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색무취의 세상에 사는 유색인간의 이야기 [영화]

영화 '더 기버: 기억전달자' 이야기
글 입력 2019.08.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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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차별, 가난, 고통 없는 세상에서, 모두 똑같은 행복의 정도를 누리며 살아가는 세상이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으로의 이주를 고려해볼 것인가?

 

‘조너스’는 기억과 함께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 '커뮤니티'에서 살아간다.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항상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정도의 행복을 느끼고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다. 커뮤니티의 지도부는 모두가 안정된 삶을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기후, 가족관계, 심지어는 개개인의 진로까지 정해준다.

 

주인공 조너스는 일정 나이가 되어 직위 수여식에서 ‘기억보유자’의 임무를 부여 받는다. ‘기억전달자’와의 훈련을 통해 그는 사물의 색깔과 진짜 모습, 그리고 기억, 감정, 선택의 자유가 존재함을 알게 되고 완벽한 세상인 줄 알았던 커뮤니티를 불신하게 된다. 끝내 조너스는 탈출을 통해 모두에게 제거된 기억을 전달하기로 마음먹고,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영화는 특별한 직위인 '기억보유자'인 조너스를 필두로 우리에게 세상에 대한 심오한 질문들을 던진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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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축복인가?]


세상에는 지워지면 좋을 기억들이 참 많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의 기억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들은 힘든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정서를 관장하는 뇌만 활성화가 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뇌의 회로는 굳어버린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퓨즈를 끊어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질환은 소방관, 참전군인 등 다양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앓고 있다. 이들에게 망각이야말로 통원, 약물치료보다도 더 절실한 근본적 치료제 일 것이다. 이러한 망각의 필요성은 개인의 차원에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내가 망각할 수 없다면? 일상생활 반경에 이 곳 저 곳 널려있는 기억들에게 현재의 정신적 안정을 공격 당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니체의 도덕의 계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은 본성상 망각하는 동물인 것이다. 망각은 결코 이성능력의 부족이나 타성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것이 의식 이전에 발생하는 욕구나 충동들의 모순과 대립의 과정들에 대한 정보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가 억압(Verdrängung)이라는 단어로 말했던 것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을 밀어내어 정신적 질서와 안정을 찾게 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 장치에 의해 인간은 행복감과 건강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과감고진 (過鑒古進), 즉 옛 것을 거울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의 사자성어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세상에는 기억해야만 하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의 탄압,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가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세상에는 폭력을 경계할 수 있는 안전 장치가 매우 느슨해졌을 것이다.

 

이 영화는 인간 본성인 '망각'에 물음표를 남긴다. 과연, 망각은 축복인가?



[국가에게 허락되는 통제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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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미국 국가안보국의 직원이었던 한 청년의 내부고발로 미국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국가안보국은 테러 방지를 이유로 국민들의 이메일과 비밀번호, 전화 기록, 신용카드 정보 등을 정부에서 감시했고, 관리했다. 심지어는 노트북과 스마트 티비를 통해서 집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도 언제든지 감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뒷 배경에는 구글, 애플, 유튜브, 스카이프 등 세계적인 미국의 인터넷 통신회사들이 함께했다고 한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행동은 미국 연방상소법원의 위헌 판결을 받게 되었고, 이는 국가가 권력을 무기로 개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한 대표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연말정산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국가기관에서 개인의 카드결제 내역을 모두 수집하고, 정산한다. 그 내역은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떠한 것을 소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한 정보가 하루하루 누적된다면, 내 평소의 행동 반경, 취향, 생활 패턴까지 모두 알 수 있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정보가 악용될 위험은 추호도 없는가? 없다면 그 믿음을 보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는 국가권력, 통제로부터 자유로운가? 자유롭다면 얼마나 자유로운가? 국가에게 허락되는 통제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영화의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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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색감을 중점으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는 흑백으로 시작해 점점 완벽한 컬러의 영상으로 채워진다. 조나스가 알게 된 색감들, 그에 따라서 다채롭고 싱그럽게 채워지는 연출에 집중해서 보면 영화와 감독의 의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소름 돋는다'라는 말로 감상평을 정리할 수 있다.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 천천히 사유해볼 수 있다. 평화를 위한 통제, 자유를 위한 혼돈. 둘 중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 확장시켜보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사상으로도 대변될 수 있는 질문에 뚜렷이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길러볼 수 있다.



[태예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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