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취미는 홈베이킹이다. 남들에게 당당히 말하기엔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여가의 대부분을 베이킹으로 보낼 만큼 나름 열정적인 편이다.
홈베이킹이 취미라고 말하면 간혹 어떤 이들은 ‘빵은 사 먹는 것이 훨씬 싸다’라며 볼멘소리를 늘어놓기도 한다. 필자 또한 이를 뼈저리게 인정하고 있다. 흔한 동네 빵집에서 2,000원이면 사 먹는 슈크림 빵을 집에서 만들 경우, 대략 10,000원의 재료비용을 지급해야 한다. 단순히 빵이 먹고 싶어서 홈베이킹을 하는 것이라면, 당장 그만뒀을 것이다.
시중에서 사 먹는 빵이 맛과 가격 면에서 우수함에도, 홈베이킹을 계속 하는 이유는 바로 ‘선물’하기 위함이다. 필자에게 홈베이킹이란 단순히 설탕, 우유, 밀가루 등의 재료를 가공하는 것이 아닌 마음을 맛있게 전달하는 과정이었다. 이처럼 맛있진 않더라도 정성이 담긴 빵들은 그 어떤 시중의 빵들보다도 단연 최고였다. 최고의 빵들을 이번 오피니언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호두 머핀
호두 머핀은 오븐을 사고 나서 가장 처음 시도한 홈베이킹이었다. 이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하나씩 선물해주고자 야심 찬 마음으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홈베이킹의 결과는 사진에서 보여주는 것과 같이 참담했다.
그때는 제과에 대한 지식이 백지였던 터라 밀가루와 우유, 달걀, 설탕 등을 한꺼번에 넣기만 하면 맛있는 빵이 저절로 탄생하는 줄 알았다. 한꺼번에 처리한 제조 과정을 거친 후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머핀이라고 하기엔 참 애매한 빵이었다.
그래도 친구들은 이 참담한 빵을 미안할 정도로 맛있게 먹어줬다. 어색한 호두 머핀에 있는 어색하고 서툴렀던 필자의 진심을 봤기 때문일까.
잼 쿠키
잼 쿠키는 평범한 버터 쿠키에 끓여서 졸인 블루베리를 얹은 쿠키이다. 비록 버터쿠키의 담백함과 블루베리 잼의 달콤함이 매력 포인트이다. 담백하고 달콤한 맛으로 미각을 치유해주는 이 쿠키의 주인공은, 필자의 마음을 치유해준 사람이었다.
올해 초 대인기피증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 안에 있는 상담센터를 방문한 적 있다. 그곳에서 매주 한 시간씩, 상담 선생님에게 수많은 고민과 상처를 털어놓았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곳이 있다는 안도감과 나에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고마움은, 필자를 한층 더 성장시켰다.
이에 나의 성장을 도와준 상담 선생님에게 말로 전하기 쑥스러웠던 마음을 달콤한 쿠키로 표현했다.
시나몬 롤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고 무작정 만든 빵이다. 밀가루 위에 잘게 썬 호두, 시나몬 가루를 가득 얹은 후 동그랗게 말고 노릇노릇하게 굽는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해 제빵 초보자인 필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었다. 비록 맛과 생김새는 영화만큼 멋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사실 이 빵은 남자친구와 크게 다툰 후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헤어질 것처럼 큰 소리로 화를 냈지만, 돌아서서 곧장 후회했다. 하지만 평소 애정 표현이 서투른 만큼 다정하게 사과하는 것도 어색한 편이라,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래서 평소 남자친구가 먹어 보고 싶어 한 ‘카모메 식당’의 시나몬 롤을 만들었다.
물론 빵 하나로 마음을 전부 표현할 순 없었지만, 시나몬 롤은 남자친구와의 화해에 큰 도움이 됐다.
커피콩 쿠키
커피콩 쿠키는 은은한 커피 향과 진한 초콜릿 맛이 느껴지는 쿠키이다. 아기자기한 크기의 쿠키를 기대했지만, 오븐에 들어간 순간 크기가 2배로 커지는 바람에 못난이 쿠키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맛은 꽤 달콤했다.
커피콩 쿠키는 스승의 날 평소 좋아하는 교수님을 위한 선물이었다. 사실 대학교에 입학한 후 좋은 스승을 만나리란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학생도 아니었을뿐더러 학생 개개인을 존중하는 교수들을 보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지할 곳 없던 대학에 어깨를 토닥여준 교수님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그런 행운에 감사하기 위해, 그리고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그 마음을 표현했다.
슈
‘제일 좋아하는 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늘 ‘슈’라고 대답할 만큼, 슈는 필자에게 소위 ‘최애 빵’이었다. 그러나 먹을 땐 몰랐는데, 슈를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맛있는 슈를 먹기 위해선 반죽을 타지 않게 가열한 후 반죽 표면에 적당한 수분을 만들어 구워야 했다. 이전에는 밀가루 반 크림 반인 이 과자가 한 개에 1,500원 정도인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으나, 만드는 방법을 아는 지금 그 과자 안에 참 많은 손맛이 담겨 있음을 깨달았다.
엄청난 정성의 그 과자는 필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여느 과자들보다 많은 정성이 담긴 만큼 소중한 친구에게 주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 수고한 필자에게 소정의 선물을 주고 싶었다. 열심히 만든 만큼 스스로 주는 선물은 그 어떤 제과점의 빵보다도 값졌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스스로 지쳤다고 생각하는 어떤 날 다시 한번 슈를 만들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