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정한 예술가 베르나르 뷔페

글 입력 2019.07.0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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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의 그림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풍은 아니다.


어찌보면 기괴하고 어두운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조금은 무서운 느낌이 드는 듯하다.



전시를 방문하기 전 preview에 작성했던 내용이다. preview를 작성하며 보았던 그의 그림들은 너무나 기괴했고, 무서웠으며 다가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전시를 다녀온 지금, 나는 그의 그림이 너무나도 좋아져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르나르 뷔페'라는 사람 자체가 좋아져 버렸다.


사실 전시장에 들어서고, 그의 작품을 보자마자 너무 좋았다. 다른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를정도로 그냥 좋았다. 그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직선이 넘치는 그림도 좋았고, 그가 사용한 색상들도 좋았다. 앤디워홀이 왜 베르나르 뷔페를 보고 '내가 인정하는 프랑스 회화의 마지막 거장은 베르나르 뷔페다"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진정한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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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단지 그릴 뿐이다."



그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고, 전쟁을 겪었으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중간에 나와야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초창기 그림을 보면 그림의 배경에 스크래치로 가득했다. 실제 이 스크래치는 그의 상처를 나타낸 것으로, 상처가 아물기 시작한 시기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의 상처는 모두 그의 그림에 담겨있었다. 아버지의 부재, 어머니와 함께 여행갔던 곳에서 느꼈던 남들과의 차이, 어려서부터 겪었던 전쟁의 비극, 어머니의 죽음 등 그의 모든 상처는 그림의 주제가 되었고 표출되었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을 보고있자면 그의 인생이 곧 그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지 그릴 뿐이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가 그려나가는 게 인생이라는 듯 그리기에 열중했다.



"나를 둘러싼 증오는

사람들이 나에게 준 훌륭한 선물이다."



뷔페처럼 존경과 찬사, 그리고 경멸과 비난을 동시에 받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린 나이에 재능을 인정받아 에꼴 데 보자르의 입학규정을 바꾸게 하고, 구상화의 왕자라 칭송받으며, 30대의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그였다.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젊은 재능 5인'으로 선정되었고, 생애 두 번이나 프랑스 문화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했으며, 30대에 당대 거장 피카소의 '대항마'로 꼽히기도 하는 등 그가 세운 업적은 대단했다.


하지만 구상화에서 추상화가 주가 되는 시대가 도래하고, 그가 백만장자가 되어 성과 롤스로이드를 사고, 추상화가 아닌 자신만의 그림을 이어나가자 그를 향한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그가 전람회를 열었을 때 미술평론가들은 그의 그림조차 보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뷔페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묵묵히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그 누가 그를 욕해도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단지 그림을 그려나갔다.


이러한 부분에서 그가 진정한 화가라고 생각이 들었다. 부와 명예를 누렸던 사람이라면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비평가들과 평론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위해 트렌드에 따라 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비난을 받을지언정 자신만의 그림을 계속 그려나갔으며 이를 예술적 성장의 원천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를 둘러싼 증오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준 훌륭한 선물이라고 말한다.



"만약 내가 그림을 그릴 수 없다면

나는 차라리 죽을 것이다"



그와 그림이 하나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노년의 그는 파킨슨병에 걸리고 만다.  손이나 다리가 떨리고, 몸이 구부정하게 되어 잘 못 걷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하는 파킨슨 병은 손으로 그림을 그림을 화가에게는 치명적인 병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림을 그렸다. 얇고 직선의 날카로운 그의 싸인을 하기도 힘들었던 그지만,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끝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가 1999년에 그린 작품 '부르타뉴 위의 폭풍우'의 작품에는 당시 그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뷔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부르타뉴란 지역의 해변을 찾았다고 한다.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지냈던 기억은 그에게 행복으로 남았다. 그렇기에 이 전에 부르타뉴 해변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평온하고 행복한, 어머니와의 기억이 가득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 '부르타뉴 위의 폭풍우'는 폭풍우라는 제목에 걸맞게 휘몰아치고 어둡고, 매서운 느낌이 가득하다. 뷔페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두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다시는 그림을 못 그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그를 두렵게 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2000년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 했다고 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야 된다는 것과 이전과는 달라질 것, 그림이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가 그를 두렵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이 삶과 그림에 대한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던 그는 결국 1999년 10월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의 마지막은 참 뷔페같았다. 그림과 평생을 함께 했던 그는 그림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리며 치유를 받았고, 그리는 것이 그의 삶이었던 그는 결국 그림으로 인해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진정한 화가였다.

 



순수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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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관람하고 나면 주로 3가지 방향으로 정리가 된다. 그림이 좋은 경우, 화가가 좋은 경우, 둘 다 좋은 경우. 보통은 화가가 아닌 그림이 좋은 경우로 끝난다. 화가가 만들어 낸 작품은 너무나도 좋지만 그에 반해 방탕했던 삶 등을 이유로 화가에 대한 애정이 가지 않는 경우가 이 경우다. 그러나 뷔페의 경우 그림과 화가가 둘 다 좋은 마지막 경우에 해당했다.


그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특히나 그림에 있어서는 더욱 그랬다. 베르나르 뷔페가 20세기의 거장이라고 불리고 추상화에 대항하는 구상화의 왕자라고 칭송받으며 수많은 상을 휩쓸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평가들과 사람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젊은 나이에 백만장자가 된 뷔페가 성을 사고, 롤스로이드를 구매하자 사람들은 그를 까내리기 바빴다. 그가 상업적인 화가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가 롤스로이드를 구매한 이유는 하나였다. "롤스로이드를 그리고 싶었다"는 이유 하나였다. 그는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그래서 구매를 했다. 아무리 값비싼 물건도 그에게는 그저 그림을 위한 것이었다.


직선으로 가득 찬 그의 그림은 어찌보면 날카롭고 차갑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느낌의 그림들도 있다. 바로 그의 아내 아자벨 뷔페를 주제로 한 그림들이다. 그가 아나벨 뷔페를 주제로 그린 그림을 보면 너무나도 따듯하고 사랑스러움이 묻어난다. 그의 특유의 직선적인 느낌은 담고 있지만 뿜어내는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그만큼 뷔페가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뷔페와 아나벨은 서로에게 좋은 뮤즈가 되었다. 아나벨의 뷔페의 그림 주제로, 뷔페는 아나벨의 글의 주제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다. 여성편력이 화려한 화가들을 찾는 것은 쉬울지언정 한 사람과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는 것은 화가들로부터 생각보다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서로를 필요로하고 사랑하고 함께하고자 하는 모습이 더욱 그들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느끼게 했다.


아나벨의 글에서 베르나르 뷔페의 여리고 순수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 아나벨은 뷔페는 뷔페는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싫어해서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가 선택한 결정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지만 다만 50년에 걸쳐 이룩한 그의 화가로서의 위업을 모든 이들이 인정해 주기만을 바란다고 할 뿐이다.


뷔페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그림을 그리는 일에 자신의 열정을 모두 바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의 전부였으며, 그녀는 그의 모든 작품은 사랑할 뿐이다. 41년간의 사랑과 애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그가 남긴 작품들과 구와 나눈 추억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그의 그림에 나타난 아나벨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아나벨의 글귀에서 드러나는 뷔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그들을 더욱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직접 두 눈으로 보아야 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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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내게 거만하다 할지 모르지만, 이 캔버스를 한 번 보세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예요"


"그림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히 뭔가를 느낄 것이다."


- 베르나르 뷔페 재단 이사장 셀린 레비



그의 그림을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는 그저 조금은 기괴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무서운 느낌이 드는 느낌이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해 특별한 점을 느끼지 못했고, 그가 왜 그렇게 칭송받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전시를 다녀온 지금 그의 그림에서 특별함을 느낀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정확히 어떠한 감정인지는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다.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글로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쉽고 답답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러나 그림 하나하나가 사람을 집중하게 만들고, 느끼게 만든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뷔페의 말대로 그의 그림은 분석이 아닌 그저 그림 자체를 느끼게 만들었다.


뷔페의 그림은 생각보다 모두 규모가 컸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무채색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다. 당시 시대상을 잘 반영한 그림들이었다. 뒤로 갈수록 그의 그림은 더 크고 더 화려해졌다. 도슨트의 설명에 의하면 명성과 함께 부가 축적되면서 그의 그림을 더욱 풍부하게 할 환경이 갖춰지면서부터 가능해진것이라 했다.


색이 더해진 그의 작품이 가진 힘을 더욱 증대되어 다가왔다. 유화 특유의 질감을 눈 앞에서보고 임패스토 기법으로 쌓여진 물감은 두 눈으로 보아야 그림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베르나르 뷔페의 그림과 아나벨 뷔페의 글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분명한 무언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가능하다면 도슨트 설명을 듣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베르나르 뷔페 전시임과 동시에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에 전시장에 적힌 글귀만으로 그의 삶과 그림을 다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도슨트 설명을 들으며 그의 삶을 함께 돌아보고 그가 그림을 그리던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어느새 그의 그림과 베르나르 뷔페라는 사람이 마음 속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김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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