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은 자신의 확장,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를 읽고.
글 입력 2019.07.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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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책 한 권을 받았다. <미스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라는 책이 도착했고, 첫인상은 조금 딱딱한 미술과 자기성찰적 내용일 것 같았다. 나는 미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크게 없어 읽기 어려울 것 같다는 막연한 걱정과 함께 책을 펼쳐 훑어보았다. 웬걸, 이 책은 미술사도 미학도 아닌 에세이 같은 대화형식으로 써진 일종의 경험담이었다.

책은 저자와 '미스 홍'과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미스 홍은 8년간의 직장생활로 생긴 무력감에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미스 홍은 선으로부터 시작해 색, 공간, 그리고 현대미술까지 미술을 자신과의 치유의 과정으로 경험한다. 이 모든 과정에 미술에 대한 학문적 조예, 배경지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답게 그리기'만이 필요했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이론이 아닌 경험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예술을 잘 알아야 예술을 즐길 수 있나요?

한 분야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을 '조예가 깊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특히 예술적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을 지칭할 때 많이 쓰인다. 하지만 반대로 예술은 초심자가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일종의 벽을 가지고 있는걸 의미할 수 있다. 사람들은 예술을 '아는 것이 많아야 즐길 수 있는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전을 배워야 하며, 숨겨진 의미를 해석할 수 있어야 예술을 즐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다. 이것은 예술을더 멀게 느껴지도록 한다.

나 또한 미술에 대해 그렇다 할 경험이나 지식은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가라는 꿈을 가지고 노트에 만화를 열심히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 정도? 그렇기 때문에 전시회를 가도 전시실에 있는 설명을 주의 깊게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예술을 제대로 즐기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포스트 모더니즘과 함께 잠깐 백남준과 그의 작품에 대해 배웠지만, 아직도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예술적 영감이나 해석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미스 홍 또한 나와 같았다. 미술은 너무 어렵고 지금까지 발전해 온 과정을 이해하기엔 너무 큰 벽에 가로막힌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미스 홍이 저자와 함께 미술을 알아가는 과정은 '조예가 깊을' 필요가 없는 그저 자신과의 대화 과정이었다. 현대미술 또한 공부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의 처음부터 저자는 자신과 세상을 관계하는 방법을 이야기하며 미스 홍을 미술의 세계로 이끌어간다.


김: 내 생각에는 꼭 공부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 현대미술가 중에 교육을 받지 않고도 유명해진 작가가 있는 걸 보면 뭔가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홍: 만약에 그런 방법이 있다면 알고 싶어요.

김: 직접 경험해 보면서 생각을 정리해 나가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음... 정말 중요한 건 말이야. 세상을 보는 관점을 현대미술가처럼 바꾸는 거야.

홍: 세상을 보는 눈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데요?

김: 그 말을 뭐냐면... 이 세상 속에 홍이 살고 있지?


홍: 네, 이 세상 속에 제가 살고 있죠.


김: 그런데 사실은 내가 세상을 살고 있는 거야.

홍: 같은 말씀 아닌가요?

김: 음... 뭐가 다르냐면, 무엇을 중심에 두는 가가 다른 거야. 만약에 세상을 중심에 두면 '나는 어떻게 세상이 원하는 데로 살아야 하는가.'가 문제가 되지. 그런데 내가 중심이 되면 '내가 나의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문제 되는 거야.



저자는 미스 홍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라고 조언한다. 세상을 살고있는 자신이 아닌 자신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으로.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중심점이 달라지는 것은 자기 표현이 가능해지는 기초적인 토대가 된다.



미스 홍이 미술을 마주하는 과정



미술 학원에 다녔던 기억을 되돌려 보면, 처음 선을 배울 때 큰 도화지에 연필로 무수히 많은 선들을 내려가며 채웠던 때가 있었다. 그 선들은 더 이쁜 선을 그리기 위한 연습의 과정이었다. 하지만 미스 홍이 마주한 선은 자신을 표현하는 기초적인 미술의 문법이었다. 그래서 그 선을 그리는 과정은 이쁘게 그리도록 다듬고 고쳐나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상태를 알고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었다. 미스 홍은 선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이 안정이 좀 더 필요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공간과 풍경 또한 다르지 않았다. 공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을 드러내는 것이고, 세상을 어떻게 의식하는가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이를 통해 세상을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인지, 타인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인지 성찰할 수 있게 되고 그림 속의 호기심과 사랑으로 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작가는 미스 홍에게 자신과 세상을 매개하는 도구로 미술을 사용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과정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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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공간에 감정을 실어 보라고요?


김: 응, 잘 모르겠으면 시작했던 곳에서 다시 시작해봐. 그것을 중심으로 점점 공간을 펼쳐 나가면서 나의 몸으로 되돌아오는 거야. 눈에 보이는 사람들과 나의 몸 사이를 채워 나가는 거지.

홍: 음...


김: 나의 몸에서 먼 곳부터 천천히 손 가는 대로 그리면서 다시 나의 몸으로 되돌아오고, 또 나의 몸 밖으로 나갔다가 나로 돌아오고를 반복하면서 완성해 나가면 그 안에서 공간이 드러나게 돼.

홍: 몸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말씀이 조금 와닿았어요. 내내 마음이 공간 속 사물들에 가 있었던거 같아요. 사물들이 아니라 내 몸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만나는 공간을 그리라는 말씀이죠.

김: 응, 알아들은 것 같네. 내 몸을 중심에 두었을 때 공간 속 사물들이 제 자리를 찾게 돼.


홍: 혼란스럽다가 점차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어요.


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내 의식에 들어온 세상을 드러내는 거야. 나와 상관없는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사물들은 우주를 부유하는 그림자가 돼. 내 몸으로 펼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면 사물들은 화면 안에 제자리 찾게 할 수 있지.





예술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다시 생각해보니, 저자가 보여주고 싶은 미술은 내가 느꼈던 음악과 비슷했다. 나는 음악을 개인적인 삶의 과정을 함께 채워 나가는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음악적 표현이 완벽하지 않아도, 제한된 내 방법들 안에서 나의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나의 작품은 완성이었다. 그래서 기술에 얽매이지 않고, 지식과 기술은 표현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미술은 왜 유독 멀게 느껴졌을까? 미술 또한 음악처럼 자신의 삶과 함께하며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표현할 방법이었다. 그리고 미술 뿐만 아닌 다른 예술도 그랬다. 자신에 충실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예술과 함께할 방법이었다.

이 책은 자신의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을 아주 친절하게 안내한다. 어렵지 않고 누구나 해볼 수 있는 방법으로 미술을 보여준다. 예술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그리고 예술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딱딱한 설명과 이해를 잠시 넣어두고 마음속으로 솔직한 경험을 음미해보자. 그렇다면 '미스 홍'처럼, 예술은 자신을 표현해주는 가장 좋은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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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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