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명을 믿으세요? 데미안 [도서]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글 입력 2019.10.12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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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우연히 읽게 되었다. 어느 출판사 북클럽에 가입했고, 굿즈로 세계문학전집 중 5권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데미안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책 뒤표지에 쓰여있는 이 유명한 구절이 나를 이끌었고, 그렇게 하여 데미안과 만나게 된 것이다. 마음이 동하긴 하는데 무슨 뜻인지 잘 와닿지 않았다. 유독 바빴던 작년, 나는 남는 시간을 최대한 쪼개어 이 책에 성심성의를 다하였는데 어느 정도 였냐면, 연극동아리 MT에 데미안을 가져갈 정도였다. 왁자지껄 떠드는 제부도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혼자 앉기를 자청하며 싱클레어를 만나고, 한껏 술과 분위기에 취할 데로 취한 아이들을 머리맡에 두고 이부자리에 누워 데미안과 만났다.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피로에 못 이겨 잠에 들 때까지 싱클레어, 데미안, 압락사스, 피스토리우스와 함께 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6개월 뒤, 지금의 내가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그들과 만났다. 재회 속에서 찾은 변화라고 한다면 공감의 차이겠다.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행히 달라졌다. 작년 데미안을 열심히 읽는 나를 보고 신기해하던 아이들이 재밌냐고 물어봤을 때, 내 대답은 재밌지만 많이 어렵다였다. 물론 지금도 어렵다. 그렇지만 그래도 안갯속 한 가닥 갈피를 잡게 되었고, 그 갈피를 기록한다.

 

 


1. 두 세계


 

싱클레어가 두 세계가 존재함을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다. 그 세계의 이름은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 온화한 광채, 맑음과 깨끗함이다. 부드럽고 다정한 이야기들, 깨끗이 닦은 손, 청결한 옷, 좋은 관습이 있다.

 

또 다른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하녀들과 직공들이 있고 유령 이야기들과 스캔들이 있다. 무시무시하고, 유혹하는, 무섭고 수수께끼 같은 물건들, 도살장과 감옥, 술 취한 사람들과 악쓰는 여자들, 아름답고도 무시무시한, 거칠고도 잔인한 것이 있다.

 

싱클레어는 악의 세계에 익숙한 공립학교 학생 프란츠 크로머랑 어울리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가 빌미를 잡혀 협박을 당하는 동안 자신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과 멀어지고 있음에 괴로워한다. 크로머에게 돈을 가져다주기 위해 절도를 하고, 잘못에 새로운 잘못들이 뒤이어 질게 틀림없다는 것, 부모님께 인사하고 키스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2. 우물에 던져진 돌


 

싱클레어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데미안에게서 구원을 얻는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와의 첫 대화에서 카인과 아벨의 카인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낸다. 데미안은 카인이 동생인 아벨을 살해해서 미움을 받아 이마에 표적이 새겨졌다는 것에 집중하는 대신 거꾸로 카인의 표적이 있었고 그에 대해서 의도적으로 이야기가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의문에 집중한다.

 

카인은 다른 사람들을 겁나게 하는 무언가를 얼굴에 지니고 있었고, 그건 비범한 정신과 담력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남자에게는 힘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겁냈기 때문에 우월함에 대한 표창 대신 무시무시한 표적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말한다. 데미안은 한 번도 성서나 이야기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던 싱클레어의 우물에 돌 하나를 던졌고, 그 우물은 점차 세상에 대한 인식, 회의, 비판으로 이어진다. 여러 날을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고, 강물 소리를, 마음속 지하에서 출렁이는, 금지되어 있는 어두운 강물 소리를 듣는 데만 충실한다.

 

 

 

3. 압락사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생각하다가 황금 새를 그려 편지를 부치고, 데미안에게 쪽지를 받게 된다. 그것이 이 책에서 제일 유명한 구절인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수업 시간, 다른 생각에 침잠해 있던 싱클레어는 때마침 교수님의 입에서 압락사스라는 신이 있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눈을 떠 귀를 기울인다.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것이 운명을 만드는 것이다. 압락사스는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한다는 말의 여운은 또 다른 연결고리로 데미안과 예전에 했던 대화를 불러들인다.

 

"우리는 아마도 존경하는 신 하나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는 함부로 잘라놓은 세계의 절반만 나타낸다(그것은 공식적이고, 허용된 ‘환한’세계다.) 그러나 세계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악마이기도 한 신 하나를 갖든지, 아니면 신에 대한 예배와 더불어 악마에 대한 예배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압락사스는 신이기도 하고 악마이기도 한 신이었다."

 

싱클레어를 깨어주는 데미안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나오는데 그의 이름은 피스트리오스이다. 싱클레어는 시내를 오가는 길에 교외의 자그마한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인 피스트리오스와 압락사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피스토리우스는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첫 불꽃이 희미하게 밝혀질 때, 그때 그는 인간이 되지.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자신을 나무라지. 그런 나무람을 그만두어야 하네. 불을 들여다보게,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이봐, 싱클레어, 우리의 신은 압락사스야. 그런데 그는 신이면서 또 사탄이지. 그 안에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가지고 있어. 압락사스는 자네 생각 그 어느 것에도, 자네 꿈 그 어느 것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4. 운명을 믿으세요?



운명에 관해서라면 개척 주의자, 노력파였다. 초등학교 때 가훈을 써오라는 숙제를 받고 아빠에게 묻자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대답을 얻었다. 그 이후 감명이 깊었던 건지 그 말을 눈과 귀와 입과 손과 발에 담고 살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때까지는 운이 좋게도 쭉 노력한 만큼 결과가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좌절할 일 없게 엄마 아빠가 우산을 씌워줬던 날들이 지나가고 우산이 걷히고 축축하게 젖은 신발로 집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는 일이 잦아졌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요즘은 운명을 믿으세요?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다. 그건 사실 말하자면 나한테 묻는 질문이다. 비야, 너는 운명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에 눌려 순응해버리려고 하니? 계속해서 운명이 너를 멋대로 이리저리 휘둘러 버렸으면 하니? 따끔한 회초리이기도 하다.

 

압락사스를 알게 된 후에 싱클레어는 말한다. “당시에 나는 흔히들 말하는 대로 ‘우연’에 의해서 특이한 도피처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런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찾아내면,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 그 자신의 욕구와 필요가 그를 거기로 인도한 것이다.”

 

작년에 필수 전공이라 어쩔 수 없이 들었던 경제학 과목에서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비슷한 흐름으로 기억난다. 교수님은 높은 연봉에 안정적인 연구원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대학원에 들어갔고, 그렇기에 이 자리에 서계신다고 하셨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너무 행복하다고 하셨다. 덧붙여 자신의 친구는 경찰이 꿈이었는데, 경찰은 아니고 보험 회사에서 보험 사기 잡는 일을 하며 행복해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유명한 경제학자가 이야기 한 기회의 법칙을 설명해주셨다.


기회의 법칙은 곱셈법칙이라서 내가 0이면 결국 기회도 0이 되어 버린다고 하셨다. 작년에 데미안을 보았고, 올해에 아트인사이트를 만났고, 지금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기고하면서 헤세와 비슷한 말을 한 교수님과 경제학자를 떠올린다.


결국엔 끝이 나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으로 살아갈지 조금은 갈피를 잡은 것 같다. 내 안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끌어들이고 그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책상에 많이 앉아야겠다. 빈 종이를 들여다봐야겠다. 산책을 자주 나가야겠다. 구름을 바라보고 나무를 바라봐야겠다. 그때 떠오른 글자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세상이 날 맘껏 휘두르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겠다. 우연과 우연의 연속을 통해 운명을 인도해야겠다. 나의 압락사스를 믿어봐야겠다.

 

싱클레어는 아니 헤세는 말한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라고. 어떤 새로운 것이 나에게로 닥쳤는지, 무엇이 나를 앞으로 몰아갔는지, 나를 찢어 내었는지, 그런 것에 대한 것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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