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가을의 문턱에서 만난 절절한 체코 음악의 정수, 노부스 콰르텟 "Slavic"

글 입력 2019.08.30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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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노부스콰르텟_포스터 최종.jpg
 

무더운 여름이 거의 다 지난 8월 마지막 주,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에서 즐기기에 최적인 무대를 다녀왔다. 바로 이번 무대로 10번째 정기연주회를 갖는 노부스 콰르텟의 공연이었다. 벌써 활동 13년차에 접어든 노부스 콰르텟은 이번 무대의 선곡을 체코 작곡가들에 포커스를 맞춰 구성했다. 월간 < The Strad >에 실린 인터뷰에 따르면, 이번 무대에 선곡된 세 곡 모두 노부스 콰르텟이 처음으로 연주하는 곡들이라고 한다. 한국 음악계에서 현악 사중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지전적인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도전적인 선택을 감행하는 노부스 콰르텟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선곡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무대를 기다리기에 앞서 프로그램들을 음원으로 들어보았을 때부터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가을의 문턱에서 듣기에 더할 나위 없는 슬라브 감성의 작품들이 각양각색의 풍취를 담고 있어 각 곡의 매력이 현장에서 어떻게 와닿을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같은 체코의 음악가들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강렬한 색채를 내뿜는 이번 프로그램은 비단 나만 고대한 바가 아니리라 생각한다. 공연을 앞두고 로비에 가득한 수많은 관객들의 모습에서 이번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느껴졌다.




Program

드보르작 / 현악사중주 7번 가단조, 작품16
A. Dvorak / String Quartet No.7 in a minor, Op.16

야나체크 / 현악사중주 1번 ‘크로이쳐 소나타’
L. Janacek / String Quartet No.1 'The Kreutzer Sonata'

- I N T E R M I S S I O N -

스메타나 / 현악사중주 1번 마단조 ‘나의 생애로부터’
B. Smetana / String Quartet No.1 in e minor ‘From my life’





먼저 이번 무대의 시작은 예고되었던 대로 드보르작의 현악 사중주 7번 가단조였다. 1악장은 도입부부터 주선율로 시작하는데, 역시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도 비장미 넘치는 소리가 객석을 가득 채웠다. 무대에 오기 전 음원으로 들을 때, 각 악기의 선율이 마치 실과 같아서 하나 하나가 얽혀 직조물로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현장에서 노부스 콰르텟의 멤버들이 호흡을 주고 받으며 연주하는 모습을 목도하니 그 느낌이 더욱 극대화되었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1악장이 연주되는 내내 뇌리에 남았다. 이어지는 2악장은 평온했다. 1악장에서 느껴지던 다소 비장한 뉘앙스에서 분위기가 전환되었는데 노래하는 듯한 연주가 아름다웠다.

3악장은 한 마디로 역동적이다. 2악장의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다시 한 번 환기되는데, 도입부의 리듬감이 아주 익살스럽다. 스케르초다운 이 역동감은 노부스 멤버들의 완급 조절에서 더욱 빛을 발했던 것 같다. 그러나 드보르작 7번의 대미는 바로 4악장이었다. 앞선 1~3악장도 각기 다른 서정성이 담겨 있었지만 4악장은 정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양감이 있었다. 드보르작 현악 사중주 7번은 가단조의 작품인지라 작품 전반을 아우르는 단조 특유의 침잠하는, 사색하는 듯한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러나 4악장은 그 정서를 뛰어넘어 미래를 낙관하고, 그 기개를 펼쳐보이는 듯한 드보르작으로 가득했다. 바로 그런 드보르작을, 노부스 콰르텟이 보여주었다. 대미가 장식되는 순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

1부의 두번째 프로그램은 야나체크의 현악 사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였다. 톨스토이의 동명 소설에 잇대어 작곡된 이 작품은 불륜 관계에 있었던 여인을 향한 작곡가 본인의 감정까지 함께 어우러져 있어 굉장히 격렬하고 불안한 느낌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1악장에서 발단이 이루어지고 2악장에서 전개가 되며 3악장에서 위기를 맞고 4악장에서 절정과 결말을 맺는 듯했다.

1악장은 현장에서 연주를 보며 들으니 음원으로 듣던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들렸다. 그런데 음원으로만 들을 땐 1악장에서 뭔가 연상되는 듯하면서도 그게 명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무대를 보며 1악장을 들으니 처음에 무엇이 연상되었던 것인지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바로 박동하는 심장이다. 주된 선율과 함께 고조되는 음을 제1바이올린부터 첼로까지 연이어 짚어나가는 것이, 격정적이면서도 불안한 심장박동으로 연상되었던 것이다. 마치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소설 속 인물 포즈드니셰프와 불륜 관계를 가졌던 야나체크 본인의 심장박동 같았다. 고저가 분명한 박동처럼 선율을 전달해주는 노부스 콰르텟의 연주에 순식간에 몰입이 되는 순간이었다.

2악장은 집시풍의 선율이 악장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1악장보다 격정적인 분위기가 다소 완화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점차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의 트레몰로로 불안감이 고조된다. 노부스는 이 긴장된 불안감을 안고 그로테스크함의 극치인 3악장을 연주해주었다. 이는 포즈드니셰프의 심경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첼리스트 문웅휘의 부드러운 선율로 시작함과 동시에 이를 기괴하게 끊고 들어오는 김영욱의 바이올린과 김규현의 비올라 선율은, 사랑하는 아내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남자의 뒤엉켜있는 정신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 같았다.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읽지 않고도 그 분위기를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만큼 아주 강렬한 연주였다.

뒤이은 4악장은 1악장의 선율을 변주하며 분위기가 절정에 치달았다. 특히 비올리스트 김규현이 주선율을 연주하며 객석에 소리치는 듯한 그 순간은, 비올라의 그 아름답고도 호소력 짙은 음색에 압도되는 대목이었다. 절정에서 격렬하게 치달은 감정의 고조 끝에 남은 것은, 마치 남편 손에 세상을 떠나버리고 만 안타까운 한 여인에게 보내는 야나체크의 묵념 같았다.


노부스 콰르텟_ⓒJino Park.jpg
ⓒJino Park


2부의 프로그램은 스메타나의 현악 사중주 1번 '나의 생애로부터'였다. 2부에서는 1부와는 달리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제1바이올린, 김재영이 제2바이올린을 맡았다.

이 작품의 1악장은 비올라의 강렬한 선율로 시작된다. 비올라가 가히 이번 무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장 핵심 악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스메타나뿐만이 아니라 이번 무대의 프로그램들은 비올라의 음색이 극대화되는 작품들이라고 느껴졌다. 그 중에서도 특히 스메타나의 도입부에서 김규현의 비올라 선율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 호소력 짙은 선율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말했지만 앙상블을 이루는 순간, 청년다운 열의와 다짐이 무대에서부터 객석으로 흘러 넘쳤다.

2악장은 스메타나가 '예술 취향'이라 이름붙인 악장이다. 폴카풍의 춤곡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악장은 스메타나가 좋아하는 민속적인 요소를 담은 것인 동시에 춤곡 작곡하기를 좋아했던 젊은 시절의 자신을 반추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국민악파 음악가로서 자신의 강점인 민족적 색채가 강한 요소를 음악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스메타나의 강점이 잘 드러나는 악장이었다.

*

무곡의 느낌이 물씬 났던 2악장에 이어 맞이하는 3악장은, 이번 무대가 존재해야만 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3악장은 첼로의 다소 우울감 서린 선율로 시작한다. 첼리스트 문웅휘가 연주하는 그 어두운 선율은, 마치 아내를 일찍 떠나보내야만 했던 노년의 스메타나가, 아내를 떠올림과 동시에 그녀를 떠나보낸 슬픔을 상기하게 되어 그 비통함을 조용히, 읊조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첼로의 독주가 끝나고 시작되는 앙상블에는 아내에 대한 그의 애정어린 시선, 따뜻한 마음 그리고 애틋함이 담겨 있었다.

음원에서 들을 때에도 놀랍도록 서글프게 아름다웠던 이 악장은, 비단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반추하고 회고하는 차원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노부스 콰르텟의 연주가 말하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렸을 때 그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지나 또 다시 아내를 결핵으로 일찍 떠나보내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스메타나는 그 이별의 괴로움을 넘어서 다시금 아내를 사랑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노부스의 연주에서, 스메타나의 자기 확신이 느껴졌다. 선율에 담긴 그 사랑의 깊이에 그만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노부스 콰르텟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앙상블은 스메타나가 느꼈던 그 뜨겁고 절절한 사랑과 공명하고 있었다.

피날레는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 4악장의 초반에는 마치 성공가도를 달리던 스메타나의 모습이 연상된다. 활기차고 밝은 분위기에서 갑작스러운 트레몰로와 함께 맞는 전환은, 스메타나가 청력상실로 인해 느꼈을 불안감과 두려움, 절망의 총체였다. 그 비극 속에서도 이 놀라운 작품을 만든 스메타나와 이 위대한 작품을 생생하고 절절하게 그려낸 노부스 콰르텟의 선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노부스 콰르텟.jpg
 


본 무대가 끝나고, 노부스 콰르텟은 앵콜로 드보르작의 현악 사중주 12번 '아메리카'의 2악장과 4악장을 연주했다. 찬란하고도 풍부한 2악장, 활기차고 명랑한 4악장은 단조의 분위기로 가득했던 본 프로그램들과는 완전히 다른 노부스 콰르텟의 매력을 아주 선연히 보여주었다. 드보르작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선율성이 어떤 것인지 확연히 느껴지는 작품이자 악장들이었다.


본 무대의 첫 곡이었던 7번과는 달리 표제가 붙어있으며 실제로 미국 체류 중에 드보르작이 작곡했던 이 작품은 드보르작이 신대륙에서 얼마나 큰 영감을 받았는지, 그것이 얼마나 찬란했는지를 잘 담고 있다. 본 무대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작품을 연주하는 노부스 콰르텟의 모습은, 이 다음의 무대에 이들이 어떤 작품을 선곡할 지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이렇게 다양한 정서들을 자신만의 음악으로 완전히 소화해내는 연주자들이라면 어느 작품인들 좋지 않을까.


이렇게 앵콜 무대까지도 체코 음악으로 선곡하며 온전히 슬라브 작품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 노부스 콰르텟을 향해 객석은 뜨거운 박수와 환호로 화답했다.


*


노부스 콰르텟 멤버들 간의 호흡과 연주자 각 개인의 엄청난 몰입, 그리고 그들의 앙상블이 자아내는 아름다움은 이번 정기연주회를 찾은 관객들에게 아주 뜨거운 감동을 전해주었다. 강렬함의 색채가 이토록 다채로울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정서가 이렇게 폭넓고 깊다는 것도 노부스 콰르텟의 손끝에서 나오는 선율이었기에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작년에 비올리스트 김규현이 새로운 멤버로 합류한 이후 이번이 첫 번째 정기연주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호흡이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올해 연말에는 슈투트가르트의 리더할레에 데뷔하고 내년에는 콘세르트 허바우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러 홀들에 데뷔하게 될 노부스 콰르텟. 내년에는 얼마나 더 다채롭고 깊어진 연주를 들려줄 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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