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금 여기, 바로 당신을 위한 - 지금 여기, 마임 [공연]

글 입력 2019.08.29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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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마임_포스터.jpg
 


와, 진짜 이 공연은 보러 오길 잘했다. <지금 여기, 마임>을 보고 정확히 10분도안 돼서 든 생각이었다. 작은 무대에 무대 장치도 없이 오로지 음향과 사람의 움직임만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말없이 진행되는 공연이기 때문이었는지, 관객들은 전부 숨죽여 그들의 움직임에 집중했고, 그들의 표정과 손짓 하나하나에 반응하며 공연을 관람했다. 나는 어쩐지 계속 미소를 띠고 공연을 봤는데, 그냥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지쳐있던 내게 위로가 돼 주었던 공연이었다.


우선, 정말 멋있었다. 모든 순간과 흐름에서 사소한 감정이 느껴졌고, 특별하지 않은 순간조차 특별하게 만들어내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떤 공연들은 우리에게 무심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그런 것들이 위로로 다가왔다. '다들 그렇게 살아.'하고 생각하던 부분들이 어쩌면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살아.'로 느껴져서 조금 울컥했다.




#1.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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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에서 지나온 시간과 다가올 시간 앞에서 당당하고 싶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마임이스트 고재경 님의 '여정'이란 작품으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한 남자가 태풍을 뚫고 역경을 물리치고, 때로는 쉬어 가기도 하며 장미꽃을 향해 걸음을 내디딘다. 그는 정말 열심히 앞으로 나아간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이 마임이라는 생각을 할 수조차 없이 너무나 생동감 넘쳤던 공연이었다. 그가 장미꽃 앞에서 하하하 웃었을 때는 관객 모두가 함께 웃었다. 그가 태풍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조금만 더...!' 하는 생각을 했다.


삶을 긴 여정, 여행에 비유하는 말들이 참 많다. 나는 감히 삶을 안다고 하기엔 어린 나이지만,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해서 길고 험한 여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열심히 혹은 처절하게 살아왔다.


나는 '여정'이란 작품을 보며 내 지난날들을 돌아봤다. 내가 겪어야 했던 수많은 일과 늘 간직하던 꿈, 울고 웃던 나날들까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작품 설명에 "당당하고 싶은"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쓸 수 있던 건 작품 속 남자가 정말 "열심히" 삶이란 여정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에게 닥치는 많은 역경을 견디고, 그러면서도 걸음을 내디디고 맞서가며 자신의 길을 꾸준히 갔다. 때로는 지치고, 잠시 쉬어가기도 했지만 그 시간도 그의 여정의 일부였다.


나는 조금 더 당당해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취가 있거나 진전이 있지 않아도, 나의 길을 열심히 걸어왔다는 것 역시 내가 해낸 일이었다. 내가 때로는 길을 돌아가고, 잘못된 길에 들어서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내가 계속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의 여정을 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현 위치를 생각했다. 이 길이 맞고 틀리고보다 중요한 건, "지금, 여기" 내가 여전히 걷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 마당 쓸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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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삭슥삭 빗자루질을 하다가 동전 한 닢 주웠다. 계속 쓸면 또 나오려나?



마임이스트 최정산 님의 '마당 쓸다가'는 한 남자의 빗자루질로 시작되었다. 빗자루질하던 남자는 동전 한 닢을 줍고, 더 큰 욕심에 땅을 파고 부자가 될 미래를 꿈꿔 보지만, 결국 땅속에서 나온 것들은 전부 손에 넣지 못하고 스토리는 끝이 난다.


나는 마임 공연을 보러 가기 전, 입으로 효과음을 내는 것은 생각을 못 했었는데, 효과음을 직접 묘사하는 것은 정말 매력 포인트였다. 동전을 주울 때마다 "동전!"하며 소리 냈던 게 아직도 귀에서 맴돈다.


단순하고 깔끔하게 진행됐던 '마당 쓸다가'는 인간의 욕심이라는 생각보다 깊은 주제를 다뤘다. <지금 여기, 마임>에서 하고자 했던 인간의 내면과 본성에 대한 이야기가 어떤 것들인지 '여정'에 이어 '마당 쓸다가'를 보니 서서히 알 것 같았다.


'마당 쓸다가'는 인간의 욕심과 그 끝의 허망함에 대해 정말 간결하게 잘 표현했던 작품이었다. "맞아 맞아."하며 웃으며 보기에도 좋은 작품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본질은 깊고 진솔했기 때문에, 욕망에 대해 관객이 모두 집중할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내면 안 돼."라고 말하는 작품들은 많이 있지만, 우리의 본성에 있는 욕심에 대해 진솔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게 풀어낸 작품은 찾기 쉽지 않다. '마당 쓸다가'를 보며 정말 즐거웠다. 진솔하게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았다.




#3.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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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첩을 열어보는 사람, 사진에 담긴 추억 속으로 들어갑니다. 사진 속에 담긴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느껴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마임이스트 류성국 님의 '사진'은 전체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한 남자가 사진첩을 넘기며 그 속의 사진에 담긴 추억을 회상한다.


'사진'은 정말 따뜻했던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류성국 님의 표정 연기가 너무 좋았는데, 사진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이 내 기억인 마냥 기뻐하고 울고 감동했던 것 같다.


사진첩을 넘기다 사진 속 이야기로 들어갈 때, 사진을 크게 늘리는 듯한 동작도 너무 좋았다. 사진 속으로 들어간다는 표현인 것 같았다. 사진 속 이야기 끝에 사진 찍는 포즈 후 조명 변화와 함께 다시 사진첩을 넘겼다. 이런 연출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그 사진 속에는 자신의 결혼식, 아내의 임신, 출산, 아이들과의 추억 등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무엇 하나 해당하는 이야기가 없지만, 그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고 그 순간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해서 정말 나의 이야기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에 추억의 일부로 남게 될 것이고, 장면 하나하나 참 소중한 기억이 될 거라 생각하니 지금이 참 소중하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지만,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았을 때 어쩌면 나는 그가 사진첩을 넘길 때의 그 표정을 지을지 모른다.


현재라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그 소중함을 잘 잊게 된다. 지나고 나서야 더 빛나는 추억들이 많다. 지금 이 순간 나의 일상을 조금 더 예쁘게 바라보고 싶어졌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나의 사진첩을 더욱더 많고 소중한 사진들로 채워가고 싶어졌다.




#4. 지구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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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에프! 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마당 쓸다가'의 최정산 님의 '지구별 여행'. 가장 깜찍하고 유쾌했던 공연이었다. 한 외계인이 지구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이다. 그는 사람을 돕고, 갈등에 빠지고, 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행복하게 유에프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최정산 님이 은색 옷을 입고 귀여운 외계인 역을 맡았을 때 정말 객석의 모두가 환영했다. 외계인과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모두 들떠서 공연을 즐겼다.


외계인은 지구에 와서 많은 경험을 한다. 맞지 않는 심장을 얻어 곤란해하고, 물에 빠진 사람을 도와준 후 그의 심장을 놓고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지구가 처음이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낯설어한다.


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도 지구가 처음이다. 아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지구별 여행자" 같은 호칭을 붙이기도 한다. 이 공연을 보며 외계인이 지구에서 보낸 시간이 마치 인간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모두 지구에 불시착한 거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갈등이 있고, 낯설어하며, 여러 고민을 한다. 다들 낯선 지구별을 각자의 행선지를 위해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계인은 결국 자신의 별로 돌아가고, 신나게 조명에 맞춰 점프하며 공연이 끝난다. 공연이 전부 매끄럽게 이어졌기 때문에 한 공연이 끝난 후에 관객이 박수를 치는 일이 없었는데, 이 귀여운 외계인은 정말 많은 박수를 받았다. 모두의 마음에 친구로 남은 것 같다.




#5. 2019 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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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시리즈는 4,50대 대한민국 남자들이 겪는 사회에서의 위치 그리고 가장으로서 짊어지는 책임감, 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신체적인 변화 경제적인 변화의 삶을 담고자 했습니다. <2019 꿈에~>는 그런 삶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의지를 담고자 합니다. 그동안의 슬픔이나 아픔을 딛고,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를 위해 다시 일어서는 모든 아버지들을 위한 살풀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던 마임이스트 유홍영 님의 '2019 꿈에 ~'라는 작품은 대한민국의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기상-회사-외근-회식'의 반복적인 일상과 그 속에서 상사에게 궂은 말을 듣고, 가족들 사진을 보고 힘을 내고, 회식 때 열심히 상사를 맞춰주고 끝내 속을 게워내고 집에 가는 모습까지,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모든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아버지" 하면 이런 작품들이 많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 내에서는 흔하고 자연스러운 일과이기 때문에 아마 많은 아버지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고 더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또한, "어머니"들의 고충도 있고 가족을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일은 마찬가지기 때문에 그들 역시 공감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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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씁쓸하다. 모두 꿈 많던 사람들이었을 텐데, 어른이 되고 아빠와 엄마가 되고 또 다른 이름을 얻는 과정에서 자신이 사라져가는 것이 너무 슬프다. 가족을 위해서, 생계를 위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고 잊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현실이란 명목하에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잃어야 할까? 늘 그게 두렵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 나는 그들이 말하는 현실을 이해하게 되는 게 싫다. 나도 저런 삶을 살아가게 될까? 견딜 수 있을까? 많은 장면들이 유머러스하게 펼쳐졌지만, 편히 웃을 수는 없었다. 가족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다.

작품 속 아버지는 희망적이었고, 궂은일들에도 꿋꿋이 견뎌내었다. 그래서 더 슬펐지만, 그렇기에 너무나 멋있었다.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위치에 있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사가 하나도 없는데도, 모든 장면들을 이해할 수 있던 게 신기했다. 그만큼 표현력이 뛰어났고, 섬세했다. 정말 너무 감동적이었던 공연이었다.

대사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관객이 공감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큰 틀에서는 같은 생각을 했지만, 대사의 공백을 각자의 이야기들로 채워가며 공연을 관람했다면, 자신만의 깊이 있는 감상이 가능했을 것 같다. 마임 공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을 그 공백을 스스로 채우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지금 여기, 마임>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모든 공연은 "지금, 여기"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지금, 여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을 살아내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정말 잘 풀어냈다.

그 속에는 지금 여기, 나의 이야기도 있었고 내 친구의 이야기도 있었다. 대사 한마디 없이 모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위로하고, 감동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공연 시간 내내 "지금 여기, 나 잘살아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공연은 관객에게 많은 것들을 던져주지 않았지만, 더 깊고 넓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건네줬다. 그저 따뜻했고, 유쾌했으며, 위로되었던 공연이었다.

무엇보다 소중한 "지금" 그리고 "여기". 지금, 여기. 우리 모두 잘살아낼 수 있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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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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