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독도에요, 다케시마에요? : 혼마라비해? [공연]

그 이후의 일들은 사회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글 입력 2019.10.01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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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교포. 나는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재일교포 ‘지숙’ 언니가 한국인 ‘영주’에게 ‘나한테 편견 가장 심한 사람, 영주 너야.’라고 했을 때, 객석 어디에선가 의문 섞인 감탄사가 들렸을 때,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도 ‘도대체 무슨 소리야? 영주는, 그리고 나는 편견 없어.’라는 소리가 들렸을 때. 그때 나는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영영, 그들의 감정을 나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걸.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내가 그저 재미로 연못에 던졌던 돌들이 얼마나 잔인한 것을 깨달았을 때,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겪어왔던 세월의 흐름만큼 끝없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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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들었다. 한국이 그립고, 좋으면 돌아오면 되잖아. 왜, 스스로의 선택으로 힘들어하는 거야. 이국 땅에서 한국의 피가 흐르는 이들이 한국을 그리워하는 장면을 어디선가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상황이 있을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하면서도 내 경험으로는 그와 비슷한 상황을, 감정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 하나로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에, <혼마라비해> 연극을 보며, 그들의 감정을, 재외동포, 재일교포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더듬더듬 내가 가진 기억들 중에서 비슷한 것들을 꺼내어본다. 그를 위해 끌어온 내 개인적인 경험은 첫 유럽 여행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이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긴장감으로 온몸은 잔뜩 굳었지만, 마음은 갓 만들어진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했다. 새로운 길 위에 작은 설렘들을 심장소리처럼 콩콩 찍어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 거대한 주먹으로 내 어깨를 강하게 밀치면서 지나갔고, 작은 설렘은 공포가 되어 나를 쿵쿵 짓눌렀다.

 

밝은 대낮에, 비교적 사람이 많은 도시의 중심부에서, 내가 걷던 길은 혼잡하지도 않았고 나는 그 누구의 길도 막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내 떨림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새로 사귄 유럽 친구들 -이라고 믿었던 이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나를 이해하고, 공감해줄 것이라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전개였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사람 없어’ ‘너가 잘못 생각한 거 아니야?’ ‘그러는 너네 나라 사람들은 차별 안 하니?’ ‘너는 그게 왜 무서워?’


왜 무섭냐니. 내 키의 두 배나 되는 남성이 내 얼굴만 한 주먹으로 내 어깨를 밀었다는 게. 그것으로 나는 타지에서 물리적인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한 정신적인 피해까지. 사실 이 모든 것들을 말로 설명해서 이해받아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그들은 나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었고, 그들 또한 언제든지 나를 눌러버릴 수 있다는 것에 눈앞이 캄캄했다.


<혼마라비해> 극이 진행되는 동안 이상하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눈물의 이유를, 그 감정을 정확하게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재일 교포 ‘지숙 언니’와 ‘광식 아저씨’ 그리고 ‘우진’이와 ‘현규 오빠’. 그들이 ‘영주’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상처 입고, 때로는 두려움까지 느꼈을지 조금은 느끼게 되어서가 아닐까. 그 두려움과 상처는 하나하나 설명해야 비로소 이해받는다. ‘영주’가 왜 북한을 믿냐고, 왜 한국과 일본 중에 아무런 국적도 선택하지 않는 거냐고 ‘지숙 언니’를 다그쳤을 때, ‘지숙 언니’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던 것도, 스스로의 상처를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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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대학로에서 연극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신영주'. 2009년 여름, 영주는 일본 극단 '마사루'의 작업을 돕기 위해 일본 오사카를 방문하게 된다. 외로운 타지 생활이 될 뻔 했으나, 거기서 알게 된 재일동포 ‘지숙’의 도움을 받아 순탄하게 적응해 간다.


작품 번역 일을 위해 지숙의 도움을 받기로 한 영주는,하루 날을 잡고 연극연습이 끝난 후, 지숙이 하숙하고 있는 츠루하시 시장골목 잡화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있는 김일성, 김정일 사진. 영주는 곧바로 얼어붙고 만다.


'혹시 이들은 간첩?'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앉으신 관객분들도 눈물을 많이 훔쳤다. 이 수많은 눈물의 의미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 극이 많은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낸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의 전개가 ‘영주’의 시선으로 이어진다는 거다. ‘김정일 사진이 왜 여기 있냐고, 간첩 아니야?’ ‘북한 체제를 믿으면 안 된다니까’ ‘영주’가 쏟아낸 말들은 우리의 보편적인 생각이다.


‘영주’의 편견을 대사로 풀어냄으로써, 나의 편견을, 그리고 우리의 편견을 되돌아보게 한다. ‘영주’의 시선을 따라가며, 나는 또 다른 ‘영주’가 된다. 그 생각에 공감하고 맞장구치고 공감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 또한 그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었음을, ‘지숙 언니’가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고 소리를 지를 때에야 비로소, 소름 끼치게 이중적인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야기는 ‘영주’ 개인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사회’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전개된다. 폭력은 언제나 몰이해에서 온다.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는 태도 또한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수많은 ‘영주’들은 몰이해라는 칼날로 그들의 마음을 찌르고 도려낸다. 재일교포 ‘현규 오빠’가 가수가 되어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일이다. ‘독도에요, 다케시마에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현규 오빠’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버벅거린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영주’의 나라가 재일교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리고 ‘현규 오빠’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일본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 역시 쪽바리. 한국 사람이 그 질문에 망설였다는 게 말이 되냐.’ ‘조센징, 한국으로 돌아가라.’


그들의 정체성은 사회의 입맛에 맞추어 마음대로 주물러지고 왜곡된다. 두 가지 국적 중에 하나를 강요받는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성과 그 속의 상처는 아무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그 국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흐름에 대해서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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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 국민이 해외로 나가 교포가 되기 시작한 시점은 일제 강점기 무렵이다. 팍팍하고 척박한 생활을 탈피하고자 망명을 가기도 했으며, 강제 징용으로 일본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가정을 꾸리는 등 여러 이유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그곳에서 정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재일교포 중에는 ‘조선적’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북한도, 남한도 아닌, 과거의 조선이라는 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정대세 선수의 발언이 논란이 되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나는 김정일을 존경하고 믿고 따른다.’ 발언으로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그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출신으로, 조총련은 해방 후 처음 생긴 재일동포 단체이다. 친북한계 재일본 단체로, 정대세 선수는 이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역사적 맥락과 그가 살아온 환경을 떠올려 보면 단순히 비난만 할 문제는 아니다.


‘지숙 언니’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그러면 남한 사람들은 왜 우리 도와주지 않니?’ 사회는 그들에게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의 말과 행동을 바라지만, 정작 그들을 도와주거나 지원하는 정책이나 법 따위는 거의 없다. 북한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지숙 언니’는 그날을 회상한다. ‘정치적인 것은 몰라. 그냥 우리를 바라보는 그 사람들의 눈빛이 달랐어. 따뜻했고 같은 민족으로 대해줬어. 그래서 그곳에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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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부터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부여된 내가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방식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어렴풋이 추측해볼 뿐이다. ‘영주, 너 지금 다른 나라에 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어?’ ‘지숙 언니’ 말대로 내 상황을 다른 맥락 속에 욱여넣어볼 뿐. 하지만 그것도 내 정체성이 한국인이라는 전체 하에다.


나는 몰이해라는 폭력을 감추고 있지만, 언제든 그것은 그들의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은 그 이후에 있다. 내가 가진 것들이 누군가를 갈기 갈기 찢어버릴 수 있다면 나는 그것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결국 ‘지숙 언니’와 ‘현규 오빠’는 한국도, 일본도 아닌 다른 나라로 떠난다. 정말 그들이 행복한 것이 맞을까? 그 먼 타국에서는 이전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영주’의 독백처럼 나 또한 확신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보내온 한 문장은 조그마한 안심이 된다. ‘혼마라비해.’ 혼마는 정말, 라비는 좋다는 뜻. 그들의 정체성처럼 뒤섞인 언어들이 전하는 ‘잘 지내고 있다’는 안부 인사는 묘한 안도감을 준다.


어쩌면 우리는 그들에게 안부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있지 않았는가. ‘잘 지내시나요’도 아닌, ‘오겡끼데스까’도 아닌, ‘혼마라비해?’라는 인사부터 건네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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