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Live Drawing, Live Relationship! '최승윤: DRAW'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9.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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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 완벽한 On과 Off는 없다. 핸드폰에서 자주 보는 캘린더 앱에는 개인적 일과들과 지인들과의 만남, 모임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중 지인들과의 만남은 크게 보아 인간관계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원래 만남을 즐겨 하는 편이 아니다. 인간관계 사이에서 쉽게 피로해지는 성격 탓에 혼자 충전해야 하는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 이러한 내가 만남이 만들어내는 뜻밖의 몇 가지 이야기들을 경험하면서 인연이 만들어내는 영향력이 무시 못 하는 것임을 인정하게 됐다.


대학 학부 시절 졸업논문을 쓰는 것을 두려워했다. 졸업논문 작성 관련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지인의 도움으로 주전공과 복수 전공 두 개의 졸업논문 작성을 추가학기 등록까지 해서 통과를 받아냈다. 그 격려의 말을 듣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 상황과 다른 모습으로 있었을거다. 이렇듯, 인간관계야말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예측 불가능하다. 인간관계로 맺어지는 ‘만남’은 의미 변화 폭이 가장 넓다. 인간관계의 ‘만남’에 대한 관점 정리가 필요하다.


최승윤 작가는 ‘만남’의 의미에 주목해왔다. 그의 개인전 ‘최승윤: DRAW’은 작가 자신과 캔버스의 만남에 초점을 두었다. 그에게 있어 캔버스와 만나는 순간은 평범한 순간이 아니다. 캔버스는 작가의 생각을 무한히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우주다. 그리고 작가는 그 캔버스 위에 무한한 생각이라는 사고를 시각화하여 담는 또 하나의 우주인 셈이다. 작가의 작업과정은 바로 이 우주들이 만나 섞이며 대화하는 순간이다. 캔버스와 작가의 만남이 정해진 결과물을 만드는 공식 경로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여러 가치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작업하기 때문에 보이는 의미는 해석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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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반대의 법칙-2019-55, oil on canvas, 53x46cm, 2019
(우) 반대의 법칙-2019-53, oil on canvas, 53x46cm, 2019

   

작업과정 자체에 초점을 둔 최승윤 작가의 작품들은 모두 예측되지 않는 추상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인간관계가 만들어내는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의 시작, 과정, 결과를 모두 표현하는 것이 ‘만남’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만남’에 담겨있다. ‘만남’을 정의하는 친구나 연인, 제자 관계 등의 단어는 실제 인간관계의 모습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정의 내릴 수 있는 한 단어로 인간관계의 모든 내용을 단정 짓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계속 되돌아보게 되고, 이러한 과정이 ‘만남’의 의미를 새롭게 보는 시선을 갖게 한다. 인간관계는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과정이기에 이전 자신의 좁은 사고가 넓혀지는 기회가 된다. 작가는 순간순간 새로운 만남에 감사하고 배우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림의 완성된 상태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작가에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나는 스스로 빠져들 수 있다고 생각했던 뻔한 상황 속에 빠져있었다. 그 구조 속에서 발을 빼낸 후 바깥에서 내가 건진 것은 ‘3’과 ‘반대의 법칙’이었다. 나는 3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본능적으로 3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3안에 갇혀 있다 보니 3을 그릴 수 없었다. 나는 3의 밖으로 빠져나와서야 3을 마주했고, 그제야 3을 표현할 수 있었다. 또한 스스로도 신기했던 점은 왜 지금까지 작품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인 ‘반대의 법칙’을 작품 제목으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3의 바깥에서 3을 표현한 작품들은 모두 ‘반대의 법칙’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한 발 떨어져보면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마치 인생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나처럼


- 포트폴리오 Past Art Work 중, 작가노트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의 제목 캡션은 대부분 ‘반대의 법칙’이다. 한 사람과의 만남에서 읽어내고자 하는 의미들에 정해진 정답이나 원하는 정답, 찾고자 하는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작가는 깨달았다. ‘다르다’와 ‘같다’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과거와 현재의 나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 작가는 ‘만남’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 역시 한 발짝 멀리서 시간을 두고 봐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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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의 만남에 대한 깊은 고민을 작가와 캔버스라는 만남으로 상징화한 그의 작업은 이처럼 작업과정에 중요함을 두었다. 필자가 주목한 작품은 전시 바닥에 놓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별히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기록한 영상 자료가 있어 더욱 유의미하다. 작가가 본래 중시했던 작업과정의 상황을 처음부터 완성되기까지 모두 볼 수 있다.


완성된 작품 옆에는 작업 과정에 사용했던 붓과 물감, 그리고 작가가 예전 프로젝트에서 작업한 결과물도 놓여 있다. 작가 스스로가 복잡한 작업 과정 후에 마음을 정리하는 일종의 의식으로 붓의 한 터치를 찍은 이 형태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작가 스스로가 ‘만남의 의미’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작업과정을 중시한 증거로써, 특별한 의미로 정의 내리지 않겠다는 작가의 신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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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이처럼 작가가 중요시하는 작업과정의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으며, 언뜻 보기에도 그 과정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 가능하다. 작품 주변엔 영상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캔버스 위에 한 획을 긋기 위해 무수한 붓 터치를 바닥에 찍은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다. 캔버스와 그 위에 그려진 완성된 붓질의 형태가 중요했다면, 작품은 전시장 벽면에 오롯이 걸려 있어야 한다. 작품이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의 모습을 여과 없이 담고 있는 모습에서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가의 가치관이 보인다. 그 주변의 것들인 재료와 도구들, 영상 자료, 연습의 흔적이 가득한 캔버스 밖의 붓 터치들을 지우지 않음으로 더욱 치열하고 살아있는 과정의 의미를 나타냈다.


특별히 인간관계의 만남은 하나의 내용으로 단정 지을 수 없음을 작품은 말한다.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단계들이 상호작용한다. 인간관계 역시 다양한 해석과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진다. ‘만남’은 항상 과정 속에 있는 것이기에 인연이 만들어내는 결과를 당장 알 수 없다. 모든 인간관계의 만남은 시간이라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대로 인연에 최선을 다하며 그 결과를 과정에 맡겨보는 여유로움이 인간관계의 ‘만남’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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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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