설을 읽는다. [도서]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글 입력 2019.10.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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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무언가 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매일매일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아주 중요한 것을 잊은 느낌이 문득 스치고 지나갈 때 말이다. 이런 마음속 공허함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없이 혼란스러워진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아주 높은 확률로 이어서 외로움을 느낀다.

 

물론 외로움은 부정적이기만 한 감정은 아니다. 현대인에게 외로움은 불가피하다. 삶의 속도는 너무나도 빠르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챙기고 돌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바쁜 일상에 치여 살아가다 보면 점점 내면이 바싹 말라가는 느낌이 든다. 물론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이 공허함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감정이 있고, 오로지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채워야 하는 감정이 있다. 전자의 경우 가족, 친구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면 해결된다고 하자. 문제는 후자이다. 나 스스로 채워야 하는 감정. 이것은 상당히 난해하다. 과연 어떻게 스스로 자신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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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난 소설을 읽는다. 독서, 그중에서도 소설을 읽는 것은 특히 일이 정신없이 바쁜 시기마다 의식적으로 하는 습관이다. 잠들기 직전 소설을 읽는 시간은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 시간을 위해 하루를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당신에게 내가 사랑하는 러시아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점점 더 쌀쌀해지는 날씨와 러시아 소설은 굉장히 잘 어울린다. 특히 러시아 소설과 함께 보내는 긴 겨울밤은 당신의 이유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1. 안톤 체호프 - <6호 병동>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호프는 희곡과 단편 소설로 특히 유명하다. 그는 굉장히 많은 단편을 써서 한국에 번역된 단편선집마다 서로 다른 작품이 가득하다. 체호프의 단편은 단 두 장짜리부터 상대적으로 긴 작품까지 다양한데, 그 안에는 풍자와 멜랑꼴리, 삶에 대한 회한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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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병동>이 수록된 소설선집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안톤 체호프, 오종우 역, 열린책들

 

 

체호프의 단편 중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바로 <6호 병동>이다. 소설 속 6호 병동은 시립 자선 병원의 별채에 위치한 외딴 병동으로 이곳에는 총 다섯 명의 정신질환 환자가 머물고 있다. 그러나 6호 병동의 환경은 환자의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의사는 이곳을 거의 찾지 않고, 병동의 문지기는 환자들을 때리고 갈취한다. 이런 6호 병동에서 작가는 이반 드미뜨리치라는 환자에 주목한다.

 

이반은 경제적으로 유복하게 살며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어느 날 그의 형이 갑자기 병에 걸려 죽고, 아버지가 범죄 혐의로 법정에 섰다가 이후 사망하며 집안이 기운다. 결국 이반은 대학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사회와 이반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그리고 어느 날, 호송되는 죄수들과 마주친 이반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바로 '그 자신도 족쇄를 차고 그들처럼 진흙길을 걸어 감옥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의 이 생각, 즉 피해 망상은 점점 걷잡을 수없이 이반을 사로잡는다. 결국 주변 사람들은 이반을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에게 보이고, 의사는 '사람이 미쳐 가는 것은 막을 도리가 없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이반 드미뜨리치는 6호 병동에 오게 된다.

 

그런데 <6호 병동>의 주인공은 이반 드미뜨리치가 아니다. 6호 병동에 있는 다섯 환자의 내력을 설명하고 나면 작가는 이반 드미뜨리치를 진료했던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에게로 초점을 옮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처음 병원(시립 자선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원의 상황은 굉장히 열악했다. 가장 기본적인 청결은 물론이고,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상태 역시 최악인 이곳에서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가장 현명한 조치가 병원의 문을 닫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는 의사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이 끔찍한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결국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규칙은 있어도 과학은 없는' 현실에 회의감에 빠진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조 의사 세르게이 세르게이치에게 진료를 맡긴 채 일찌감치 집에 돌아와 독서와 사색에 몰두한다.

 

그러던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어느 날 우연히 6호 병동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환자인 이반 드미뜨리치를 만난다. 안드레이는 이반과 나눈 대화를 통해 그에게 흥미를 갖게 되고 6호 병동에 매일 방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일은 이후 놀라운 결과를 낳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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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체호프(1860-1904)

 

 

사실 안톤 체호프 본인 역시 의사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속에는 의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체호프 작품 속 의사는 직업인이자 과학자로서 유능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6호 병동> 속 의사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더욱 그렇다. <6호 병동>에서 안드레이 에피미치가 처한 현실, 그 현실 속에서 점점 더 빠져드는 회의감과 사색은 마치 덫에 걸린 듯 그를 옭아맨다. 이 덫에서 안드레이 에피미치는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 과연 벗어날 수는 있을까?

 

 

"인생은 지긋지긋한 덫입니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 성숙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출구 없는 덫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사실, 그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우연에 의해 무(無)에서 이 세상으로 불려 나온 것입니다..... 왜? 그는 자기 존재의 의의와 목적을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말해 주지 않고 혹시 말해 준다 하더라도 그저 무의미할 따름입니다." - 안톤 체호프, 오종우 역,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중 <6호 병동>, 열린책들, p.83

 

 

 

 

2. 미하일 조셴코 - <감상소설>


 

미하일 조셴코의 단편선 <감상소설>은 시작부터 특이하다. 이 소설에는 총 4개의 서문이 있는데, 서문을 쓴 사람의 이름이 제각각 다르다. 진짜 작가 미하일 조셴코의 이름은 독자들을 잔뜩 혼란에 빠뜨린 채 네 번째 서문에서야 등장한다. 서문에서 작가(어떤 이름이더라도)는 이 책을 신경제정책혁명이 절정일 때 썼다고 밝힌다.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NEP)은 러시아 혁명과 내전 이후 파탄 난 소련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한 정책이다. 소련의 신경제정책은 소련 경제를 어느 정도 살리기는 했지만 동시에 네프NEP맨이라는 신흥 부자를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며, 결국 1928년 제1차 5개년 계획의 시작과 함께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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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소설>, 미하일 조셴코, 백용식 역, 문학동네

 

 

따라서 <감상소설>에는 이러한 시대상이 반영된 인물들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아폴론과 타마라>의 주인공 아폴론은 무도회 피아니스트이다. 작가가 묘사하는 아폴론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화려한 예술가이다. 그러나 이 모습은 오래가지 못한다. 혁명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도시는 무도회 피아니스트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아폴론은 징집되어 전선으로 떠난다. 그렇다면 전선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될까? <아폴론과 타마라> 그리고 <감상소설>에 수록된 거의 모든 단편은 혁명과 이후 혼란기 속에서 사람들이 마주해야 했던 현실을 무서우리만큼 생생히 보여준다.

 

<감상소설>에 수록된 또 다른 소설로 <사람들>이 있는데, 이 작품은 나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소설의 주인공 이반 이바노비치는 비(非) 당원으로, 오래된 지주 가문 출신인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덕분에 궁핍함을 몰랐다. 그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혁명 전 외국으로 떠났다가 혁명 삼사 년 후 발레리나 출신 아내와 함께 다시 러시아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 조국은 이반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기쁨을 즐길 시간을 주지 않는다.

 

당장 살 집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직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등교육을 받았고, 스페인어와 라틴어가 가능했던 이반은 직업 구하는 일을 염려하지 않았지만 혁명 이후 러시아에서 그의 스페인어와 라틴어 실력은 그 누구에게도 필요하지 않았다. 구직이 어렵자 잠시 머물 것으로 생각했던 방에 이반과 아내는 계속 머물게 된다. 또한 일을 구하지 못해 돈을 벌지 못하자 이반과 아내는 점점 더 갈등하고, 그의 아내는 바로 옆방에 사는 시립제빵소 책임자 예고르 콘스탄티노비치와 가까워진다.

 

결국 소설 속 이반의 삶은 혁명 이후 혼란기에서 인간의 삶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인간성의 소멸로까지 이어지는 이 내리막길은 비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감상소설>을 읽는 내내 매일 악몽을 꾸었다. 이는 <감상소설>에 수록된 다른 단편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케스트라 트라이앵글 연주자의 파란만장한 하룻밤을 다룬 <무서운 밤>이나 암염소 한 마리 때문에 결혼을 하려고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담긴 <암염소> 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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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일 조셴코(1894-1958)

 

 

조셴코의 <감상소설>은 이렇게 1920년대 현실을 사는 소련인의 모습을 풍자한다. 뒤틀린 현실을 사는 뒤틀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때로 우스꽝스럽고, 때로는 눈물을 자아내며, 어느 순간에는 공포스럽다. 하지만 열 가지 넘는 직업에 종사하고, 소련 작가 동맹에서 제명당해 생계를 위해 번역에 종사했던 조셴코의 삶과 그의 문체를 읽을 때면 나는 단순한 위안 그 이상의 것을 얻게 된다.

 

 

"아, 존경해 마지않는 비평가님! 어설픈 충고는 이제 그만! 당신 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모든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이 길 저 길 돌아다니느라 구두가 여러 켤레 해졌거든요. 주의를 끌 만한 이름들은 이러저러한 설명과 주의사항을 곁들여 개인 수첩에 모두 메모했어요. 아니! 어느 정도 주목할 만한 인물도 없고, 흥미롭고 교훈적으로 언급할 만한 평균적인 인물들도 없거든요. 모든 사소한 것, 밑바닥 인생들, 천한 사람들. 오늘날 영웅적 차원의 고상한 문학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언급하면 안 된다는 말이올시다." - 미하일 조셴코, 백용식 역, <감상소설> 중 <사람들>, 문학동네, p.50

 

 

*

 

소개한 두 소설은 외로울 때 읽으면 좋다고 말했지만 결국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외로움, 혹은 삶이라는 지독한 덫에 빠진 인물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분명히 당신은 이전보다 외로움을 덜 느끼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현실에 치여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갈등하고 고통받는 수많은 나를 바로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발견하는 또 다른 나. 이것이 바로 내가 소설을 읽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다. 사람은 하나의 성격, 하나의 직업이나 특징으로 단정할 수 있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때때로 존재와 현실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며 심지어 자기모순과 분열을 겪기까지 한다. 이러한 내면의 문제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교류로 채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자주 잊게 된다. 하지만 내면의 혼란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터지는 때가 온다.

 

소설은 그런 일상의 불안과 폭발의 순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행히 소설 속 불안과 폭발은 내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이 객관성을 통해 미처 인식하지 못하던 자신의 문제나 주변 사회의 문제를 자각할 수 있다. 동시에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부조리, 고독, 고통, 슬픔을 나만 느끼던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소설은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지만 결국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외로울 때, 정확히는 내 안의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을 때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차곡차곡 채워진다. 그것은 바로 현실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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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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