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발칙하고 낭만적인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 [영화]

글 입력 2019.09.07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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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에는
영화 <아멜리에>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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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나름 영화를 많이 봐왔다고 자부했었지만 그동안 내가 선택했던 영화의 폭은 굉장히 좁았다. 대개가 미국영화였고, 그 다음으로 한국영화를 많이 봤으며, 가끔 순정적인 영화가 구미가 당기면 일본이나 대만의 로맨스 영화를 보았다.

 

그렇기에 프랑스 영화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 쪽도 <적과 흑>, <레 미제라블> 같은 대표 작품밖에 읽어보지 않았기에 프랑스의 정서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바가 없었다. 개척지나 다름없는 이 영역에, 나는 영화 <아멜리에>를 통해 처음 발을 들이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아멜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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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멜리에는 아주 색다른 방법으로 영화에 처음 등장한다. 도입부 자체의 짜임새가 낯설고 참신하다. 담담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그녀가 탄생하던 순간 다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일들을 쭉 열거한다. 쇠파리가 몽마르트 언덕에 앉고, 어느 한 식당의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의 식탁보가 바람에 흔들리고, 노년의 신사가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오던 시각, 아멜리에의 수정체는 만들어졌다.

 

아멜리에의 유년시절이 비쳐지는 초반부는 거의 내레이션을 통해 설명이 이루어진다. 그녀의 부모님이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어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지냈는지 등의 정보가 빠르게 교차되는 장면과 함께 진술된다. 덕분에 우리는 단시간에 그녀의 성장배경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얻어진 그녀의 성향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오랜만에 느끼는 아빠의 다정한 손길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심장병이라고 오해한 아빠 덕분에 학교는 구경도 못해본 아멜리에. 노틀담 성당에서 뛰어내린 관광객에 깔려 엄마가 하늘 나라로 가버리고, 유일한 친구 금붕어 마저 자살을 기도한 뒤 그녀는 정말로 외톨이가 된다.



그녀의 유년 시절은 꽤나 엽기적이고, 불우하다. 아버지의 한 순간의 오진으로 인해 또래와 어울릴 기회를 놓쳐버렸고, 몇 안 되는 소중한 인연들을 일찍이 떠나보내야 했다. 그렇게 고립된 환경 속에서 그녀는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하며 자라난다.

 

때문에 아멜리에는 몸은 어른이 되었어도 마음은 여전히 혼자 놀기 좋아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곡식 속에 손가락 집어넣기, 영화관에서 다른 사람 얼굴 관찰하기, 카페에서의 일이 끝나고 나면 집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보며 상상 속에 빠지기. 그녀의 취미는 온통 자신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이었다.




세상으로 나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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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아멜리에가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의 집에 묻혀있던 누군가의 추억 상자를 찾게 되고, 그것을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마음먹는다. 오래 된, 어쩌면 잊혔을 수도 있는 물건을 찾아줬을 때 주인의 반응이 궁금했던 그녀는 공중전화 부스에 상자를 놓고 주인이 그곳에 오게끔 유도한다.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던 그녀는 상자를 찾고 기쁨에 오열하는 주인의 모습을 보게 되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아멜리에가 처음 느껴본 희열과 만족감이었다. 그녀는 그 일을 계기로 주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기 시작한다. 자신이 일하는 카페의 점원과 손님을 이어주고, 한 번도 여행을 다녀보지 못한 아버지에게 간접 여행을 시켜주고, 집 밖에 나가질 않는 이웃 할아버지에겐 재미있는 영상을 녹화한 비디오를 선물한다.

 

그러나 여기엔 독특한 점이 숨겨져 있는데, 아멜리에는 남에게 도움을 줄 때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감춘다는 것이다. 마치 마니또처럼 은밀하게 상대가 필요한 것을 파악하고, 은밀한 방법으로 그것을 선물하는 것이다. 받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뜻하지 않은 기쁨을 선물한 이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그것도 금방 기쁨 속에 흡수되어 버리고 만다. 도움을 받은 이들의 하루는 행복으로 충만해지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며, 아멜리에는 그것을 뒤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었다.




쓸모없는 취미가 만들어낸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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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멜리에의 호의를 받은 이들 중 그녀의 정체를 끝까지 추적하는 한 사람이 있다. 아멜리에와 사진 부스 앞에서 처음 마주친 니노이다. 그녀가 처음 니노를 봤을 때 그는 사진 부스 앞에 쭈그려 앉아 남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찢어버린 증명사진을 줍고 있었다. 그의 취미는 버려진 사진 조각들을 맞춰 두꺼운 앨범 속에 수집해 놓는 것이었다.

 

아멜리에는 우연히 그가 흘리고 간 앨범을 손에 넣게 된다. 그녀는 앨범을 보며 흥미를 느끼고 곧 니노라는 사람에게도 호기심을 갖는다. 아멜리에는 물건을 되찾아주기 전에 발품을 팔며 니노에 대해서 알아보고 다닌다. 그 결과, 그녀는 니노가 성인용품점과 유원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으며, 그가 증명사진을 수집하기 전에는 ‘발자국 사진 모으기’가 취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니노가 그녀 못지않게 괴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멜리에는 어느 때보다도 공들여 앨범 돌려주기 이벤트를 준비한다. 사실, 이미 관객들은 아멜리에의 진짜 목적이 앨범을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눈치 채게 된다. 이전까지 그녀의 행보가 주인을 잃은 물건을 보물찾기와 같은 방법으로 되돌려주는 것이었다면, 니노에게 있어서는 ‘물건’이 아니라 아멜리아 자신을 궁금해 하게끔 유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쉽게 무시당하는 직업과 취미를 가진 니노와 아멜리아의 만남은 영화에 동화적인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몸은 컸지만 어린 아이의 순수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멜리에에게는 니노의 취미가 결코 쓸모없지 않다. 오히려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사진 속 그들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있기에 그녀에게는 무엇보다도 뜻깊은 취미인 것이다.




닮았지만 같지 않았기에


    

아멜리에는 누가 뭐래도 몽상가이다. 영화엔 아멜리에를 포함하여 외골수적인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지만 그들 모두가 아멜리에와 같은 몽상가는 아니다. 특히, 아멜리에의 인연으로 등장한 니노가 진정으로 그녀의 영혼의 짝꿍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와 여러 공통점을 공유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와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니노는 타인의 시선으로 봤을 때 아멜리에 만큼이나 특이해 보이는 인물이지만 ‘몽상가’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몽상가는 답을 찾지 않는다. 자신이 직면한 미지의 영역에 대하여 여러가지 가설을 떠올리는 것을 좋아하지만, “그것 중 어느 하나가 답이다!” 라는 대답은 원치 않는다. 항상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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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니노는 ‘진실’을 궁금해 했다. 니노가 수집한 증명사진 앨범 속에는 며칠을 간격으로 동일 인물의 사진이 있었다. 아멜리에는 그것을 보고 ‘사진 부스의 유령’이라는 상상을 하며 즐거워했다. 끝내는 그 유령의 정체를 알게 되고 니노에게도 진실을 마주할 기회를 주는데, 그 유령을 다름 아닌 ‘사진 부스 수리 기사’였다. 니노는 진실을 마주하고 호쾌하게 웃으며 기뻐한다.

 

아멜리에를 향한 힘찬 발걸음도 진실을 추구하는 맥락과 같은 것이었다. 둘의 차이가 서로를 이끌리게 만들었다. 시험에 비유한다면, 아멜리에는 문제를 내는 출제자와 같았고 니노는 그것을 풀어가는 입장이었다. 아멜리에가 던진 수수께끼들을 모두 해결했을 때, 니노는 비로소 그녀에게 닿을 수 있었다.




거짓, 감춤,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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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보면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들이 있다. 가장 그럴만한 부분을 꼽으라면 역시, 아멜리에가 카페 점원 지나의 스토커와 또 다른 점원 조제뜨를 이어주는 사건을 들 수 있겠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밝은 편이기 때문에 매번 카페에 찾아와 지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조셉의 스토킹이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은 것도 문제 삼을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를 보던 나 역시 처음 조셉이 등장했을 때 너무나도 당당하게 스토킹을 하는 그의 태도가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조셉을, 아멜리에는 만성 우울증을 갖고 있는 조제뜨와 연결시켜준다. 조셉에게는 조제뜨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조제뜨에게는 조셉이 사실 지나를 보러오는 게 아니라 당신을 보러 오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이런 아멜리에의 거짓말로 인해 조제뜨와 조셉은 서로를 의식하게 되고 결국엔 사랑에 빠지게까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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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가 거짓말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이 외에도 전례가 있다.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는 마들렌 부인에게 마치 죽은 남편이 생전에 썼던 것처럼 거짓 편지를 작성하여 기쁨을 준 적이 있다. 또한, ‘거짓말’과 비슷한 격으로 무언가를 ‘몰래’ 행하는 것에도 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과일가게의 못된 사장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수를 씀으로써 골탕을 먹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묘지에 장식된 인형을 아버지 몰래 뜯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게 하여 그곳에서 찍은 사진을 아버지에게 보내 여행을 다니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영화 속에선 이러한 아멜리에의 ‘거짓말’과 무언가를 몰래 행하는 ‘감춤’이 남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며 유쾌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물론, 현실의 세상에는 법적 제약과 우리 마음속에 양심의 제약이 있기에 그것들을 마냥 유쾌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스토커 조셉과 다리를 놓아주는 사건이나 아멜리에가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는 것, 혹은 앞서 말했던 니노의 ‘남의 증명 사진 모으기’ 취미 등을 보며 거부감을 가지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영화는 영화야!’, ‘픽션인데 이 정도는’이라는 말로 명쾌하게 넘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마음 속에 남은 찜찜함을 없애는 데에는 위와 같은 단순한 문장 외에 더 많은 근거를 요할 것이다. 나는 이를 위해 영화의 주제, 그리고 왜 아멜리에 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순수한 건 알겠지만 어딘가 핀트가 어긋난 것 같은 이 사람을 보며,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 게 마땅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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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이다. 영화를 보는 데 느껴야 하는 바가 정해져 있다면 무슨 재미로 영화를 본단 말인가. 영화를 보며 드는 모든 생각이 정답이다. 나는 아멜리에의 행동을 보며 ‘어이 없다’, ‘왜 저러지’, ‘답답해’ 등의 생각을 많이 했다. 조셉의 존재는 조금 불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영화를 보며 부정적인 느낌만 든 것은 아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멜리에의 행동은 영화에 계속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었고, 니노와 그녀의 만남이 이어질 듯 말 듯 하는 장면은 나를 꽤나 애태웠었다. 그리고 군데 군데 삽입되어있는 아멜리에의 망상에 가까운 상상 장면은-이를 테면 약속 시간에 늦는 니노가 괴한에게 납치되어 먼 타국으로 이송된 것이 아닐까 상상하던 장면- 나처럼 평소에 쓸 데 없는 상상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써는 오히려 무섭도록 현실처럼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아멜리에는 조금은 어수룩하고, 생각에 빠져있는 사람을 대변하는 인물인 것이다. 영화 속 인물이 꼭 윤리적이어야 하고, ‘현실에 필요한’ 사람을 대변해야할 의무는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조금은 파격적인 언행들,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는’장면들이 평소에 만족되지 않는 우리의 마음 속 어떤 부분들을 충족시켜줄 수도 있다.

 

이 영화 속에서 도덕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대신, 아멜리에의 거짓 이야기와 감추는 행동들은 ‘낭만’이라는 가치를 발생시킨다. ‘낭만’이라는 말이 무작정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도 있지만 정작 낭만이라는 가치의 본질을 탐미해보면, 낭만은 ‘진실’보다는 ‘허구’에, ‘편안함’보다는 ‘불편함’과 가까운 가치이다. 보기엔 멋스러운 의자가 막상 앉아보면 편하지 않듯이, 낭만을 맛보려면 필연적으로 감수해야하는 불편함이 있다.




몽상으로 시작하여 용기로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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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쨌거나 해피엔딩이다. ‘추억 상자’를 시작으로 세상에 나온 아멜리에가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타인의 행복을 신경 쓰게 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의 정체는 숨기기에 급급했던 아멜리에가 니노와의 사랑을 쟁취하게 된 것은 한 번의 ‘용기’ 덕분이었다. 항상 문제를 내고 맞추기를 기다려 왔던 아멜리에가 처음으로 먼저 그에게 다가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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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가서 그를 붙잡아.”

 


이웃 할아버지의 격려가 아멜리에에게 용기를 북돋았다. 문 앞까지 찾아온 니노를 두고도 망설였던 아멜리에는 할아버지가 보내온 영상을 보고 용기를 내게 된다.


아멜리에에게 보내온 이 영상은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다. 몽상가로 살아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현실을 직면할 줄 알아야 한다고,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당신이 없는 오늘의 삶은

어제의 찌꺼기일 뿐.”


- 영화, '아멜리에'


    

영화의 장면 구성, 음악, 대사는 내가 프랑스의 정서에 대해 갖고 있던 일종의 선입견과 꽤 맞아 떨어지는 것들이었다. 내가 가진 선입견이란, 프랑스의 정서는 개방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아름답지만 조금 부도덕적인(?) 면도 있는 것일 거란 생각이었다. 이런 감상을 제쳐두더라도 확실한 건, 다른 나라의 영화를 보면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첫 프랑스 영화는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나 또한 아멜리에처럼 생각에 빠져있길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공감하면서 봤을 수도 있겠다. 스스로를 몽상가라고 여긴다면 영화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을 것이고, 몽상가가 아니더라도 신선한 경험을 하기는 제격이라고 생각한다. 발칙하면서도 낭만적인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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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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