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화와 현실의 처절한 간극 -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글 입력 2019.07.25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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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이 개봉한지 거의 두 달이 되었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대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기대를 잔뜩 받은 작품이었다. 영화를 본 나 또한 ‘역시 봉준호 감독’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기생충>에 대한 전체적인 평은 대부분 ‘불편하다’는 반응이었다.

<기생충>의 주 스토리는 가난한 백수 가족이 부잣집에 위장 취업하면서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면서 대다수의 관객은 으리으리한 부잣집 가족이 아닌, 서민 가족에 이입하게 된다. 그래서 불편하고, 찝찝하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잖아요’라는 포스터 속 문구처럼, 공생이 아니라 기생하며 살아가는 저 모습이 우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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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기생충>을 본 후 바로 떠올랐던 영화가 바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였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또한 서민 가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다. 정확히 말하면 서민 부부일 것이고, 주인공 ‘수남’이 극 전체를 끌어가는 영화다.

영화 포스터에서 주인공 ‘수남’은 양손에 피가 묻은 대걸레를 들고 있다. 그 옆엔 영화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담은 문구가 적혀져 있다.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단지 행복해지고 싶었어요’. 이 문구와 대걸레를 들고 있는 주인공만 봐도 우리는 이 이야기가 행복하고 싶은 서민의 이야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곧, 그 이야기는 뼈가 시릴 정도로 고달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
이 글은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잔혹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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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총 제작비 2억 원의 비용으로 찍은 저예산 독립영화이다. 제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첫선을 보인 동시에 한국경쟁부문 대상을 꿰찼다. 이후 이 영화의 주인공 ‘수남’을 연기한 배우 이정현이 2015년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세간에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장르는 드라마이며, 잔인한 장면에 유머러스적인 요소가 섞여 있다. 그러나 편하게 웃을 수만은 없다. 이 영화 또한 ‘불편함’이 떠나질 않는다. 그건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블랙 코미디 영화이기 때문이다.

한없이 성실하고 고지식하고 순박했던 '수남'은 컴퓨터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고, 청각장애인 남편을 만나 평범하고 소박한 결혼생활을 꿈꾸지만, 사회에 속고 제도에 속아 결국은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독하디독한 살인자가 되고 만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21세기 현실 사회의 문제를 야멸차게 끌어안은 천민자본주의 사회의 잔혹 동화라고 할 수 있겠다.



폭넓게 다루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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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성실한 나라에서 앨리스로 살아가는 영화의 주인공 ‘수남’이 사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교육, 주거, 고용, 육아 등 다양한 측면의 사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학교에서 누구보다 성실했던 주인공 수남은 3년의 세월과 돈을 허비한 채 전공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공장에 취업한다.

수남은 무려 자격증이 14개나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스펙을 쌓아도 말짱도루묵인 이 현상은 우리 시대 청춘들과 다르지 않다. 교육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실용적이지도 못하다는 것이 문제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수남의 남편은 공장에서 일하다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된다. 그 이후 복직도 하지 못하고, 다른 곳에 취직도 하지 못한다. 결국,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PTSD)로 남편은 자살을 택하고, 이로 인해 남편은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수남’은 그런 남편을 위해 자신이 두 배, 세 배로 더 일을 늘려가며 일한다.

주거 문제는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다. 영화 속 수남의 대사 중 이런 대사가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값은 오르더라고요.". 현실도 마찬가지다. 집값은 끊임없이 오른다. 열심히 돈을 모아 놓으면, 이미 집값은 오른 뒤다. 오죽하면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유행어가 생겼을까.

수남은 투잡, 쓰리잡 이상을 뛰며 돈을 모으지만, 어림없다. 결국 수남은 은행에서 대출 1억5천을 받아 집을 사게 된다. 이후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면서 집을 전세로 주고, 홀로 고시원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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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남편의 병원비 문제로 세입자를 찾아가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기생충>이 ‘공생 혹은 기생’을 큰 주제로 다루며 빈부 격차를 보여줬다면 <성실한 앨리스>는 서민과 서민의 대립이 주를 이룬다. 수남의 집에 살고있는 세입자도, 수남도, 재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시위 세력들도 전부 서민이다. 어려운 서민들끼리 물고 물릴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통해 현대 사회의 주거 문제를 꼬집고 있다.

영화에서 육아에 관한 내용을 대놓고 드러낸 부분은 없지만, 인물들의 대화로 얼핏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수남의 남편은 결혼하기 전 수남에게 “집부터 사야 돼. 우리 아기 낳으면 나처럼 키우면 안 되잖아.”라고 수없이 되뇌인다. 이는 변변한 수입이 없고, 집도 없는 상태기 때문에 육아를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고 짐작케 한다.



동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를 모티브로 한 스토리 구조를 띠고 있다. 또한, 동화라는 텍스트의 기본 작법을 이용해 가난-모험-행복이라는 동화적 모티브를 적절히 변주해 극의 기반으로 사용했다.

처음에 등장하는 수남과 경숙의 대화 장면에서 수남이 마치 구연동화를 하듯이 자신의 이야기를 설명해 나가며 영화의 스토리가 시작되는 게 바로 그 예다. 영화 내내 전체적으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과장법을 사용해서 상황을 보여주는데, 주인공은 오히려 덤덤하게 그 상황을 구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빠른 전개와 만화컷 같은 연출은 세련미가 돋보인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와 같은 복수 시리즈 영화와 느낌이 비슷하다. 아니나다를까 시나리오를 읽은 박찬욱 감독이 배우 이정현에게 이 영화를 강력 추천했다고 한다. 덕분에 가녀린 몸집으로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그럴수밖에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어딘가 모순적이지만 공감되는 캐릭터, ‘수남’이 탄생할 수 있었다.

독특한 미쟝센과 소품 연출력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수남은 소세지를 썰던 칼, 대걸레, 세탁기, 빵 봉지 안의 따조까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구들을 살인 도구로 이용한다. 너무나도 일상적인 소재들이라 더 이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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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수남이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장면을 뒤에서 찍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식물인간 상태인 남편을 옆에 태운 채 스쿠터를 타고 바다로 떠나는 수남의 뒷모습이다. 누군가에겐 절절한 새드엔딩으로, 누군가에겐 해피엔딩으로 보일 수도 있는 장면이다.

동화와 현실의 가장 큰 차이점은 엔딩이다. 동화는 대부분 해피엔딩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이 비극이기 때문이다. 가상 이야기에서까지 비극적이고 싶지 않은 바람이 동화의 결말로 드러나는 것이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은 새드엔딩도, 해피엔딩도 아니다. 그렇다고 열린 결말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다. 누군가에겐 절절한 새드엔딩으로, 누군가에겐 해피엔딩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글쎄다.

동화가 ‘왕자와 공주는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하는 것처럼, 이 영화 속 수남과 남편도 과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을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아닐 것 같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력해도 결국 제자리이고야 마는 현실이 슬프게 다가온다.

 

모두의 소원,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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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인물들은 전부 하나같이 정상인 사람이 없다. 우리의 '앨리스' 수남과 그녀의 청각 장애인 남편, 아직도 본인이 군인인 줄 아는 퇴역 군인, 분노조절장애 세탁소 주인, 히스테릭한 상담사까지 전부 제각각이다. 그러나 이들의 목표는 단 하나다. 행복해지는 것. 정말 소박한 소원이지만, 가장 어려운 소원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수남은 “미안해요, 그러니까 제가 죽이는 거 이해해주세요. 전 그저 행복해지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수남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사회 구조 앞에 순응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 복수를 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때 통쾌함을 느낀 관객들도 많았을 것이다.

극의 후반부, 절정으로 치달을 때까지 핏빛으로 물든 장면이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식물인간 남편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피가 나오고 살을 지지는 다른 장면들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 이유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게 더 실감나게 다가오는 현실이라서 그렇다.

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취업, 주택, 더 나아가 인간관계, 꿈과 희망까지 포기하는 비운의 N포세대, 우리 시대의 청년들. 미래에는 포기하는 대상이 우리의 삶이 될지도 모른다. 성실한 앨리스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 영화에서처럼 성실한 사람들이 비극적인 주인공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엘리트'를 포기하고 '앨리스'가 되는 일이 없어졌으면 한다. 그런 세상이 언젠가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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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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