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를 지나간 고양이들 [동물]

길고양이에 대한 생각
글 입력 2019.09.2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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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고양이 얘기가 나오면 엄마는 고양이가 무섭다고 하셨다. 내가 고양이가 왜 무섭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옛날에 방영한 전설의 고향을 언급하셨다. 그 드라마에 나온 고양이가 너무 무서웠다고, 악독한 표정을 지은 고양이의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이 말을 덧 붙이셨다. 고양이는 요물이야. 목숨이 9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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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묘곡성 편에 나온 고양이.
무섭게 생기긴 했다.


어릴 때부터 엄마의 말을 듣고 자라서인지 나도 고양이를 무서워했다. 어쩌다 길고양이를 마주치면 고양이도 나를 피하고 나도 고양이를 피해 재빨리 도망가곤 했다. 가끔 꼬리를 세우고 내 주변을 배회하며 내 다리에 얼굴을 비비는 길고양이를 만날 때면, 그 친구가 나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러다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그저 거리의 배경으로만 여겨지던 길고양이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길고양이가 눈에 보이고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는 강아지는 거의 없는데 반대로 고양이는 많다는 것을.

 

나는 종에 상관없이 거리를 떠도는 친구를 만나면 사진을 찍고 <포인핸드> 라는 어플을 확인했다. <포인핸드>는 실종 동물을 찾거나, 입양하는 어플로, 유기 동물의 목격담이나 실종 동물을 찾는 게시물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내가 만난 거리의 강아지들은 실종 동물로 어플에 이미 게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그 게시물에 목격 댓글을 달고, 보호자와 연락을 한다. 나의 제보로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은 보호자도 몇 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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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보호했던 길 잃은 푸들

 

하지만 고양이의 경우 실종 동물로 올라온 게시물이 여태껏 단 한 건도 없었다. 내가 발견한 고양이에 대한 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는 급격히 기분이 우울해진다. 일부러 고양이를 유기해서 찾지 않는 건가 라는 생각과 길에서 태어난 고양이인가?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나는 최대한 전자로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후자 역시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고양이를 목격했다는 내용과 사진을 첨부하여 글을 올린다. 대부분 댓글은 달리지 않는다. 동일한 경험이 반복되고, 나는 자주 거니는 거리에서 처음 보는 고양이를 마주치면 가슴이 철렁한다. 저 아이는 돌아갈 집이 있는 친구일까?

 

나는 매일 같은 곳을 출퇴근한다. 올해는 아침에 출근하지만 작년에는 저녁에 출근했다. 저녁의 편의점은 아주 바쁘다. 퇴근하는 직장인과 학원에 가는 학생들로 붐빈다. 그러다 손님이 잠시 뚝 끊기는 시간대가 있는데 나는 그 시간에 부랴부랴 가게 밖으로 나가 야외 테이블을 정리하고 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운다. 여느 날처럼 쓰레기를 치우러 나갔다가 건물 앞에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고양이를 처음 발견했다.


배부르게 밥을 먹고 엄마 옆에서 잠을 자고 있을 우리 집 강아지가 생각났다. 혹여나 고양이가 도망갈까 나는 재빨리 가게로 들어와서 고양이 간식을 가지고 나왔다. 고양이를 직접적으로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강아지에게 간식 주듯이 손바닥 위에 닭 가슴살을 올려놨다. 그리고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고양이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오더니 간식을 올려놓은 내 손을 빠르게 할퀴었다. 나는 당황해서 간식을 떨어뜨렸고, 고양이는 바닥에 떨어진 간식을 물고 옆에 주차된 차 밑으로 도망갔다.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이 일을 말해주었더니 친구는 웃으며 한마디 했다. ‘고양이는 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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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편의점에서 밥을 챙겨주는 고양이


나는 그날 이후로 그 고양이가 보일 때마다 밥을 챙겨주고 있다. 그리고 삼색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이따금 삼색이가 처음 보는 길고양이를 같이 데리고 올 때가 있다. 내가 밥을 주면 삼색이는 먹지 않고 새로 온 친구만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나는 삼색이와 친구를 보면서 생각한다.


저 친구들 같은 길고양이를 위한 방법은 없을까?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기엔 그 수가 너무 많고,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 그럼 동물보호 센터에 보내야 할까? 하지만 공고 기한 내에 좋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고양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안락사 당하고 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나는 결국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를 찾아오는 삼색이에게 계속 밥을 주고 있다. 내가 지금 책임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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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 시즌4 ep.1 어느 날, 내게로 왔다


고양이 카페를 운영하며 31마리의 길고양이를 보호하는 지순주 씨와 윤종희 씨는 카페에 오는 사람들에 대한 바람을 묻는 제작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여기서 고양이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

 

길고양이는 구조만으로 환경개선이 절대 되지 않는다. 더 이상 길고양이가 아닌, 그냥 우리 동네에 나랑 같이 사는 같이 공존하는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나는 저 말을 듣고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우려하는 모든 일들은 고양이에 대한 나쁜 인식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만약 길고양이가 길에서도 학대받지 않고 행복하게 인간과 공존하게 산다면 하지 않았을 걱정이다. 뉴스에서 잊을법하면 나오는 고양이 학대 관련 사건들은 우리나라의 고양이 인식 수준을 알려준다.


하지만 나는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도둑고양이가 길고양이 되었듯이, 느리더라도 언젠가 길고양이가 아닌 우리 동네 고양이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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