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지금 욕심을 부리는 걸까 [사람]

글 입력 2019.09.2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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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에 대한 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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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사회의 질서를 익히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다양한 방식으로 배우고 익히는 과정을 반복한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에도 이와 같은 규칙이, 질서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다. 나 역시 여러 이야기, 동화를 통해 사회화 교육을 받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다음 동화는 그런 이야기 중 하나로 유치원에 다닐 때 선생님께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옛날 옛적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는 소년이 좋아하는 과자를 병에 가득 담은 후 외출했다. 집에 혼자 남겨진 사이, 소년은 과자를 몰래 먹으려 하고, 병에 손을 넣어 과자를 잔뜩 쥐었지만 왜인지 손이 빠지지 않았다. 과자는 많이 가져가고 싶은데 손은 빠지지 않으니 당황한 소년은 울음을 터트렸다.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소년에게 하나만 집으면 손을 뺄 수 있다고 말했고 결국 단 하나의 과자만 집은 후에야 소년은 손을 병에서 뺄 수 있었다. 기본 틀은 유지하며 세세한 부분이 다르게 구전되어오는 이 동화는 과한 욕심을 부리다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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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천주교 사립학교를 일 년 정도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내 나이의 학년은 12시에 수업이 끝나던 다른 학교와는 달리 수업이 3시까지 있는, 모든 학생이 악기를 배우거나 미술을 하는 등 특별 활동에 가입해야 하는 학교였다. 더불어 항상 단정한 차림과 언행을 갖춰야 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엄한 수녀님의 회초리를 마주해야 했다. 그즈음 수업 시간에 예절 교육용으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기도 했는데 그중 지금까지 기억나는 한 편이 있다.


서로 집을 마주하고 있는 두 남자가 화면에 나온다. 똑같이 생긴 집을 마주한 두 이웃은 대사는 없지만 둘의 표정만으로 서로를 향한 적대감이 드러난다. 둘은 어떻게든 자신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것들을 가지려고 애를 쓰다가 갑자기 탑을 쌓기 시작한다. 집에 있는 물건을 다 꺼내고 내가 너보다 이만큼이나 더 가지고 있다를 뽐내는 양 하늘까지 닿을 기세로 탑을 쌓던 중, 결국 두 탑이 동시에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화면은 무너진 탑의 잔재와 미동 없이 누워있는 두 남자의 모습을 소리 없이 보여준다.


과자를 움켜쥔 손을 유리병에서 빼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의 욕심에 곤란에 빠졌고, 서로를 질투하고 과시하려고 했던 두 남자는 다른 사람과 자신의 상태를 비교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대상과 성격에 차이가 있지만 결국 자신의 욕심이 스스로를 곤란케하고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과한 욕심을 지양하자는 두 이야기, 유치원 때, 초등학생 때 듣고 보았던 이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에게 왜 이리 생생하게 와닿는 걸까?




나는 지금 욕심을 부리는 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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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을 만났다. 그와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였다. 늦은 시간, 선선한 바람에 맛있는 음식까지 곁들인 자리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사는 이야기, 직장에서의 일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또 나를 즐겁게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즐거운 대화는 오랜만이다 하는 기분이 들 즈음, 올해가 가기 전 남은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것들, 그리고 내가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하고 있는 것들을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러자 묘한 표정을 지으며, 지인은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여유가 많구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고, 둘 중 누구도 그 이야기를 더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무난한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며 시간을 보냈고 헤어질 땐 서로 미소 지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도시의 야경은 아름다웠고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쌌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복잡했다. 나의 바람과 목표를 "여유"라고 표현한 지인을 향한 불쾌함도 물론 있었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내게 계속 물었다. 말이 좋아 여유지, 정말 내가 현실에 맞지 않는 사치를 부리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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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한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다. 지인에게 모난 마음도 들고, "여유가 많긴 뭘 많아, 내가 어떤 마음인지 알고 그렇게 말해"라고 왜 답하지 못했을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도전이라 하는 것들은 정말 여유가 있는 상태에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지속하는 것은 욕심이 아닐까 하는 결국 지인이 한 말과 같은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내가 지고 있던 짐들, 앞으로 이어갈 기본적 생계에 대한 고민, 이 두 가지를 해결해야 하는 시점에서 다른 무언가를 도전하고 꿈꾸는 시도는 결국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아니냐는 끝없는 자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직접 해보기 전에는 몰랐던 어려움에 지치고 금세 마음이 무겁다.


항상 하루의 끝과 매일 적는 일기의 끝을 희망적으로 마무리 지으려 했는데 그도 어렵다. 날이 바뀌는 시점에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못 보는 게 아닐까? 지금 하는 것들이 그저 욕심일까? 이도 저도 되지 않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지금 병 속에 넣은 손을 빼지 못하는 상태는 아닌지, 위태로이 흔들리는 탑에 계속 물건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분명하다, 모든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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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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