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와 모델] 김민진

글 입력 2019.09.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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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친구이다. 다정하고 편안하고. 하지만 각자가 바빠서 만나지 못했다. 매번 보자고 하지만 친구가 스케줄이 있거나 혹은 반대로 내가 안될 때도 있다. 우린 바쁜 친구들이다. 직업이 직업이어서 그런걸까, 내 마음을 잘 알아차려준다는 느낌이 드는 친구이다. 내가 보자고 날짜를 잡는데 세 번이나 거절당했다. 피차일반으로 바쁘니 이해하고 넘어가는데, 친구가 '매번 보자고 하는데 내가 거절하니까, 나중에는 네가 보자고 먼저 연락하지 않을까봐 그게 두려워'라고 말해줬다. 말을 참 이쁘게 한다. 원래 그럴 생각도 없지만 이런 말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안볼 수가 있겠는가.

-자 화가의 모델 함께 합시다. 자기 소개 할래요?

어.. 소개할게 너무 많아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어. 오늘은 집을 알아보고 있었던 사람이고, 다음주에 난타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이고, 내년 4월의 신부라고 할 수도 있고, 데이트 폭력을 연구하는 사람 김민진입니다.

보통 자기 소개를 뭐라고 표현할지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반대로 너무 많아서 뭐라고 할지 모르겠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이래서 내가 좋아한다. 자기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거든. 안정감을 지닌 친구이다. 근데 왠 갑자기 난타..? 내가 아는 친구는 정적인데.

-엑? 왠 난타야 갑자기?

나는 평생 할만한 악기나 운동을 고민하고 있었거든.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아본게 난타야. 사실 나는 대충 사는 사람인데, 공연이라게 이렇게나 짧은 시간인데도 이 몇 분을 위해서 몇 백 번씩이나 연습해야할 줄은 몰랐어.

-설렁설렁 하는 사람. 그 말이 맞는 것 같아. 네가 표현하는 설렁설렁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어?

예를 들어 숫자를 사용하는 일이야. 회계나 계산 나 이런 일은 정말 못할 것 같아. 정말 큰 압박감이 들어. 지금 하는 일은 상담이잖아. 상담은 이번에 실수해도 다음에 풀 수 있거든. 소통할 수 있어서 나와 잘맞는 것 같아. 사실 대학교 때는 다른 쪽 전공하고 PD를 준비했었거든. 근데 다 떨어진거야. 내가 왜 PD가 되고 싶어했는지 생각해보니까, 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좋아서 한 것이었더라구. 그래서 정한 것이 상담이야. 그래서 지금 대학원을 다니고 있지.

-잘 맞는 것 같아. 너에게 상담은 참 자연스럽다고 해야할까. 너다워.

응. 아마 상담이 현재 하는 이런 일들이란 걸 알고 있다 해도, 과거로 돌아가서도 나는 또 상담을 선택할 거야.



김민진1.jpg



얘기 들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베이지색, 살구색 느낌이 강해서 가장 먼저 깔았다. 연보라색도 화면에 같이 넣었다. 재미있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굴 색을 칠해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알록달록. 작은 얼굴에 가득 들어있는 눈코입 머리카락까지 느껴졌다. 나는 형태 그리기 싫으니까 적당히 그리다가 바로 흩었다. 까맣고 길고 차분한 머리카락이 보여서 조금 강조를 했다. 트레이드 마크 처럼 잘 어울리거든. 부들부들한 천 - 극세사 재질 담요같다. 내 친구는 담요다.

거꾸로 봤을 때는 부드러운데, 바른 방향으로 보니까 강렬한 것 같아. 찐한 느낌이야.

음 부드러운 천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서 많이 긁어서 그런가,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오만가지 색을 다 넣어서 그런가, 친구의 까만 긴 생머리 머리카락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가, 진하게 나온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친구는 베이지색, 살구색이다.


*


-너에게 자신 있는/없는 신체 부위는 뭐야? 혹은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부위. 먼저 얘기하면 미리 생각해올까봐 일부러 이 자리에서 물어봐. 그럼 순간적으로 생각해서 나오는 대답이 평소 네 생각이니까.

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생각해보니까- 내 신체의 좋고 싫고의 여부는 남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아. 나는 키도 작고 말랐지만 ,친구가 나보고 키에 비해 가슴이 있는 편이라고 이쁘다고 말해서 나는 내 가슴이 좋더라구. 그리고 또 코도 내 마음에 들어.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자신없는 신체 부위는 볼인데, 엄마가 나보고 말라서 볼이 패여서 별로라고 그랬거든. 그래서 나도 별로라고 생각했어.

전에 덧칠하고 싶었던 친구도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별로라고 생각하는 부위는 전부 친구들이나 가족이 꾸준히 말해서, 자기도 처음에 별 생각 없었다가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다고. 우리 나라는 특히 더 외모에 각박한 걸까. 나도 비교 기준과 대상이 없으면 외모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지낼 수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당신의 눈은 어때요'라고 했을 때 대부분 여자는 '쌍커풀이 있고, 눈 크기가 크고, 세로로 올라가있고' 등의 생김새를 말하는데 남자는 '왼쪽은 1.0 오른쪽은 0.9'이런 식으로 시력을 말한다고. 비교 기준을 넘으면 그저 신체의 역할만 얘기하는 걸까.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럼 내가 코를 그리지.

역시 살구색, 노란색을 배경으로 깔았다. 그런데 그리면서 보니 친구의 코는 초록색이었다. 초록색으로 면을 칠했다. 그거 알아? 사실 사람 그리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거. 왜냐하면 1mm만 길거나 짧아도, 기울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달라져도 인상 자체가 엄청 달라지거든. 그래서 사람 그리는 게 정말 고난이도 기술이 필요해. 그만한 관찰력과 형태력과 기타 등등. 그리고 코도 어려운 신체부위 중 하나야. 구 (원형)이 대체 몇개가 합쳐진 모습인지 아니. 초록색코를 그리고나서 눈을 그리려다가 접었다. 나는 똑같이 형태를 그리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리고 오렌지 색 조금 가미했다. 어렵지 않았다. 쉽게 굴러간 그림들.

-어떘어?

또 하나의 관점인 것 같아.



김민진2.jpg



나는 이번에 언니,엄마와 몽골 여행을 다녀왔어. 어릴 때 이후로는 줄곧 떨어져서 지내왔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엄마를 다른 사람처럼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어. 사실 나는 놀리는 장난을 많이 하는 편이거든. 내 애정 표현 방식이기도 하고. 나는 내 장난이 편하게 웃어넘길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엄마가 그 장난을 싫어하는 거야. 그 이유가 자존감이 좀 낮은 편이라는 걸 처음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어. 처음으로 엄마를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 그리고 언니와 엄마 사이에 트러블이 생긴 것도 내가 중재했거든.

-네 직업을 살린 거네

어떻게보면 그런 거지.


그렇네. 가족도 엄청나게 가까운 사실은 타인/남 이라는 걸. 피는 이어져도 사고방식과 성격은 완전히 다른 남인데 그걸 쉽게 관과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점점 더 크면서, 타인으로써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긴 하다. 그래서 엄마를 더 좋아하게 되고 존경심이 드는 걸까. 원래도 좋아하긴 했지만.이렇게 머리가 자라나 봅니다. <화가와 모델>이 다 끝나서도 몇시간 수다를 더 떨었다. 이제는 친구와 어떤 접점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서로 함께 알고 서로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쁘다.





[최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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