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주 보지 못하는 맨얼굴 - 연극 "킬롤로지"

굴절된 감정, 굴절된 폭력
글 입력 2019.09.27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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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1인극 같은 3인극이다. 이 말은 독백이 주를 이루는 연극의 형식 때문에 나온 말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세 인물 간의 단절이 두드러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연극 속 세 인물은 불특정 다수인 관객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낼 뿐, 서로 마주 보며 대화하지 않는다. 극히 드물게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셋 중에 두 명만이고 그때도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서술하는 대신 보여주는 장르이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대부분의 사건은 한 사람에 의해 서술된다. 그들은 자기 자신, 가족, 제삼자까지 혼자 연기해가면서 최선을 다해 관객들에게 본인이 겪은 일을 들려준다.

 

한 사람의 대사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실감 나는 재현 덕분에 지루할 틈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런 형식이기에 더 열심히 귀 기울여 들었다. 그렇지만 독백의 수신자인 관객이 파악할 수 있는 건 1인칭 소설처럼 사건의 전개 과정과 서술자의 심리뿐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에서 이야기 속 상대방과의 소통은 완전히 결여되어있다.

 

데이비, 폴, 알란 모두 관객을 향해 엄청난 양의 말을 쏟아낸다.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구어체이지만, 말을 거는 것처럼 들리지 않고 대나무 숲을 향해 감정의 찌꺼기를 분출하는 것처럼 들린다. 제아무리 열심히 귀 기울인다고 해도 관객은 무기력한 존재다. 어둠 속 객석에서 듣기만 할 뿐, 대답해줄 수도, 손을 내밀어줄 수도 없다. 어디에도 들어주는 이 없는 그들의 독백은 허공에 흩날리기만 할 뿐이다.

 

제대로 된 대화는커녕 얼굴을 마주 보지도 못하는 단절의 결과는 결국 폭력이다. 그리고 그 폭력 역시 마찬가지로 서로 마주 보지 못한다. 폭력의 피해자는 가해자가 아닌 또 다른 약자에게, 그 약자는 또 다른 약자에게 자신이 당한 폭력을 똑같이 전달한다. 전달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결국엔 거대한 폭력의 거미줄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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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에서의 모든 것은 마치 정면을 비춰주지 못하는 거울처럼 굴절된다. 굴절된 욕망, 굴절된 폭력, 굴절된 진심. 나는 이 연극의 핵심이 바로 그 굴절에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 사건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그것이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을 파고들면 대부분의 폭력은 전혀 상관없는 제삼자들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아무런 잘못 없이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폭력의 희생양이 되곤 한다. 그리고 그 폭력의 희생양은 대개 사회적 약자이다.

 

이 연극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 사건이 그러하다. 데이비, 폴, 알란 세 사람 모두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폭력을 전달한다. 그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과 진정으로 감정을 표출해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데이비에게는 자신을 떠난 아빠와 무관심한 엄마가 그러하고, 폴에게는 열등감을 심어준 아빠가 그러하고, 알란에게는 자기 자신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들이 겨눈 복수의 화살은 전혀 엉뚱한 곳을 향해있다. 데이비는 한 부녀에게서 자신은 본 적 없는 따뜻한 미소를 보고 그 미소를 받은 8살짜리 꼬마의 자전거를 빼앗고, 폴은 아버지로 인한 열등감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폭력 게임을 만듦으로써 해소한다. 알란은 데이비를 죽게 한 원인 중에 자기 자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위해 폴의 집에 잠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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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알란의 복수만큼은 다르게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알란에게는 ‘더 이상 아들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라는 대의명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온갖 자료를 통해 아들이 겪은 비극에 당사자뿐만 아니라 미디어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폴을 향해 ‘게임을 그만 만들라’고 지시한다. 물론 이것도 자신의 책임을 덜기 위한 일종의 회피다. 하지만 폴이 만든 게임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연극을 보면서 폭력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쾌감을 자극한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폴의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한 결정적 이유는 게임이 유저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때문이다. 폭력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그 폭력의 형태는 유저가 직접 창조해낸다. 무언가를 파괴하고, 피 흘리게 만들 때 느껴지는 짜릿함을 게임이 예리하게 공략한 것이다.

 

누군가는 게임을 통해 폭력성을 해소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해소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해소될수록, 그 짜릿함을 깨달을수록 더 강렬하게 분출하고 싶어 한다. 가상 세계에서의 폭력이 현실 세계로 이어지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게임은 게임일 뿐, 현실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던 폴마저 게임과 똑같은 방식으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그 사실을 증명한다.

 

미디어가 폭력성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익숙한 이야기다. 게임의 폭력성을 주제로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것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연극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굴절된 폭력이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되는 과정을 소름 돋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게임 제작자인 폴을 통해서 말이다.

 

그러므로 폴은 이 연극에서 분명한 악역이다. 만약 알란이 폴에게 복수한다면 누군가는 자식을 잃은 알란의 심정에 이입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연극은 그런 무책임한 전개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알란을 악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로 그려내지도 않고, 복수마저도 성공 시키지 않는다. 악을 징벌할 목적이라고 해도 폭력은 결국 폭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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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에 유일하게 인물들이 마주 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폴과 폴을 내려치려는 알란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 장면이 펼쳐지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러나 그 마주 봄은 결코 소통과 화합을 나타내는 게 아니었다. 그들이 마주한 건 폭력의 맨얼굴이었으며 마주 봄 뒤에 이어진 건 참혹한 비극이었다.

 

이 연극에 또 유일하게 인물들이 사이좋게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병원에서 근무하게 된 데이비와 병든 알란 사이에서 일어난다. 비록 끝까지 마주 보지 않지만, 둘의 대화는 한마디 한마디에 투박한 진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소통과 화합을 나타내지 않는다. 오히려 소통의 불가능만 뼈저리게 느끼게 한다.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아버지를 챙기는 아들 데이비는 알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될 수도 있었을’ 환상이기 때문이다.

 

연극의 결말은 과장된 비극도, 어설픈 해피엔딩도 아니었다. 우리 현실이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린,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고립감을 폭력으로밖에 해소하지 못하는, 그 폭력마저 당사자가 아닌 또 다른 약자만을 향하는 우리 현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현실을 제대로 마주 보려하지 않는다. 기울어진 거울이 내 얼굴을 비추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겼던 나처럼.




 


킬롤로지
- Killology -


일자 : 2019.08.31 ~ 2019.11.17

시간
평일 8시
주말 및 공휴일 3시, 6시 30분
월 공연 없음

*
8/31(토), 9/1(일) 6시 30분 공연만 있음
9/12(목) 3시, 6시 30분
9/13(금) 4시

장소 :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티켓가격
R석 55,000원
S석 40,000원

제작
(주)연극열전

관람연령
만 16세 이상

공연시간
125분 (인터미션 : 15분)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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