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 위화

글 입력 2019.10.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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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작가의 책 이야기는 더 재미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편견이라 할지라도 위화의 이름만으로도 선택의 망설임은 없었습니다. <허삼관 매혈기>부터 <형제>나 산문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의 이야기를 익히 들었었고, 위대한 작가의 산문을 읽으면 왠지 작가에게 한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기존에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강연을 바탕으로 엮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 출간되었었고, 이번 작품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국내 출간되는 네 번째 에세이인데요, <허삼관 매혈기>, <인생>, <제7일> 등 그의 소설들이 흥미롭게 읽혀져 왔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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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악이 음표의 하모니' 인것과 같이 '문학은 어휘의 하모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음악 서술 속의 화성和聲이 참 부럽다. 높낮이가 제각각인 소리가 여러 악기에서 동시에 연주될 때면 그 소리가 얼마나 오묘하고 얼마나 요원한지. 심지어 작곡가마다 달라서 슈베르트의 화성에서는 높낮이 다른 소리들이 서로에게 호의적이지만 메시앙의 화성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듯하다. 그리고 호의적이든 경쟁적이든 그들은 한데 어우러져 같은 방향으로 전진한다. (8쪽)



이 책은 '문학과 음악을 넘나들며 자신에게 필요한 테크닉을 정신 없이 빨아들였던 청년기 위화를, 오랜 수업시대를 끝내고 이제 막 예술가로서의 자립을 성취한 30대 후반의 위화가 회고하고 있습니다. 아이작 싱어, 윌리엄 포크너, 루쉰, 카프카, 보르헤스 등 탁월한 작가는 물론, 말러, 차이콥스키, 브람스 등 위대한 작곡가까지, 위화 작가가 젊은 시절에 만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있어 흡사 비평집을 읽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위화는 '윌리엄 포크너'에 대해서 '타인의 글쓰기에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마치 열여덟 편의 장편소설과 수많은 중단편소설을 단숨에 완성한 뒤 옥스퍼드나 멤피스에서 빈둥빈둥 돌아다니는 것 같다며, 기교 수준이 아니라 입신의 경지에 이른 서술의 능수능란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한 작가의 창작이 다른 작가의 창작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문학이 계승된다는 관점으로 읽어 내고 있었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가 카프카를 읽고, 보르헤스가 오스카 와일드를, 알베르 카뮈가 윌리엄 포크너를, 보들레르가 앨런 포를, 유진 오닐이 스트린드베리를, 서머싯 몸이 도스토옙스키를 읽었을 때 역시 문학에서 매우 감동적인 만남의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멋진 시점으로 독자를 이끕니다.

특히, 위화는 책의 서문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한꺼번에 연주되는 음표의 활기찬 움직임과 달리, 글자는 한 줄 한 줄 조용하게 배열돼 있어 잠에 빠진 듯 조용하지만 독서는 겉으로만 조용해 보이지 사실은 거세게 일렁이는 물결과도 같다'고 하는 부분에서 큰 공감을 받았습니다.

누구나 자기만의 경험과 느낌으로 책을 읽기때문에 사실 독서란 매우 개인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책 속의 상황과 순간, 이야기를 소환하거나 예전에 다른 작품을 읽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위화는 바로 이것이 '독서의 화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오랫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풀고 남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책 속에서 자신은 비평가가 아니라 독자 혹은 청중의 한 사람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생각할 것입니다.

그가 써내려 간 비평가 못지 않은 날카롭고, 깊이 있는 해석, 특히나 후반부에 나오는 음악과 문학의 만남에 이르면, 그야말로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그의 글에 사로잡히고 마는데요,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을 함께 읽어내는 대목은 그 시각과 해석이 놀랄만큼 흥미로웠습니다.


내가 보기에 문학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한한 부드러움의 상징이고 카프카는 극단적 날카로움의 상징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서술에서 응시를 통해 영혼과 사물의 거리를 단축시킨다면 카프카는 절단으로 그 거리를 넓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육체의 미궁이라면 카프카는 심리의 지옥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만개한 양귀비꽃처럼 혼곤한 잠으로 이끈다면 카프카는 혈관에 헤로인을 투입한 듯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다. (40~41쪽)



통찰의 관점에서 야스나리의 부드러움과 카프카의 날카로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필자에게는 아직 독서가 더 필요한 지점임이 분명했습니다. 치열하게 다방면의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하나보다라는 생각이 밀려왔습니다. 예를들어, 카프카의 <변신>을 수차례 읽고서도 아직 이해하기 힘든 마당에 푸르스트니 보르헤스, 스탕달 등의 대가의 작품을 읽고 버금가는 또다른 대가인 위화가 써내려간 이야기를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것입니다. 시공간을 넘어 책을 통해 전하려는 작가의 메세지를 어느정도 받을 수 있을 것인가?의 또다른 딜레마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자 위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시간을 내어 다시 천천히 좋은 작품들을 정독할 필요가 있다고 말입니다. 위화는 머리말에서 독서 행위를 상상의 새 ‘만만’에 비유합니다. 만만이란 눈과 날개가 하나씩밖에 없어 날기 위해서는 짝을 찾아야만 하는 새인데요, 위화는 문학을 만만의 한쪽에, 읽는 행위를 만만의 다른 한쪽에 빗대고 있는 것입니다.

문학작품과 독서는 짝을 만나 날아오르는 만만처럼 서로 만나 한데 모여야 의미가 있다는 뜻일까요? 짝을 찾아 날아오른 위화의 ‘만만’에 대한 이야기가 잔상을 그리며 책장을 덮습니다. 책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속의 마지막 부분의 인터뷰 글 중 인상적인 부분을 적으며 리뷰를 마칩니다.

'무턱대고, 이 시대가 저 시대를 부정하고, 한 시대가 다른 시대에 복수심을 갖는 과거를 돌이켜 우리 시대가 다른 시대에 밀려나면 지난 시대의 거장들에 대해 새로운 이해가 시작되겠지요. 우리는 다시 읽기를 통해 새로운 정신적 부를 쌓을 수 있을 겁니다.'


[김은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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