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 바람을 이긴 기록, "오페라 이중섭"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글 입력 2019.10.18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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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아트센터에서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9의 공연 중 "오페라 이중섭"을 관람했다. 2016년 서귀포재단의 창작 오페레타 공모에 당선된 작품이며 아내 마사코와의 사랑 이야기가 중심이었던 내용을 동료들과의 관계를 더 부각해 새로이 선보인다고 했다. 이중섭이라는 익숙한 주제가 낯선 장르인 오페라로 어떻게 무대에서 펼쳐질지 궁금했다.

 

 

이중섭2.jpg

 

 

공연 시작 전, 아트갤러리에 마련된 이중섭 전시를 관람했다. 작지만 화가의 그림과 더불어 그의 생애에 대한 소개 글도 함께 있어 공연을 보기 전 관람하기에 좋았다. 아내 마사코와의 만남, 제주에서의 삶과 가족과 헤어진 후 열었던 개인 전시회, 그리고 헤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한 어머니와의 이야기까지.

 

바다, 게, 가족 그리고 소, 화가는 자신이 사랑했던 것들을 유채화 또는 은지화 등 유형의 작품으로 남겼다. 그중에서도 소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던 이중섭. 조선의 순박하지만, 기백이 넘치는 소를 그리고 싶어 했다는 화가는 생전 소에 관한 시를 남겼다고 한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에 자리한 그 시를 몇 번이나 읽어보다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중섭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훤히 헤치다.

 

 

(10.11-12)오페라 이중섭.jpg

 

 

제주의 푸른 바다, 그 푸름과 함께 삶을 이어가는 제주 사람들 안에 이중섭과 마사코 그리고 그들의 두 아이를 보여주며 극이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그림을 그려주며 생활을 이어가는 듯한 중섭의 가족,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마사코는 왜인지 쓸쓸함을 느낀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로운 중섭, 괴로운 그에게 마사코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일본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행여라도 그 혼자 두고 떠나는 자신을 원망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사코에게 걱정말라고 다독이는 이중섭, 아내는 남편에게 말한다. 나는 마사코가 아니에요. 나는 남덕(南德), 당신이 내게 준 이름.

 

홀로 남은 중섭은 작업에 집중한다. 순하지만 기백이 느껴지는 "조선의 소"를 그리고 싶건만, 이 색을 칠하다 저 색으로 칠해봐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 가족도 온전히 돌보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작품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간다.

 

중섭의 동료들은 그의 작품에 감탄하고 그를 위해 전시회를 준비한다. 명동에서 중섭의 개인전이 열리고, 관객들은 작품에 감탄한다. 이제 중섭에게 성공만 남았을 것 같은 그때 그의 은지화가 춘화라는 논란이 불거지고 이를 조사하던 경찰은 중섭의 사상까지 의심한다.

 

가족을 만날 수 있는 성공의 계기로 여긴 전시회의 실패에 중섭은 무너진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중섭의 앞에 어머니가 나타나 아들을 만나지 못하는 슬픔을 부르짖다가 마사코의 어머니가 나타나 내 딸을 힘들게 하는 자격 없는 놈이라 책망한다. 환상 속 자신에게 가해지는 책망과 마음속 가득한 회한은 현실의 친구들이 건네는 위로보다 더 또렷하다. 결국, 화가는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세상을 등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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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오페라 공연을 봤다고 하지만, 기억도 나지 않으니 내겐 오페라 관람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공연히 어색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공연이 시작한 후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집중하며 관람했다.

 

배우들의 열연과 노래, 그리고 중섭이 괴로움 속에서도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 화면에 가득 채워진 대표작 "소" 그림이 나오는 부분의 무대 연출은 대단했다. 이중섭의 사랑, 가족뿐만이 아니라 그를 아끼고 지원해준 친구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 것도 좋은 구성이었다고 본다.

 

오페라 공연에 무대 양옆의 스크린, 그리고 지휘자만을 비추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도 신선했다. 막이 오르기 전, 프롤로그라고 해야 할까. 총 네 번의 짤막한 글이 극이 시작하기 전 자막으로 나오며 앞으로의 극 전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듯 보였고, 이후 공연 내내 배우들의 대사와 노래를 한국어, 영어 자막으로 스크린에 띄웠다.

 

삶은 외롭고, 슬프고, 그리운 것. 시에 적었던 그대로 화가는 그렇게 살다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과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로 남았다. 행복을 꿈꾸었지만 외롭고 슬퍼하며 그리워했던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 오페라 공연으로 다시 이어진다. 나와 공연을 함께 관람했던 동행 둘 다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4막 시작 전 프롤로그의 일부를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억을 더듬어 적으며 글을 마친다.

 


어릴 적 소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밭일이 힘들어서였을까, 소의 눈이 너무 슬퍼 보였어.

 

그래서 시냇가에 소를 묶어두고 같이 놀았는데 어머니가 나중에 아시고 크게 혼을 내셨지. 소야, 너는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었니.

 

내가 네 옆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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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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