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왜 판타지인가"에 대해 에릭 요한슨은 이렇게 답한다. - 에릭 요한슨 사진전

글 입력 2019.08.03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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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졸업, 취업 준비, 진로, 생계. 현재 나를 억누르고 있는 단어들이다. 나는 졸업까지 한 학기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태로, 지금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었던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기가 몇 개월도 채 남지 않은 것이다.


쉼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나를 ‘사회’라는 미지의 세상으로 내모는데, 내 마음은 조금도 준비되지 않았다. 나보다 훨씬 뛰어난 경쟁자들 속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불안감과 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조급함이 나를 옥죈다. 그렇기에 1분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미래의 나에게 도움 될 만한 것들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그게 정답이라는 확신도 갖지 못하고 있다.

 

대학교 4학년. 졸업. 취업 준비. 진로. 생계. 나를 억누르고 있는 단어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것들을 한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하면 그것은 ‘현실’일 것이다. 작년까지 나는 하고 싶은 것, 이상적인 것에 빠져 살았다. 미래를 준비하는 대신 현재의 행복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제 나의 마음 상태는 현재의 행복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다. 대학교 4학년, 풋풋하지도 않고 안정되지도 않은, 현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채 일상을 살아가던 중,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관람하게 되었다. 지치고 바쁜 와중에 잠시 숨 돌릴 틈이 필요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다.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내게 전시는 그 정도 의미였다. 하지만 에릭 요한슨이 우리에게 공유해준 그의 상상은 잠시 숨 돌릴 틈, 작은 변화 정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삶에 왜 판타지가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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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진은 그 무엇보다 가장 현실적인 예술이었다. 대상의 한 순간을 있는 그대로, 날 것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 사진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초현실주의’와 ‘사진’이라는 두 단어는 물과 기름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그의 작품 하나만 봐도 바로 무너지게 된다. 그것은 그가 사진으로 구현해내는 세계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릭 요한슨 전은 분명 사진전이지만, 사진이 아니라 그림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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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Asleep



‘어떻게 사진으로 이런 걸 표현하지?’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그의 작업 영상을 보고 바로 가라앉았다. 에릭 요한슨은 직접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무려 150개가 되는 포토샵 레이어를 사용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다.


복잡한 작업 과정 때문에 그의 작품은 구상부터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 그럼 그렇지. 당연히 포토샵으로 구현했겠지.’ 의문이 해소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자 초현실주의 예술작품에서도 현실적인 이유를 찾는 내 모습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마술쇼에서 마술을 즐기지 않고 속임수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마술사가 아니라 사진작가다. 그가 촬영하는 대상은 결국 현실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더 관람하니 진정한 판타지는 그의 사진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150개의 포토샵 레이어를 사용하면서까지 구현해내는 에릭 요한슨의 집념 자체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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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Moon Service


전시장에는 현실에 대한 그의 유쾌한 의심이 가득했다. 구름이 양털 조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밝아진 날씨는 누군가가 화창한 풍경을 덮어준 결과라면? 달의 모양을 바꾸는 서비스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그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가 던진 의심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증명할 과학적인 근거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재미만 있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한창 작품에 빠져들던 중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집과 학교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아주 제한된 세계를 살았던 그때의 나는 좁은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상상했었다.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유일하게 컴퓨터 스피커의 작은 구멍 속에서 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보고 그 안에서 크기가 아주 작은 사람들이 놀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이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어린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타지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교환학생의 기회로 외국에서 몇 개월 지내보기도 하는 나를 몹시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부러워하고 있다. 현실을 의식하지 않던, 무엇이든 상상할 수 있었던, 불가능 따위 몰랐던 과거의 내가 사무치게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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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거의 다 관람했을 때,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가 떠올랐다. 아들에게 환상적인 이야기만을 전해주던 아버지, 아버지의 말이 모두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아들, 그러나 사실은 거짓이 아니었던 아버지의 인생. 그 영화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는 이렇게 한 줄 평을 남겼다.

 

“왜 판타지인가”에 대해

팀 버튼은 이렇게 답한다.

 

나는 그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왜 판타지인가”에 대해

에릭 요한슨은 이렇게 답한다.

 

지긋지긋한 현실에 치이고 있는 나에게도 판타지를 가슴에 품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판타지를 앗아간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현실적이라는 이름으로 비관과 불안을 끌어안고 비현실적이라는 이름으로 꿈과 이상을 무시해버린 나 자신이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독한 현실과 객관적 진실로 둘러싸여 있다. 내가 나아갈 사회는 틀림없이 냉혹할 것이며 무수히 많은 근거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도 현실을 유쾌하게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의심함으로써 삭막한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에릭 요한슨이 될 수도,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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