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순기: 게으른 구름'과 게으른 관람자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9.1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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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와 관련한 리뷰 글 기고는 항상 어려운 의미를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이 질문은 정기적 글 기고 활동에서 소재를 ‘미술 전시’로 선택한 후 끊임없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전공자가 아니기에 처음 몇 번은 국문학에서 배운 작품 해설 과제를 바탕으로 풀어냈다. 그러나 그 경험도 계속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학술적 형식을 따라 한 리뷰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술 전시 작품을 볼 때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시도들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부담감을 떨쳐버리기 위해 전공자가 아니라는 변명에 ‘미술 전시’ 소재를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다.


스스로 글 쓰는 작업에 한계를 느끼고 있는 즈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김순기: 게으른 구름’ 전시 포스터를 알게 됐다. 제목 명 ‘게으른’이라는 형용사는 애쓰며 글쓰기를 해야 하는 나의 상황에 위안을 주는 단어였다. 전시를 보지도 않았지만, ‘미술 전시’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에 부담감이 있음을 인정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오히려 미술작품 관람에 방해가 되었다. 그런 내게 ‘게으른’이란 단어는 미술작품을 바라보는 힘을 줄여 조금은 불성실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을 일깨웠다. 글 기고 목적을 위한 작품 감상이 아닌 편안하게 응시하기만 했던 게으른 내 예전의 모습으로 있고 싶었다.


김순기 작가는 ‘게으른’이라는 행위에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작품 활동을 한 작가다. 반대되는 단어인 ‘분주함’이 오히려 삶을 사는 목적인 즐거움과 유희를 잃게 만든다고 했다. ‘게으른’ 행위는 삶을 좀 더 즐겁게 살기 위한 일종의 충전 행동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은 김순기 작가가 활동한 환경에 있다. 김순기 작가는 1971년 프랑스 정부 초청작가로 선정되고 난 후, 니스를 창작 환경으로 선택했다.


니스에 위치한 국제예술교류센터의 초청작가로 활동한 김순기는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Surfaces) 그룹 등 실험적 예술가 그룹과 교류하며 활동했다. 새롭고 실험적인 미술 실험이 적극 장려되는 분위기 속에서 김순기는 개방된 자연환경을 소재로 미술 작업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설치와 퍼포먼스 등 다른 장르와의 교섭을 통해 김순기는 자신의 미술 작업 반경을 넓히고 융합시켰다.


그중에서 한 작품이 보르도, 니스, 모나코 등 야외에서 대규모로 연과 풍선을 날리는 프로젝트를 영상으로 기록한 ‘조형 상황 2’이다. 공공장소에서의 대규모 퍼포먼스로 전시실이라는 특정한 공간 내에서만 미술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뒤집었다. 특정한 목적 없이 매일 지속되는 일상 행위가 김순기에게 예술이었다.


김순기는 예술이 캔버스 내라는 제도적 공간에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예술이란 열린 시공간이 만들어내는 순간순간의 자연스러운 장면들이다. 관람자는 수동적인 관람으로, 작가는 꼭 어떠한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의 관계에 의문을 던졌다. 미술작품을 의미 있게 존재하도록 만드는 관람자, 작가 모두가 예술작품을 만드는 참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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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 상황 2’는 김순기 작가의 일상의 순간이 예술이 된다는 관점을 잘 나타냈다. 영상기록의 특성상, 일상의 시간, 공간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 ‘비데오는 시간과 빛으로 짠 빈 그릇….. 그러므로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부여된다’라는 김순기 작가의 말에서 자연스러움의 상태인 ‘게으른’ 속성을 여실히 담아내기에 충분한 매체다.


영상작품의 ‘조형 상황 2’는 대나무와 한국에서 공수한 재료들을 이용해 연을 만들어 해변에서 학생 및 참여자들과 함께 날리고 참여자들이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했다. 일상적 순간에서 연이 날리는 평범한 장면들을 기록하여 병치시킴으로서 ‘게으른’이라는 의미가 극대화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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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상황 2 - 연 - 마리나, 니스, 그리스, 모나코
1972-1974, 3채널 비디오(4:3), 일부 캡쳐


‘조형 상황 2’ 작품의 창작이 자연스러운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작품은 관람객들이 편안히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공간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사면이 빛이 차단된 검은 공간에서 앉아 볼 수 있는 소파들이 마련돼 있었다. 난 우연히 ‘조형 상황 2’ 영상작품 앞 소파에 앉았다.


전시실에 들어오면서도 여전한 부담감을 내려놓지 못한 채 작품을 보던 나는 소파에 앉았을 때 갖고 있던 긴장감이 풀렸다. 애써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내려놨을 때, 김순기 작가가 말하는 ‘일상에서의 게으른 행동이 만들어내는 예술’이 무엇인지 집중할 수 있었다. 3분할로 나누어진 영상에는 큰 의미 없이 연을 만들고, 연을 날리는 사람들의 들뜬 표정, 그리고 연이 하늘에서 펄럭이는 장면이 나온다. 내 눈앞에 틀어지는 ‘조형 상황 2’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봤다.


복잡한 생각, 이해해야 한다는 의지, 거창한 의미를 발견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골치 아픈 머리 회전을 내려놨다. 영상 그대로가 보여주는 연을 날리는 장면에만 집중했다. 연을 날리는 상황을 그저 바라보면서, 어릴 적의 내 시간들도 떠올랐다. ‘아, 나도 저렇게 연을 만들었었지’ 하는 것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야말로 영상 전시실 안에서 잠깐 낮잠이라는 게으름을 피웠다. 내가 낮잠을 자는 순간에도 영상작품은 계속해서 재생되고 있었고, 김순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 메시지의 끊임없는 전달 앞에서 잠깐 쉼을 누렸다.


김순기 작가가 추구했던 일상의 순간이 예술이라는 말 그대로 쉬는 순간이 내게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김순기 작가 자체의 작업이 일상의 순간을 중요히 여기고 마치 개인 일기를 쓰듯, 그 순간순간들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이며, 굳이 어려운 의미를 담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러한 작가의 가치관이 오랜만에 미술작품을 보는 나의 시각과 힘을 내려놓았다. 미술작품 자체에서 난 쉼을 얻었다. 너무나 일상적인 영상작품의 장면 속에서 그 순간 나다운 모습이 잠시나마 나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게으른 관람자로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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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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