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쉽고도 어려운 영화의 세계, 필로 FILO [도서]

글 입력 2019.07.05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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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잡지라고는 씨네21밖에 모르던 내가 FILO라는 영화 비평잡지를 스스로의 의지로 읽게 되었다. 난 영화를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영화를 폭넓게 보는 스타일은 또 아니다. 좋아하는 장르도 딱히 없고,(호러는 정말 싫어한다.) 좋아하는 감독도 딱히 없다. 취향도 일관적이지 못하다. 잘 만든 영화라면 그게 음악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멜로/로맨스 영화든 다 마음에 들어한다.

그러나 내겐 ‘잘 만든 영화’에 대한 개념이 확실치않다. 그냥 내가 보고 마음에 드는 영화면 내겐 잘 만든 영화인 거다. 단순하지만 가끔 답답했다. 내가 이 영화의 어떤 포인트가 마음에 들었는지는 마할 수 있는데, 그래서 그 연출이나 기법이 어떤 식으로, 왜 효과적이었는지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가 왜 이 영화가 마음에 들었고, 이 영화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에 대해 더 자세히 표현하기 위해 비평을 좀 더 접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FILO의 ‘영화와 언어와 사랑의 탐색지’라는 설명 문구를 보고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영화도, 언어도 사랑도 전부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데, 그것들을 전부 모아놓은 영화비평잡지라니. 나의 취향을 단단히 저격할 것 같은 예감에 읽기도 전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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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코너부터 전주국제영화제를 다루고 있어서 괜스레 반가웠다. 현재 휴학 중인 나는 본가인 전주에서 살고 있다. 어쩌다보니 매년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 타 지역에 있는 바람에 영화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올해는 휴학을 한 만큼 영화제를 더 제대로 즐기자고 다짐했었는데, 여행 일정 때문에 영화제 기간 대부분을 또 타지에서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영화제 마지막날 시간을 내 영화를 즐기러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렇듯 내가 보지 못한 기대작들을 FILO에서 대신 리뷰해주니 마치 영화제를 제대로 즐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꼭 보고싶던 작품이었는데, FILO 잡지를 읽고 나니 그 생각이 더욱 짙어졌다.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과 애정, 뜨겁게 호흡하는 밤의 시간들이 궁금해졌다. 그 외에도 영화제에서 만끽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을 주었다는 <제네시스>, <보물섬>과 같은 영화도 나중에 꼭 보리라 다짐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서 아름다운 장면들은 낮의 피로한 일상이 지나고 셋이 모여 노는 밤의 시간에서 주로 나온다. 영화는 그 숏들이 한 시공간을 뜨겁게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환기시킨다.

- 1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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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은 드라마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영화 잡지에서 만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해서 더 신기했다. 웹툰이나 드라마를 볼 땐 대부분 정주행하는 것을 즐기는 나로썬 시즌 8가 넘는 <왕좌의 게임>은 아직 너무도 범접하기 힘든 작품이다.

<왕좌의 게임>을 보지 않은 나는 FILO에서 설명해주는 간략한 스토리에 대한 설명, 여러 연출 기법과 대표적인 상징 등이 퍽 친절하게 느껴졌다. 알고 보면 더 좋을 것들만 쏙쏙 뽑아준 것 같았다. 물론 <왕자의 게임> 애청자들에게도 미처 몰랐던 드라마 속 비밀들을 알게 되는 코너가 아니었나 싶다.


<왕좌의 게임>에서 게임의 반의어는 집이다.

집이 있는 이상 아이들의 놀이는 언젠가 중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의 게임은 아이들이 돌아갈 집 자체를 파괴하거나 집이 아닌 곳으로 만들어버린다.

- 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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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와 <아사코>, 두 영화를 비교한 코너에선 라스트씬의 동일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잔잔한 감성으로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고가면서, 계속해서 결말을 곱씹게 만드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비평을 읽으면서 가장 보고 싶은 영화가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이기도 했다.

함께 바라본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기고 탐구하여 결론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함께 바라보는 행위를, 몇 페이지에 걸쳐 그 의미를 잘게 쪼개고 분석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도 클 수 있구나, 싶었다.


이상한 표현처럼 들리겠지만,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와 <아사코>의 라스트씬에서, 우리를 실감케 하는 그 힘은, 그 실력은, 다름아니라 안간힘이다.

- 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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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잡지의 서두에서부터 언급된 아녜스 바르다. 영화감독이자 언제나 창의적인 비주얼 아티스트였고, 누벨바그의 현대성과 페미니즘의 추진력, 엄격하고도 즐거운 독립성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올해 3월, 이젠 영영 그의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없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예술가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에게 참 많은 것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생전을 추억하기도 하고, 그의 생전 작품을 추억하기도 하고, 그 작품을 향유하던 그 때의 나, 또는 우리를 추억하기도 한다. 남겨진 이들은 그의 죽음 앞에서야 그의 작품에 담긴 의의를 조금 더 깊이 탐구해보고, 더이상 만날 수 없는 그만의 예술에 대한 안타까움에 빠져들기도 한다.

*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2퍼센트 부족했던 나로선 굉장히 재밌게 읽은 영화 비평 잡지였다. 무엇보다 너무 어려운 연출 기법 용어를 쓰거나 과장된 해석을 하지 않고, 영화에 대해 담백하게 설명해주는 면이 좋았다. 앞으로 나의 책장에 꽂혀질 영화 잡지가 하나 늘은 것 같다.


[임하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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