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생긴 일] 기숙사 벗어나기

글 입력 2019.09.0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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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학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통학과 기숙사 생활이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통학은 대학생의 삶의 질을 낮추는 커다란 요인 중 하나이기에, 2학기에 기숙사에 지원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주말에는 본가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지만, 주중에 지하철에서 보내던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주어진 하루 3시간의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는 못했다. 달라진 것은 학교에 더 가까이,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뿐인데, 이렇게나 많은 자유시간이 생길 줄 몰랐다. 과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은 통학을 핑계로 피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기숙사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지하철에서 그랬듯 끊임없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책상이 1층, 침대가 2층에 있는 구조의 가구였기 때문에, 한 번 침대에 올라가면 책상에 가서 책이나 노트북을 가져오고 싶지 않았다. SNS를 통해 매일 놀러 다니는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부러워하기만 할 뿐,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기도 했다. 훨씬 건강한 취미이기는 했다.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몸무게를 확인하고, 거울 앞의 나를 미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서서히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뭔가를 꾸준히 하는 것은 분명 자존감에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문제는 동기였다. 내가 소중하기 때문에 아껴주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틀린' 몸과 삶의 방식을 바로잡고자 했다. 대학교 새내기인데 변변한 활동 하나 한 것이 없고, 어느 하나 만족할 만한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우울한 기분이 오래갔다. 원래도 그다지 활발하고 긍정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전보다 훨씬 예민해졌고, 짜증을 더 많이 냈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자극을 주면 상처를 받도록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과제가 있으면 늘 미리 해두었는데, 처음으로 과제를 잊고 수업시간에 과제를 하기도 했다. 달라진 나의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고, 더욱 무력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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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나의 전공인 심리학이 내가 우울감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심리학과 전공 수업은 수업 내용이 재미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다른 전공보다는 더 일상과 밀접한 주제를 빈번히 다루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장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도 꽤 있어 유익하기까지 하다(취업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나는 내 전공을 꽤 좋아한다.). 그 중 하나가 임상심리학에서 다루는 '행동 활성화'라는 치료 기법이었다.


행동 활성화는 행동 심리학에서 파생된 우울증의 치료 기법의 하나로, '일단 나가서 움직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우울해서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집에만 있기 때문에 우울하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자신을 챙기지 않고 일 중독이 되는 것도 건강하지는 않겠지만, 우울한 생각이 들지 않도록 우선 밖으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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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학교, 헬스장을 쳇바퀴 돌듯 움직였던 나는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평론가의 GV를 보러 영화를 예매하고, 버스를 타고 대형 문구점에 가서 구경하고, 기숙사 대신 카페에서 공부했다. 물론 지갑 사정은 좀 우울해졌지만, 다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이 조금씩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고, 새로운 취미를 찾기도 했다.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용기도 얻었다. 말하자면 내 일상을 나의 마음대로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통제감을 얻은 것이다.


우울감을 느껴본 적이 없는 이들은 이 기분에서 벗어나라, 왜 자신을 괴롭히느냐,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다며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우울증은 그 증상을 경험하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호르몬이나 뇌의 문제일 뿐이며, 이런 말은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더욱 무력감을 느끼고 다시 우울한 상태로 빠져드는 악순환을 조장할 뿐이다.


어설픈 공감도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우울감에도 여러 종류와 원인이 있고, 사람에 따라 정도도 다르므로 역효과가 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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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활성화는 여러 치료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나도 자기혐오의 원인은 외면하고 바깥을 돌아다니기만 하다가 다시 우울감에 빠지기도 했다. 더는 무슨 일을 해도 새롭지 않았고,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기력해졌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언급하기도 했고, 이 에세이의 다른 회차에서도 이야기해보려 한다.


하지만 우울감을 처음 느끼고, 벗어나기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가장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학교와 가깝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기숙사나 자취가 주는 압박감을 이기는 방법이다.


전공 수업과 비슷한 내용인 것 같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우울할 땐 뇌과학>이라는 책도 추천해 본다.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서평을 읽었다. 우울감을 벗어나려는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 이미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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